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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워든 낙엽에 뚤린 구멍도 살펴보고, 구멍이 어떤 모양인지 구멍에 이름도 지어봅니다. 아이들이 들고 있는 큰 나뭇잎은 떡걸나무라는 것도 알려줍니다.
▲ 떨어진 낙엽을 들고 어떤 게 가장 큰지 비교하는 아이들 주워든 낙엽에 뚤린 구멍도 살펴보고, 구멍이 어떤 모양인지 구멍에 이름도 지어봅니다. 아이들이 들고 있는 큰 나뭇잎은 떡걸나무라는 것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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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초등학교에는 창의적 체험활동(이하 창체)이라는 교과가 있습니다. 2009년에 개정된 국가교육과정에서 만들어진 교과로, 이전의 재량활동과 특별활동을 묶어서 새롭게 편성된 것입니다.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이렇게 네 개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지난해부터 1~2학년 창체 시간에 영어 교육을 배치하거나 한자 교육을 배치해서 문제가 되곤 했습니다. 창의적 체험활동의 원래 취지를 살리지 못한 주지교과 중심, 입시 중심 교육의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교는 다양한 창체 활동을 운영합니다. 1학년은 격주마다 생태체험교육, 연극놀이, 창의음악교육 활동을 격주마다 2시간씩 운영합니다. 학기말에는 독서체험 주간을 2주 운영하고, 학년말인 2월에는 일 년 활동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문집 만들기 주간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2학년 역시 1학년과 동일하게 격주마다 생태체험교육, 연극놀이, 창의음악교육 활동을 격주마다 2시간씩 운영하고, 인라인 스케이트도 배웁니다.

은행나무는 왜 똥냄새를 풍기게 되었을까? 선생님이 은행열매 냄새를 맡아보게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 은행냄새 똥냄새~! 은행나무는 왜 똥냄새를 풍기게 되었을까? 선생님이 은행열매 냄새를 맡아보게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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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체험교육은 두 분의 생태교육 강사 선생님을 모시고 진행됩니다. 강사 선생님을 모실 수 있었던 것은 혁신학교 지원금을 받기 때문입니다. 일반 학교의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여기에 우리 학교는 북한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서 학교 후문으로 나가서 5분만 걸어가면 북한산 둘레길과 아름다운 화계사 숲과 계곡이 펼쳐져 있어서 부담 없이 다닐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1~2학년의 통합교과 교육과정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네 개의 주제에 맞게 교육활동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계절의 변화, 절기의 변화에 맞물린 자연의 변화를 공부하기에는 생태교육보다 좋은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화요일, 우리는 언제나처럼 생태 선생님이신 나무 선생님과 무당벌레 선생님과 함께 숲에 들어갔습니다. 학교 후문으로 나가는 골목길 담장 안에는 여러 유실수가 자라고 있어 좋은 공부감이 됩니다. 감나무, 앵두나무, 대추나무는 앙상한 가지였던 시절부터 초록 잎이 나오고, 꽃이 피고, 초록 열매가 달리고, 붉게 익어가기까지 일 년 동안 우리의 좋은 공부감이었습니다. 감나무 종류도 다양해서 납작감도 있고 봉우리감도 있습니다. 감이 어떻게 익어가는지, 익은 감을 어떻게 먹는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화계사 숲길로 가는 길목에 딱 한 그루 자라고 있는 고욤나무입니다. 감나무의 사촌이죠. 아이들이 고욤을 먹어봤을리 만무지요. 그래도 열매가 익으면 따 먹어보게 할 생각입니다.
▲ 고욤나무 열매 살펴보기 화계사 숲길로 가는 길목에 딱 한 그루 자라고 있는 고욤나무입니다. 감나무의 사촌이죠. 아이들이 고욤을 먹어봤을리 만무지요. 그래도 열매가 익으면 따 먹어보게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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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계사 숲길로 들어가기 직전에는 은행나무들이 노란 빛을 품어내며 살랑거립니다. 그 아래 떨어진 은행을 주워들고 나무 선생님이 왜 은행 냄새가 똥 냄새를 품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지만 아이들은 진지하게 듣습니다.

밤나무의 밤송이가 떨어진 지 오래지만 고염나무는 아직도 작은 고염들을 달고 있습니다. 감나무 친구 고염나무도 꽃이 필 때부터 봐 왔기 때문에 고염이 익어가는 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옛날에는 이 고염을 꿀단지에 따서 넣어두고 겨우내 한 숟가락씩 퍼먹었다는 이야기에도 아이들 귀는 솔깃합니다.

