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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은 사람도 나무도 그 아름다운 풍경속으로 빨아 들인다.
 내성천은 사람도 나무도 그 아름다운 풍경속으로 빨아 들인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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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정리에 위치한 해발 1236미터의 선달산에서 기원해 문경시 영순면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내성천(乃城川)은 109,5킬로미터에 이르는 낙동강의 제 1지류다. 선달산 남쪽 계곡에서 봉화읍을 흐르다 영주시 평은면과 문수면을 지나는 내성천은 모래를 품으며 크고 작은 산을 휘감아 돌다, 여기저기 모래톱을 남긴다. 낙동강은 내성천이 있기에 을숙도 인근까지 모래를 넓게 펼쳐놓았고, 우리는 사시사철 맑은 물을 내성천과 낙동강에서 마실 수 있었다.

한반도 강의 원형을 보전하고 있는 대표적인 강으로 조선시대부터 모래가 많아 '사천(모래 사沙. 내川)', 모래내로 불렸던 내성천. 이름대로 모래가 풍성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하천이다. 최근 생겨난 영주댐 환경 평가서에 의하면 내성천 유역에 쌓이는 모래의 양은 가까운 충주댐의 배가 넘는다. 이렇게 내성천은 모래가 많은, 정확히 말하면 모래톱이 넓게 펼쳐진 강으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지형이라고 한다. 여름이면 아이들이 찾아와 물장구치고 부드러운 모래밭에 누워 팔다리를 휘저어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을 정도로 곱고 부드러운 내성천엔 왕버드나무, 영주 무섬마을, 예천 회룡포, 선몽대 등 정감 있고 운치 있는 풍경과 여행지들 또한 유명하다.

이 내성천 상류에 내년 2014년 영주댐이 완공된다. 낙동강의 수질 악화 대비 및 수질개선용으로 건립되는 영주댐에 담수가 시작되면 내성천 상류는 물로 잠기고 하류는 물 흐름이 막히고 모래 공급이 줄어들어 육지화가 진행되면서 지금의 절경과 풍경은 사라질 예정이다. 어쩌면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내성천 하류지역의 풍경을 추억하고 기록하고 싶어 애마 자전거와 함께 찾아갔다.

내성천이 빚어낸 아름다운 물돌이 마을, 회룡포

회룡포 마을로 들어가는 명물 '뿅뿅다리'
 회룡포 마을로 들어가는 명물 '뿅뿅다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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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휘감아 도는 내성천에서 모래장난을 하는 아이들.
 마을을 휘감아 도는 내성천에서 모래장난을 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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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으로 접근하기 좋은 마을 중에 이름도 흥미로운 경북 영주시 예천군 용궁면이 있다.
용궁면은 작은 마트 가게가 버스 터미널을 겸하고 있는 아담한 마을이다. 내성천을 따라 자전거 여행을 하려면 아침밥을 든든히 먹어야 하기에 찾아간 '용궁시장'엔 다행히 이른 아침에도 순대국밥을 파는 가게가 있다. 뜨끈한 순대국밥에 몸도 마음도 훈훈해져 자전거로 마을을 돌아보다보니 동네가 온통 '용'천지다.

용궁면, 용궁 초·중학교, 용궁시장, 용궁역까지··· 혹시 마을을 홍보하려고 지자체에서 개명한 이름인가 했더니, 이래봬도 신라시대 때부터(용궁현) 이어진 오래된 동네 이름이라고 한다. 기차가 하루에 두 번 선다는 한적한 간이역 용궁역은 역무원이 없는 무인 기차역이지만 앞발에 구슬을 쥐고 포효하는 용의 동상이 지키고 있어서 그런지 덜 적막하게 느껴진다.

이 동네의 대표 자랑거리는 8km 정도 떨어져 있는 내성천이 용처럼 휘돌아 가는 섬 마을 회룡포다. 잘 보이도록 만든 큰 이정표를 따라 시래기가 빨래처럼 널린 농촌의 한가로운 마을길을 지나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한참 추수 준비로 바쁜 농촌 마을 어디선가 볏짚을 태우는지 구수한 냄새가 절로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도시에서 태어나 쭉 살아온 내 몸 안에도 수천 년간 이어진 농경민족의 유전자가 존재하고 있었나 보다.

