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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 날씨에 자전거를 타니 상쾌한 바람이 불어와 얼굴에 닿는 기분이 참 좋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라는 노래가 절로 나온다. 때마침 완연한 가을 날씨의 추석 명절, 연휴를 도시 서울에서 보내야 하는 고향 없는 도시인들에게 연휴를 색다르게 즐기는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쌀 익는 가을 들녘 길을 자전거 타고 달려보는 게 바로 그것. 아름답고 풍성한 황금 들녘에 취해 몸도 마음도 풍요로워질 수 있다.

추수를 기다리는 가을 들녘엔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주는 이정표도, 편의점도, 매끈한 자전거도로도 없다. 하지만 농부들이 가꾼 논이 펼쳐져 있는 풋풋한 농로와 푹신한 논둑길은 세상 그 어느 길보다 자전거 여행과 잘 어울린다. 기분 좋게 뺨을 스치는 산들바람과 보기만 해도 배부른 황금 들판 사이를 여유롭게 달려보자.

도시 속의 배부른 가을 들녘, 개화역-부천시 대장들녘

가을 자전거 여행은 매끈한 도로보다 푹신한 둑길이 더 잘 어울린다.
 가을 자전거 여행은 매끈한 도로보다 푹신한 둑길이 더 잘 어울린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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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님들이 공들여 가꾸어 놓은 아름다운 정원, 논.
 농부님들이 공들여 가꾸어 놓은 아름다운 정원,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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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서구에 있는 수도권 전철 9호선 개화역에 내려 2번 출구 방향의 작은 길을 따라 조금만 걷다보면 어느새 눈앞에 따사로운 가을 햇살에 고슬고슬 익어가는 논밭이 나타난다. '찌르르 찌르르' 온갖 풀벌레들이 노래를 부르고, 논 위로 수십 마리의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여행자를 반긴다.

잠시 여기가 서울임을 깜박 잊고, 어디 멀리 시골에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드는 곳이다. 지난 여름 지독한 무더위와 장마를 이겨낸 벼들이 쌀알들을 훈장마냥 가슴에 품고 있다. 마치 정성들여 잘 지은 밥 한 공기가 놓여 있는 듯 보기만 해도 배부르고 마음이 넉넉해지는 황금 들녘이다.

여느 농촌의 고요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와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종종 하늘에서 들려오는 천둥 같은 굉음소리. 인근 김포공항에서 이륙하는 거대한 비행기 한 대가 머리 위로 속살을 내보이며 날아오르고 있다. 금싸라기 서울 땅에 이런 농촌 풍경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논 옆에 꼭 있는 작은 하천 '대두둑천'을 따라 이어진 둑길. 요즘 보기 드문 흙이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편의를 위해 농로에 아스팔트를 깔아 놓은 곳이 대부분인데 참 반갑다. 가을날의 자전거 여행은 매끈한 자전거 도로보다 이런 푹신한 흙길이 더 어울린다.

솟대가 정답게 솟아있는 푹신푹신한 논둑길은 시골 가게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종점 슈퍼'를 지나면서 부천시의 허파라고 불리는 '대장들길'과 이어진다. 부천시에서 만든 '오정 올레길'인 오정구 대장동 들녘과 오정동 공원으로 길이 계속 나있다.

▲ 주요 여행 코스 : 수도권 전철 9호선 개화역 - 대두둑천 논길 - 종점 슈퍼 - 덕산초등학교 대장분교장 - 오곡다리 논길 - 부천시 오정동 공원

포구·시장·가을 들녘이 다채롭게 펼쳐진 시흥 갯골길

갯골 물길따라 피어난 코스모스가 자전거 여행자를 반긴다.
 갯골 물길따라 피어난 코스모스가 자전거 여행자를 반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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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갯골길에 펼쳐진 황금들판엔 억새도 한몫한다.
 시흥 갯골길에 펼쳐진 황금들판엔 억새도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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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갯골길은 수인선(수원-인천) 전철을 타고 소래포구역이나 월곶포구역에서 내리면 갈 수 있다.

소래포구역에 내리면 항구와는 또 다른 포구 특유의 부산스러움, 짭짤한 바다 내음, 생선의 비릿함이 꾸밈없는 날것 그대로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염전과 소금창고가 남아있어 뭔가 사람을 끄는 포구만의 매력을 지닌 소래포구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소래포구 시장·월곶포구를 지나면 비로소 갯골 생태공원과 함께 갯골물이 둥글게 흐르는 노랑 가을 들녘이 눈앞에 나타난다. 이름만 들어도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 정겨운 우리말, 갯골은 바닷물이 들고 나면서 (썰물과 밀물) 해수의 유로 역할을 하는 곳이다. 바다 속에 숨은 길이다.

포구에서 갯골들녘까지 보행로 겸 자전거 도로가 잘 나 있다. 벼 낱알을 훑으며 스쳐가는 소슬한 바람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참 고즈넉하고 정겨운 들길이 논에 물에 대주는 물왕 저수지까지 줄곧 이어진다. 고슬고슬 익어가는 가을들녘은 매년 일부러 찾아가서 봐도 지겹지가 않고 마음이 넉넉해진다.

갯골 길에서 여행자를 향해 손 흔드는 가을의 전령사들도 빼놓을 수 없다. 자전거 탄 여행자와 하이파이브를 하자며 손 내미는 억새꽃들과 색색의 예쁜 꽃잎을 흔들며 눈길을 끄는 코스모스 꽃들이 가을 여행의 정취를 살찌운다. 풋풋한 포구와 떠들썩한 수산시장, 갯골이 굽이쳐 흐르는 가을 들녘을 바라보며 물왕 저수지까지 달릴 수 있다.

