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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재장전> 책표지.
 <맑스 재장전> 책표지.
ⓒ 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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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해고가 살인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실직자들이나 실직 위기에 놓인 노동자들이 벌이는 거리 시위는 충분히 정당해 보인다. 이 야만적인 시대에 거리 시위 말고 이들 사회적 약자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별로 없다. 그나마 파업이 조금 강력한 수단이다. '뻥 파업'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그 위력이 심각하게 조롱받고 있긴 하지만.

그런데 실직 노동자들의 거리 시위나 파업을 극히 냉소적으로 말하는 이가 있다. 그는 길거리에서 일자리를 요구하는 실직자들의 외침을 "적어도 정상적으로 착취당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일자리를 달라!"로 해석한다. 사회학자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를 빌려 파업은 임금을 받는 계급의 특권이 되고 있다고도 말한다. 세계 철학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슬라보예 지젝이 그 주인공이다.

지젝의 이 발언들은 언뜻 반노동자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그는 야만적인 현대 자본주의의 대안을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철학자 중의 하나다. 가장 반자본주의적인 상품인 지식을 통해 자본주의가 종언을 고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하는 그가 그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이 책은, 현대 정치철학자 여덟 명을 상대로 2010년 3월부터 9월 사이에 진행한 대담을 묶은 것이다. 이 대담의 결과물은 다큐멘터리 <맑스 재장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담 진행과 다큐멘터리 감독은 모두 이 책의 엮은이인 제이슨 바커가 맡았다. 그는 알랭 바디우와 같은 프랑스 철학자를 영미권에 소개하는 영국 철학자다.

바커는 이 책의 주요 대담자들인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 슬라보예 지젝 등을 '신맑스주의자'로 부른다. 그런데 신맑스주의자로서의 지젝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 내 위치나 착취 등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을 다시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보기에 오늘날 프롤레타리아트의 위치는 더 이상 전형적인 노동계급에 들어맞지 않는다. 그는 일자리를 요구하는 실직자들의 존재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현대의 착취 구조를 지탱한다고 본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실직자들이 천신만고 끝에 일자리를 구해 직장에 들어가는 상황을 그려 보자. 이제 그는 임금 인상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자리를 보전하는 데 온 힘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기실 그는 보이지 않는 착취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를 갉아먹고, 만인 대 만인의 경쟁 구도 속에서 '기꺼이' 살아가겠다고 일자리를 구한 게 아닌가. 글머리에 소개한 지젝의 말이 냉소적이지만, 오늘날 노동자들의 현실을 한 치의 가감도 없이 정확하게 지적한 것으로 들리는 이유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 이 책의 제목이 이에 대한 해답을 암시한다. '맑스 재장전'은 맑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그것은 맑스에 대한 창조적인 비판과 이를 통한 미래지향적 계승이기도 하다. 그 재장전 과정에서 책에 등장하는 여덟 명의 정치철학자가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는 열쇳말이 '코뮤니즘'이다.

신맑스주의자들은 코뮤니즘을 통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를 극복한 세상을 꿈꾼다. 이들은 순수한 코뮤니즘을 지향한다. 이들에게 순수한 코뮤니즘은 역사를 통틀어 권력의 지배적 형태들에 저항하는 이념이다. 엮은이의 말을 빌리면, 맑스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코뮤니즘이 아니라 평등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원형적 코뮤니즘(proto-communism)이다.

통속적(전통적인 맑스주의나 현실 정치의 자장권 안에 있다는 점에서 쓴 표현이다-기자)인 코뮤니즘과 순수한 코뮤니즘은 어떻게 다를까. 네그리는 사람들이 코뮤니즘을 말할 때 보통 의미하는 것은 사회주의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때의 사회주의는 결코 (순수한-기자) 코뮤니즘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사회주의였을 뿐이다.

소련인들도 "사회주의에 진입해 있다"고 늘 말했습니다. 자유주의가 자본의 관리 형태이듯이, 사회주의도 자본의 관리 형태입니다. 냉전 시기에는 이 점을 쉽게 볼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매우 명백하게 이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볼 수 있지요. 코뮤니즘이 아닌 사회주의, 자본을 관리하는 또 다른 형태로서의 권위적 자본주의 형태를 말입니다. (69쪽)

순수한 코뮤니즘은 어떤 것일까. 마이클 하트는 '공통적인 것'이 지배하는 세상을 말한다. 하트에 따르면, 공통적인 것의 역사적인 원형 중 하나는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커먼즈(the commons)', 곧 '공유지'(가축을 공동으로 방목할 수 있는 들판)다. 땅과 물, 공기, 숲 등도 전통적인 의미의 공통적인 것에 속한다. 최근에 생겨난 공통적인 것은 아이디어, 정보, 코드, 이미지 같은 것들이다.