정말 큰 용이 마을을 휘감고 도는 것 같은 회룡포 마을 안내판이 보이자마자, 웬 넓고 고운 모래사장이 불쑥 나타난다. 바닷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모래벌이 길게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내성천이 마을을 휘돌면서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이런 곳을 '물돌이 마을'이라고 부르나 보다. 이 물돌이 마을은 2008년 12월 국토해양부에 의해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중 최우수 하천'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모래밭을 지나 내성천을 건너서 회룡포 마을로 가기 위해 공사장의 철판 같은 '뿅뿅다리' 위를 애마 자전거와 함께 조심조심 건너간다. 구멍이 뽕뽕 뚫린 '뿅뿅다리' 밑으로 내성천의 맑은 물이 모래알들과 함께 굴러가듯 흘러간다.

개울의 깊이는 어른 무릎 정도이며 바닥의 모래가 훤히 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누가 봐도 1급수 하천에 남매로 보이는 아이들이 바지를 걷고 개울에 들어가 모래장난에 여념이 없다. 회룡포 마을은 이렇게 초입부터 이채롭고 독특한 곳이라 그런지 둔중한 카메라를 든 사진가들이 많이 보인다. 회룡포 마을은 사진작가들이 출사를 자주 오는 명소이기도 하다.

회룡포 마을 전망대에 오르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절경을 볼 수 있다.
 회룡포 마을 전망대에 오르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절경을 볼 수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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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는 산과 강에 둘러싸인 '오지 중의 오지'. 한때는 죄인의 임시 귀양처였으며, 한국전쟁기에는 피난처이기도 했다. 사람이 들어와 산 것은 조선 고종 때. 예천의 아랫마을 의성(경북 의성군)에 살던 경주 김씨 일가가 들어와 소나무를 베고 논밭을 개간했다. 그래서 의성포란 이름을 얻었다. 이후 물돌이 마을로 유명해지면서 의성군에 가서 의성포를 찾는 웃지 못 할 일이 많아지자 예천군에서 '회룡포'란 이름을 따로 지었다.

채 열가구가 안 되는 육지 속의 작은 섬 회룡포는 감나무, 밤나무, 느티나무 등이 집 주변에 서있는 포근하고 아기자기한 마을이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 울음이 시골마을의 정겨움을 더한다. 내성천이 둥글게 흐르는 마을 한쪽에 무료 캠핑장도 있다. 마을 한쪽길을 따라 운동도 할 겸 언덕길을 올라가 회룡포 전망대에 서면 내성천이 용처럼 휘감아 도는 물돌이 마을이 한 눈에 펼쳐져 누구나 감탄을 하게 된다. 내성천은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물굽이를 이루며 100여km를 흐른다.

마을에서 마성리 방면으로 나오면서 두 번째 뿅뿅다리를 건너 내성천가의 농로를 따라 본격적으로 강변을 따라 달린다. 화강암이 수천만 년 풍화되어 부서진 고운 모래가 물을 따라 흐르며 만들어 놓은 넉넉한 모래톱이 끝없이 이어진다. 맨발로 들어가고픈 모랫벌 위에 해오라기 한 마리가 명상하듯 외발로 서 있고, 버드나무와 갈대, 바람만이 들고 나는 쓸쓸한 풍경이 손 흔드는 저 갈대처럼 자꾸만 내 마음을 흔든다. 가을 강변 여행만의 매력이지 싶다.

우리나라 아니 세계적으로도 귀하다는 모래강인 내성천은 그러나 상류에서 건설 중인 영주댐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내년에 완공예정인 이 댐으로 내성천가의 마을이 수몰돼 주민 500여 가구가 고향을 버리고 떠나야 하고, 무엇보다 댐이 물을 가두어 인위적으로 그 흐름을 조절하니 자연히 내성천의 모래가 점점 사라지고 수량이 줄어들어 회룡포 마을도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게 될 것이다.

추수를 기다리는 내성천변 가을 들녘엔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주는 이정표도, 편의점도, 매끈한 자전거도로도 없다. 하지만 농부들이 가꾼 논이 펼쳐져 있는 풋풋한 농로와 푹신한 논둑길은 세상 그 어느 길보다 자전거 여행과 잘 어울린다. 예천군을 흐르는 수십 킬로미터의 내성천변은 아직까지 인공으로 된 구조물이 거의 없는 자연 그대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보기 드문 하천이다.