▲ 주요 여행 코스 : 수인선 전철 소래포구역 - 월곶포구 - 갯골생태공원 - 보통천 들녘 - 관곡지 - 물왕저수지

정겨운 간이역 따라 라이딩, 차탄천 들녘길

고슬고슬 익어가는 벼와 기차가 잘 어울린다.
 고슬고슬 익어가는 벼와 기차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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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과 노란 들녘, 몸과 마음이 풍성해진다.
 파란 하늘과 노란 들녘, 몸과 마음이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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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간이역들을 중간 쉼터로 삼아 기찻길 옆의 들녘과 개천가, 마을길을 자전거로 달릴 수 있는 길이 경기도 연천군에 있다. 추수 준비가 한창인 농촌 풍경은 물론 경원선을 따라 흐르는 황새들이 노니는 풋풋한 개천 차탄천, 오일장이 열리는 간이역 주변의 작은 소읍 동네, 심심하면 나타나는 군부대 차량과 군인들까지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경원선 백마고지역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남한 최북단 기차역이었던 신탄리역이 이 코스의 들머리. 신탄리역에서 남쪽으로 대광리역·신망리역·연천역까지 도보 혹은 자전거 타고 달리기 좋은 길이 있다. 바로 평화누리길이다. 김포에서 DMZ 부근 임진강변을 따라 이곳 연천군까지 이어진 길이란다. 덕분에 한탄강을 향해 흐르는 차탄천과 경기도 연천군의 농촌 들녘이 펼쳐진 농로길을 따라 여유롭게 자전거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언제 봐도 착한 눈망울로 금속말 탄 여행자를 쳐다보는 소들이 사는 축사, 기적 소리를 내며 한 시간마다 논둑 위를 오가며 달리는 세 량짜리의 작은 경원선 열차 구경에 자전거 페달을 멈추기도 한다. 또 한창 추수 준비로 분주한 논 주변의 농부들과 밭에 들어가 둘러앉아 일하고 있는 어머님들께 응원의 눈길을 보낼 수도 있다.

자전거 여행자를 힘들게 하는 언덕길 하나 없이 편안하게 달리다보면 시골 간이역을 연상케 하는 무인역 대광리역과 신망리역이 나타난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신망리역 대합실에 있는 서고와 책들. 한 시간에 한 번꼴로 오는 경원선 기차를 이용하는 주민들 혹은 나 같은 여행자를 위한 작은 도서관이 있으니 꼭 들러보시길.

서고 뒤 열린 후문 밖으로 까만 차양을 친 인삼밭이 펼쳐져 있다. 경기도에 이런 간이역이 남아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연천역에 들를 때는 오일장이 열리는 매 2일이나 7일 날 가면 좋겠다. 집에서 손수 만든 수제 메주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 아담한 장터가 정겹게 펼쳐진다.

▲ 주요 여행 코스 : 경원선 전철 신탄리역 - 차탄천변 평화 누리길 - 대광리역 - 신망리역 - 연천역 (시간이 되면 전곡역 - 한탄강역)

임진강 바라보며 접경지역 달린다, DMZ 평화누리길

철책 너머로 북한땅이 훤히 보이는 임진강변 들녘길.
 철책 너머로 북한땅이 훤히 보이는 임진강변 들녘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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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탄천변의 '평화누리길'은 경기도 연천군의 들녘을 훝고 지나간다.
 차탄천변의 '평화누리길'은 경기도 연천군의 들녘을 훝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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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강줄기지만 임진강은 조금은 다른 감흥을 주는 강이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우리 땅,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우리 동포들이 임진강 너머에 있어서 그럴 게다. 이 강변에 'DMZ 평화 누리길'이 있다. 철책길·논둑길·마을길·강변길 등 다양한 길이 이어진 코스로 험준한 산이나 급경사의 언덕이 없어 자전거 여행이 가능하다.

작은 돌들이 드문드문 박혀있는 철책 너머로 임진강변의 넓고 풍요로운 논밭과 동식물들의 보금자리로 알맞을 것 같은 습지, 초지가 아마존처럼 비밀스럽게 펼쳐져 있다. 철책 위로 자유로이 날아 남북한을 넘나드는 하얀 백로들이 부럽기만 하다. 평화보다는 분단의 안타까움과 상처가 더 다가오는 길이다.

임진강역에서 가까운 파주 DMZ 길의 들머리 마정리에 들어서면 마정 초등학교 앞에서 놀고 있는 귀여운 초등학생들이 자전거 여행자를 반긴다. 이 마을 북쪽 방향에 임진강변을 따라 난 '대비둑길'이 있다. 따로 둑길의 이정표가 없으니 동네 '부흥 슈퍼' 가게에 들어가 길을 물어 보면 바로 '대비둑'을 알려준다. 대비둑길에는 작은 초소와 함께 초병이 지키고 서있는데 방문 기록 장부에 이름과 주민번호를 적으면 통과할 수 있다.

접경지대의 인적 없는 강변길이라 그런지 논밭을 돌보러 나온 동네 주민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먼저 인사를 하게 된다. 임진리 강가에 있는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정자 '화석정', 임진강 적벽 산책로, 두지리 나루터에서 운행하는 황포돛배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코스의 즐거움이다. 특히 석양이 물들 즈음 황금색으로 변한 임진강과 주변 황금들판의 어우러진 풍경은 가을 내내 잊혀 지지 않을 정도로 멋있다.

▲ 주요 여행 코스 : 경의선 임진강역 - 마정리 - 대비둑길 - 임진강변 - 임진리 화석정 - 임진강변 적벽 산책로 - 장좌리 - 두지 나루터 - 적성면 버스터미널


태그:#자전거여행, #대장들녘, #시흥 갯골길, #임진강, #차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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