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습기가 많은 곳에 고마리가 한 무더기씩 피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고마리꽃이 피면 완연한 가을이고, 그들이 여물어갈 무렵이면 깊은 가을이다. 그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피어있는 모습은 얼핏보면 며느리밑씻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줄기에는 가시가 없다. 며느리밑씻개보다 부드러운 꽃이다.
그들의 이름은 '고마우리, 고마우리' 물을 깨끗하게 해주니 '고마우리'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더러운 물을 제 몸에 모셔 깨끗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고고함을 본다.
나는 향기로운 삶을 살고 있을까
참취는 꽃보다 이파리다.
솔직히 참취꽃의 향기를 맡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딱히 국화과의 꽃이 가진 특유의 향기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참취의 향은 깊은 것 같다. 그 이유는 이른 봄 언 땅을 뚫고 올라온 참취를 쌈으로 먹거나 봄나물로 먹은 기억 때문일 것이다.
봄에 뜯어 살짝 데쳐서 묵나물로 만든 참취는 요즘이 제철이다. 다 말라서도 자신의 향기를 잃지 않은 참취, 나는 살아서도 향기를 내며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물봉선이 한창이다. 그가 내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십 여년전 제주도 중산간 도로변의 습지에서 였다. 이미 그 전에도 아주 오래 전부터 그곳에서 피고 지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해에 그가 보였고, 그를 본 해에 나는 비로소 눈을 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아름다운 것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보는 눈을 뜨지 못함이 아닌가 싶다. 그냥 얼핏 보면, 온통 상처주는 것만 있는 것 같지만 마음의 눈을 뜨고 바라보면 아름다운 구석이 어찌 없을까.
고향 가는 길. 그 길 어느 곳엔가 피어있을 가을꽃들을 바라보는 추석은 고향을 더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다.
자연에 널린 놀잇감 찾는 아이는 없다
남한산성 오전리 장에 들렀다. 장 입구에는 장식품으로 팔기 위해 내놓은 꽈리가 즐비하다. 꽃은 그닥 예쁘지 않은 것 같은데 열매는 어찌도 저리 고운지.
한창 감성이 풍부할 때에는 가을이 오면 괴리줄기들을 모아 벽에 걸어두기도 했다. 한겨울 다 지나고 그 가을빛이 시들해갈 봄 즈음에 뒤꼍에 던져두면 그곳에서 꽈리가 올라오곤 했다.
문구점에서 팔던 고무꽈리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식물의 특유한 맛을 느끼며 연한 껍질 터질새라 조심조심 꽈리를 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자연 그 자체가 놀잇감이었다. 돈을 주고 사는 놀잇감은 거의 없었는데, 이젠 자연에 놀잇감이 지천이라도 그것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만날 수가 없다.
수생식물 '줄'이다. 냇가나 개천 같은 곳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줄기를 뽑아 군것질거리를 하던 식물이다. 맛은 그냥 '풀 맛'이지만, 줄의 하얀 부분의 아삭거림은 잊을 수가 없다. 이젠, 그 풀맛을 본지도 오래돼 기억에만 남았다.
요즘이야 돈을 주고 사는 것만 먹는 것인 줄 알지만, 가을 이맘때 자연으로 나가면 먹을거리가 얼마나 풍성했는지 모른다. 버섯은 물론이고, 청솔모가 따다 잣나무 아래 떨어진 잣을 줍는 재미도 쏠쏠했다. 밤과 도토리·개암열매 그 모든 것들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었다.
고향길을 거닐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자연의 선물을 직접 거둬 먹어보게 하는 것도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어릴적 몸에 모셨던 맛, 그 맛이 평생가는 것이 아닐까.
추석이다. 고향의 품에 피어난 가을꽃들 지긋하게 바라보고 오는 것도 추석의 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