곱고 아름다운 그래서 더 안타까운 모래강, 내성천

내성천변의 농로와 둑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내성천변의 농로와 둑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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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갈 적마다 발을 담그곤 했던 맑디 맑은 모래강 내성천.
 쉬어갈 적마다 발을 담그곤 했던 맑디 맑은 모래강 내성천.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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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가 모래인 내성천엔 특히 모래를 좋아하는 생명들이 깃들어 사는데, 녀석들은 모래에 붙은 유기물을 먹거나, 모래를 이용해 숨거나하며 그곳을 안식처로 삼는다. 게다가 생명의 모태가 되는 모래는 마술 같은 정화기능을 가져 스스로 깨끗함을 유지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많은 모래들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모래의 모태는 한반도에서 가장 흔한 암석인 화강암이다.

침식과 풍화 작용을 거쳐 모래가 되는 화강암이 내성천 주변을 온통 덮고 있는 까닭에 내성천은 끊임없이 모래를 제공받는다. 더욱이 모래는 여과작용을 통한 수질 정화능력을 지니고 있어 모래강인 내성천은 스스로 건강함을 유지한다. 물이 맑고 수심이 얕아 강바닥의 모래가 훤히 드러나는 내성천. 그곳은 사람을 포함한 생명들을 불러들이기 충분했다.

또한 강변과 습지 사이에 생태적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모래톱은 강 생태의 중요한 근간이 된다. 이렇듯 모래는 더 이상 쓸모없는 제거의 대상이 아니다. 모래밭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에겐 삶의 터전이 되고, 오염되는 강에겐 수질정화의 도구가 된다. 모래가 만든 내성천은 살아 숨 쉬고 있는 생명 그 자체이다. 4대강사업 현장조사를 위해 방한한 독일의 생태하천공학자 베른하르트 교수는 내성천, 낙동강 합류부만 을 둘러보고도 '국립공원감'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내성천변 논밭길에서 만난 개구리들, 참 귀엽고 반갑다.
 내성천변 논밭길에서 만난 개구리들, 참 귀엽고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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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살이 편안하고 조용히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달려간다. 흐르는 물에 되비치는 가을햇살이 눈부시다. 잠시 쉬어 갈 겸 바지를 걷고 모래밭을 걸어 내성천에 발을 담가보았다. 강바닥은 순전히 모래바탕이다. 접어 올린 바지가 젖을까 걱정했는데 깊은 곳도 허벅지를 넘지는 않았다. 언제 강물을 따라 걸은 적이 있던가? 물살에 몸을 맡긴 적이 있던가? 강물을 온전히 내 몸으로 느낀다. 내리는 빗물의 3분의2가 여름 한철에 집중되는 우리나라는 국토의 65퍼센트가 경사가 급한 산지다. 따라서 빗물이 집중될 때 강둑까지 넘실거리며 흐르는 강은 갈수기엔 바닥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도 물길이 끊어지지 않는 건 모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동네의 한강처럼 그저 강물은 차나 자전거를 타고 휙 스쳐 지나가는 도로에서 보았거나 강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구경했던 강이 아니다. 그 물이 아니다. 강물이 내 다리를 핥고 지나간다. 가만히 서 있으면 발밑에서 모래가 허물어지면서 발바닥을 간질인다. 물가에 버드나무들이 푸르다. 나무그늘은 한낮의 따가운 햇살에 그늘을 드리워 물고기를 쉬게 하고 흙을 그러안은 촘촘한 뿌리들은 장마에 불어 허물어지려는 강둑을 지켜준다고 한다.

