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강하류의 갯벌로 가기위해 거대한 편대를 이루어 헤이리 하늘을 날고 있는 철새무리
 한강하류의 갯벌로 가기위해 거대한 편대를 이루어 헤이리 하늘을 날고 있는 철새무리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올해 월동을 위해 남하한 한강변의 겨울철새떼
 올해 월동을 위해 남하한 한강변의 겨울철새떼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1

작년 겨울, 저는 거반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곳 파주 헤이리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어둠이 내린 이슥한 밤에도 집 밖을 나오면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하지만 기러기 떼의 정연한 대열도, 무리에서 떨어진 오리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가을부터 봄까지, 밤을 보낸 한강과 임진강 갯벌의 개활지에서 낮 동안 먹이 활동이 이루어지는 금산리와 갈현리 그리고 축현리의 들판을 오가는 이들의 공중 루트가 헤이리 상공이었습니다. 들판을 향해 떠오르는 아침 해를 가로지르는 모습은 항상 저의 넋을 빼놓았고 붉은 노을 속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대열은 저녁 일몰을 애타게 기다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제가 헤이리에 온 7년 동안 겨울의 큰 위안이었던 그들이 행렬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봄이 오도록 끝내 그들 무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텃새화된 흰뺨검둥오리 몇 마리만 새벽녘이나 해질녘 갈대늪에서 한가로울 뿐이었습니다.

 창공의 기러기 편대는 갖은 굳은 살이 박힌 인간의 감성을 보다 예민하게 벼리어줍니다
 창공의 기러기 편대는 갖은 굳은 살이 박힌 인간의 감성을 보다 예민하게 벼리어줍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도대체 겨울 철새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그들이 행선지를 바꾸어 버린 것인가 아니면….

아니 그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우리의 어떤 잘못이 그들의 정주를 막은 것인가? 우리의 탐욕이…. 그들의 먹이 터인 논은 좁아져만 가고 있습니다.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 큰 도로가 나고, 농토는 복토가 되어 점진적으로 집터로 바뀐 그것에 그들이 화가 난 것인가? 내가 내뿜은 화석연료의 그 뜨거운 연기에 진력이 난 것인가?

그들이 오지 않는 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임을 심각하게 일깨워준 지난겨울이었습니다. 마을을 격조 있게 하고 내 감성을 깨어 있게 했던 그런 사치스러운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예민하고 영민한 그들은 내가, 인간이 알지 못하는 징후를 미리 알고 도피해버린 것인가? 지금 아니면 늦어버릴지 모르는, 모두에게 해당될 불행에 대한 경고인가? 

만물(萬物)은 모두 한 그루의 나무와 한 포기의 풀에 이르기까지 각각 '이(理)'를 갖추고 있으며 '이'를 하나하나 궁구(窮究)하면 어느 땐가는 활연(豁然)히 만물의 겉과 속, 그리고 세밀함(精)과 거침(粗)을 명확히 알 수가 있다 했거늘 저는 겨울 내내 숙고하고 장고해도 이것이 무슨 조짐인지에 대한 창연한 개안(開眼)의 희열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

( 1 / 20 )

ⓒ 이안수

#2 

근심 속에서도 봄은 갔고 가득한 수심 속에서도 다시 가을이 왔습니다. 저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는 횟수가 잦아졌고 귀를 곧추세우는 밤이 거듭되었습니다. 

마침내 응답이 있었습니다. 9월의 마지막 주 단출한 기러기 편대가 모티프원 지붕 위를 가로질러갔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한 달 이들은 작년의 근심을 깨끗이 씻어주었습니다. 때로는 소대 규모로 때로는 중대 규모의 거대한 행렬로 다시 헤이리 하늘을 뒤덮어주었습니다.

 바로 머리위를 날고 있는 기러기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들으면 경이로움을 넋을 놓게 된다.
 바로 머리위를 날고 있는 기러기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들으면 경이로움을 넋을 놓게 된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그들은 이륙과 동시에 바로 정연한 열을 짓는다.
 그들은 이륙과 동시에 바로 정연한 열을 짓는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지난 일 년간의 시름을 깨끗이 씻어준 이들의 아침 비행이 고맙고, 저녁 활공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어제(10월 31일), 해거름에 서울로 갈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한강 쪽 차창에 붙어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강을 붉게 물들인 석양, 하늘을 뒤덮은 저녁놀을 가로지르는 겨울 철새들.

 막 석양이 숨고 있는 한강하류
 막 석양이 숨고 있는 한강하류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노을속을 날고 있는 기러기
 노을속을 날고 있는 기러기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개리와 청둥오리, 쇠기러기와 큰기러기…. 추수가 끝난 논을 뒤덮고 있는 이들의 무리가 반갑고도 고마웠습니다.

 개리와 청둥오리, 쇠기러기와 큰기러기들이 함께 무리지어 먹이 활동을 합니다.
 개리와 청둥오리, 쇠기러기와 큰기러기들이 함께 무리지어 먹이 활동을 합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어떤 예술가가 그들의 우아한 비행이 가져다주는 서정을 그려낼 수 있으며 어떤 학자가 우리 옆에서 그들과 함께하는 감동 이상으로 공존의 필연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에게 지칠 때나 도시가 죄어온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을 때, 서울 합정역 버스 정류장에서 77번 국도(자유로)를 북으로 달리는 2200번 버스에 한번 몸을 실어볼 것을 권합니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하는 지점의, 파주에서 본 김포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하는 지점의, 파주에서 본 김포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국도77번, 자유로
 국도77번, 자유로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

( 1 / 20 )

ⓒ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겨울철새#한강#임진강#헤이리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