감의 축소판이라는 게 아이들은 신기한 모양입니다.
▲ 고욤열매를 살펴보는 아이들 감의 축소판이라는 게 아이들은 신기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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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계사 주변의 느티나무들이 한껏 가을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너무나 아름다워 아이들이 탄성을 자아냅니다. 어떤 잎은 아직 초록이지만 어떤 잎은 아직 갈색인데 이렇게 모두 한꺼번에 물드는 것은 아니지만 때가 되면 다 저렇게 물들어서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것이라는 설명에는 인생의 귀한 교훈을 얻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주에는 좀 더 새로운 숲길로 가봅니다. 일 년 동안 이 숲에 들어왔지만 처음 와보는 새로운 길입니다. 옆으로 절벽이니 조심하라고 서로 핀잔도 줍니다. 그런 걸 보면 참 많이 컸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자기 몸 하나 챙기기 힘든 1학년들이 이제 서로를 챙겨주니 대견하기만 합니다. 주변 경치를 보며, 왜가리 똥도 살펴보고, 계곡에 사는 물고기들도 살펴보고, 팥배나무 열매를 좋아하는 산새들도 살펴보며 올라가는 길, 나무 막대기를 하나씩 주워 들고 갑니다.

앞만 보고 걸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살아가길 바랍니다.
▲ 하늘을 올려다보니 앞만 보고 걸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살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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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올라가는 숲길, 뒤를 돌아봤더니 이랬습니다. 똑딱이 카메라로 다 담지 못하는 풍광을 아쉬워하며 한 컷 찍었습니다.
▲ 이렇게 단풍 든 가을입니다. 아이들이 올라가는 숲길, 뒤를 돌아봤더니 이랬습니다. 똑딱이 카메라로 다 담지 못하는 풍광을 아쉬워하며 한 컷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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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크기의 막대기를 고르는 것도 일이고, 앞 사람 찌르지 않고, 뒷 사람 때리지 않고 잘 들고 올라가는 것도 일입니다. 그런 모든 것이 공부입니다.
▲ 막대기 하나씩 주워들고 산길을 오릅니다. 적당한 크기의 막대기를 고르는 것도 일이고, 앞 사람 찌르지 않고, 뒷 사람 때리지 않고 잘 들고 올라가는 것도 일입니다. 그런 모든 것이 공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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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자리가 나타나자 나무 선생님이 나뭇가지 하나를 땅바닥에 세웁니다. 세워진 나뭇가지는 금세 쓰러집니다. "어떻게 이 나무를 세울 수 있을까?" 물어보십니다. 아이들은 의아하게 쳐다보고, 선생님은 "너희들이 들고 온 나뭇가지로 이 나무를 쓰러지지 않게 세워질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물어보십니다. 아이들이 너도 나도 나뭇가지를 기대어 세워 놓자 금세 쓰러졌던 나뭇가지가 단단히 서게 됩니다. 아이들은 "와~!" 환호성을 지릅니다.

"이렇게 나무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땅 속 깊은 뿌리들이 지탱해줘서 설 수 있는 거란다. 그럼 이제 우리가 세워준 나뭇가지들을 하나씩 빼볼까?"

조마조마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나뭇가지를 돌아가며 하나씩 뺍니다. 두 바퀴나 돌았을까, 나뭇가지는 쓰러집니다.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놀이였겠지만 이것을 지켜보는 저에게는 그리 간단치 않은 인생의 교훈처럼 느껴집니다.

혼자 설 수는 없지만 서로 기대어 설 수는 있습니다.
▲ 나뭇가지 세우기 혼자 설 수는 없지만 서로 기대어 설 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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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 조심 나뭇가지를 올리는 손길, 하나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세우기 위한 손길이고 마음입니다.
▲ 이렇게 세울 수 있습니다. 조심 조심 나뭇가지를 올리는 손길, 하나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세우기 위한 손길이고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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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쉽지 않습니다. 한번 세워봤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세울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 이렇게 쓰러졌습니다. 그래도 아쉽지 않습니다. 한번 세워봤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세울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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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사진기로 찰칵 찍어서 내 마음에 담아둡니다.
▲ 내려오는 길, 가을 풍광을 마음 속 사진으로 담습니다. 손가락 사진기로 찰칵 찍어서 내 마음에 담아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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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너희들도 그렇게 서로 지켜주고 도와주면서 가는 거야."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을 숲에서 공부하면서 아이들은 자연의 품을 낯설어 하지 않고 그 품에 안겨서 노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걸 지켜보는 교사는 오늘 하루도 인생을 반추하며 또 다른 배움의 길을 걸어갑니다.

덧붙이는 글 |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항의하며, 참교육 실천의 현장을 알리려는 마음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곱번째 기사입니다.



태그:#서울형혁신학교, #전교조 참교육실천, #서울유현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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