이들의 소유 관계를 어떻게 정해야 할까. 하트는 세 가지 가능성을 말한다. 개인의 사적 소유, 국가에 의한 공적 소유, (사유도 아니고 국가 소유도 아니면서) 배타적이지 않은 공통의 소유 등이 그것이다. 하트에게 공통적인 것은 사유 재산도 공유 재산도 아니다. 그것은 시장도 국가도 아니며, 우리가 공통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자 우리가 공통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하트를 포함한 신맑스주의자들이 공통적인 것에 의한 코뮤니즘을 강조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하트는 하늘, 땅, 대기 같은 생태적인 공통적인 것을 사적 소유를 통해 운영하는 것이 우리를 재앙 직전으로 몰고 갔으며, 국가를 통해 운영하는 것 역시 그렇다고 말한다. 지젝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생태적 파국이 우리를 코뮤니즘을 향태 밀어붙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베리아 같은 러시아의 광대한 지역들이 더 따뜻해지고 경작지로서 훨씬 더 생산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반면에 지중해 인근 지역들이 사막화된다면, 유일하게 진지한 해법은 대규모 이동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누가 합니까? 누가, 어떻게 조직할까요? (중략) 이런 이동이 중세 초 유럽에서 마지막으로 일어났을 때 혼란스럽게 이뤄졌고 인구의 절반이 죽는 것으로 끝이 났다는 사실입니다. 이 문제는 우리를 어떤 코뮤니즘을 향해 밀어붙입니다. 그것은 소련 정치국 같은 중앙기구가 결정한다는 의미에서의 코뮤니즘이 아니라 우리가 공통재를 다룬다는 의미에서의 코뮤니즘입니다. (101, 102쪽)

이 순수한 코뮤니즘은 누가 이끌어야 할까. 내 머리에 좌파, 노동자, 양심적인 지식인, 깨어 있는 민주 시민과 같은 말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상황은 여의치가 않다. 좌파는 무능·종북 프레임에 끼어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태는 상징적이다. 그를 좌파로 보기에는 정세를 분석하고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네그리는 아예 오늘날 큰 문제는 더 이상 좌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좌파가 우파보다 더 우파적인 상황에 있습니다. 따라서 운동이 긍정적으로 활성화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좌파는 위기 앞에서 완전히 무장해제됐습니다. 좌파는 신자유주의자들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이 됐지요. 따라서 큰 문제는 새로운 집단화의 극들을 규정해내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시대의 과제이고, 맑스의 귀환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77쪽)

어떻게 해야 할까. 전통적인 맑스주의자들을 따라 노동 계급을 각성시키고, 만국의 노동자가 일치 단결하여 자본가를 깨부수면 될까. 양심적인 지식인, 각성한 민주 시민들의 참여와 행동을 유도하면 될까. 하지만 사람들을 모아 '혁명'을 하기에는 세상은 너무나 '민주주의적'이고 '자유롭다'.

지젝은 "역사는 우리 편이다"라는 순진무구한 생각, "어쨌든 우리는 역사에 기차에 올라타 있다"는 생각에 더 이상 의존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요한 것은 비상 브레이크를 당겨 역사의 기차를 세우는 것입니다. 아니면 전형적인 동유럽의 풍자인데, 구 유고슬라비아에는 이런 말도 있었습니다. "터널 끝에 빛이 보이지만 그것은 반대쪽에서 달려오고 있는 또 다른 기차이다." (103쪽)

영화 <매트릭스>에는 주인공 '네오'가 빨간 약과 파란 약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장면이 나온다. 빨간 약을 선택하면 고통스럽지만 현실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고, 파란 색을 선택하면 세계의 진실 대신 가짜 현실 속에서 안온한 일상을 계속 살아갈 수 있다. 엮은이 바커는 이 '빨간 약, 파란 약' 질문을 대담자 모두에게 던진다. 지젝은 '제3의 약'(이 '제3의 약'의 정체는 책을 통해 확인해보기 바란다. 그 과정에서 지젝의 놀라운 사유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을 선택했다. 당신은 어떤 약을 고르겠는가.  

덧붙이는 글 | <맑스 재장전> (제이슨 바커 엮음, 은혜․정남영 엮음 | 난장 | 2013. 9. 9. | 250쪽 | 1만 5천 8천 원)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맑스 재장전 - 자본주의와 코뮤니즘에 관한 대담

제이슨 바커 엮음, 은혜.정남영 옮김, 난장(2013)


태그:#<맑스 재장전>, #제이슨 바커, #마이클 하트, #안토니오 네그리, #슬라보예 지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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