꿈에 본 선경, 선몽대(仙夢臺)

동서로 길고 넓은 백사장이 펼쳐진 내성천변의 명소 선몽대.
 동서로 길고 넓은 백사장이 펼쳐진 내성천변의 명소 선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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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묵은 천연기념물 나무들과 정자, 내성천이 산수화처럼 어울려 있다.
 수백 년 묵은 천연기념물 나무들과 정자, 내성천이 산수화처럼 어울려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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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인지 강이 나인지 모를 정도로 천변의 풍경에 푹 빠져 달리다보면 커다란 나무숲과 함께 길고 아름다운 백사장이 신세계처럼 나타난다. 회룡포 마을도 아름답지만 회룡포 뺨치는 풍경을 가진 곳이 내성천 곳곳에 숨어 있는데 이곳 선몽대 (예천군 호명면 백송리)도 그런 명소 중 하나다. 이렇게 내성천 지류 중 예천군을 지나는 구간은 백사장이 길고, 넓고, 아름답기가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솔밭과 백사장이 어우러져 제 19호 국가 명승지로 지정된 선몽대는 약 450여년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곳으로 퇴계 이황의 종손이며 문하생인 우암 이열도가 1563년에 세운 곳이다. 선몽대와 선몽대 숲 그리고 그 앞을 흐르는 내성천과 하천 앞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함께 어우러져 한국의 전통적 산수미를 보여주는 예천 내성천 유역의 대표적 경승지의 하나이다. 특히 수백 년 묵은 소나무, 은행나무, 버드나무, 향나무가 내성천과 어우러진 모습은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삼삼오오 식구들과 함께 놀러온 사람들이 솔숲 속을 산책하기도 하고 내성천에 들어가 물수제비를 띄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선몽대 숲은 선몽대와 선몽대 뒤편의 백송리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성된 우리 선조들의 풍수사상이 깃든 전통적인 마을 숲으로 소나무 노거수와 은행나무, 버드나무, 향나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으며, 수해방비림, 방풍림, 수구막이숲(홍수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거나 풍수상 단점을 보완할 목적으로 물길 등을 막기 위해 조성한 숲) 및 비보림(裨補林, 풍수상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숲)의 역할을 해 온 것이라고 한다.

흰 모래 벌판, 강변 모래밭 어귀에 줄지어 늘어 선 노송 숲, 그리고 석벽 위로 우뚝하게 자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정자의 모습은 정말 이름 그대로 신선이 살고 있는 선계의 모습과도 같은 비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옛날 선몽대를 찾는 선비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절로 이곳을 향했을 것이다.

동서로 흐르는 내성천이 한눈에 들어오는 선몽대 정자는 신선의 세계를 묘사한 상서로운 문자향이 가득한 공간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다섯 차례나 대사헌에 임명되었으나 강직한 성품으로 출사와 사직을 반복하기도 한 청음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은 이곳 선몽대의 아름다움에 취해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겨놓았다.

모래가 희고 내가 맑아서 담담해 빈 것 같으나
옥 같은 산이요 구슬 같은 정원에 비교함이 어떠할까
신선의 땅이 하도 멀어 오기가 어렵다 하나
이 정자에 오고 감을 소홀히 하지 말자

白沙川明澹若虛
玉山瓊圃較何如
仙區萬里應難到
來往斯亭且莫疎

선몽대 정자에 올라서니 그 옛날 선비가 된 것 같다.
 선몽대 정자에 올라서니 그 옛날 선비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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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몽대를 아름다운 비경으로 만드는 첫 번째의 요소는 단연 정자 앞을 흐르는 내성천이다.모래를 머금은 맑은 내성천의 물은 선몽대의 상류에서 크게 S자형으로 감돌아 흘러 온 후 선몽대 앞에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난 물길을 따라 비단결과도 같이 여울져 내려간다. 선몽대 앞의 여울은 매우 넓게 펼쳐져 있다. 화창한 날이라 그런지 맑고 고요한 수면에 비친 선몽대의 모습이 매우 선명하다. 그야말로 명경지수(明鏡止水)라 할만하다.

오늘날을 사는 우리는 생활의 편익이나 공익을 위해 자연에 위해를 가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이러한 모든 위해행위가 자연에 가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에는 아무리 많은 공력과 비용을 들이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절대로 손해가 되는 일이 아니다.

한 번 훼손된 자연은 아무리 많은 비용과 노력을 투여한다 해도 과거의 모습으로 다시 되돌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다양한 문화적 의미가 내재된 문화경관이 훼손될 경우에는 그 문화적 상징성을 절대로 다시 복원할 수 없다. 그런 곳 중의 하나가 내성천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9월 27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자전거여행, #내성천, #회룡포, #선몽대, #영주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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