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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당구를 가르치는 일은 운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 보다 어렵다. 그래도 신사정신에 입각하여 참고 또 참는다.
▲ 당구치는 부부 아내에게 당구를 가르치는 일은 운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 보다 어렵다. 그래도 신사정신에 입각하여 참고 또 참는다.
ⓒ 이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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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만 하더라도 당구는 젊은이들을 하나로 묶는 스포츠였다. 당구장은 한때 불량청소년들이나 깡패들이 자주 집합하는 장소로 인식돼 한 때는 불건전한 장소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이제는 청소년 유해시설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났다. 게다가 여성들도 당구를 즐기는 세상이 됐다. 예전만 못하지만 이처럼 꾸준하게 전 국민으로부터 당구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구 중 4구 게임이 있다. 대부분 당구장에 가면 4구 게임을 하는데 바로 이 게임이 가지는 신사정신이 당구의 인기를 지속하게 해주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당구를 즐기는 사람들의 실력 차는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능력에 따라 매우 크다. 하지만 고수와 하수가 경쟁을 하더라도 하수가 이길 수 있는 구조다. 이것이 바로 당구의 가장 큰 매력이고 신사정신이 아닌가 싶다.

각자 자신이 정하는 실력만큼의 점수를 정해놓고 그 점수를 획득하면 승자가 되는 게임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물론 다른 게임에서도 실력이 떨어지는 상대와 할 때 간혹 일정 정도 어드벤티지를 주고 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때는 설사 고수가 지더라도 패배를 인정하기 보다는 강자의 아량쯤으로 여기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당구는 전혀 다르다. 500점과 30점이 치더라도 30점이 이겼을 경우 하수가 승자로서의 기쁨을 누리고 고수는 기꺼이 패배를 인정하고 당구 비를 계산한다. 또한 하수는 자신에게 부여된 혜택을 지속적으로 누리려 하지 않고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의 실력을 길러 고수와 동등한 조건에서 게임에 임하려고 노력한다. 고수는 하수가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 오를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다.

당구 게임을 하다보면 운이 좋아 점수를 획득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고수든 하수든 정중히 상대방에게 예를 표하고 미안해 한다. 상대방이 실수를 하면 파이팅을 외치고 설사 운으로 점수를 획득하더라도 얼싸안고 기뻐하는 다른 스포츠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이래서 당구를 신사의 스포츠라고 한다.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세상살이가 하나의 게임이 되고 있다.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각 자가 게임에 참여하는 선수가 되어 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우리말을 다 배우기도 전에 시작한 스펙 쌓기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더라도 끝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지지 않으려면 실력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게임에서 실력 차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 뒤처지면 앞서가는 경쟁자를 따라 잡기는 무척 어렵다.

도시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각종 사교육을 받은 선수와 시골 분교 출신 선수가 같은 시험지를 푼다. 수도권대학 출신 선수와 지역 대학 출신 선수가 링 위에서 붙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선수가 동일한 출발점에 서 있다. 수도권과 지방이 서로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세상에서 승자는 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정해지기 마련이다.

2013년 대한민국 선수들은 이런 게임장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약자들을 위해 지역균형선발, 장애인 전형, 지역대학 할당제, 지방분권 등 약간의 어드벤티지가 생기고는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남기고 있는 인간성 파괴가 심화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1%의 승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세상은 종국에는 1%의 승자에게도 파멸을 가져올 뿐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 할 때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고 세상은 살맛 나는 것이다.

내일이면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 연휴가 시작된다. 우리 조상들이 명절을 만들어 놓은 것은 단순히 조상들의 은덕을 잊지 말라는 의미뿐이 아니라 후세들이 이날이라도 함께 모여 그동안의 고마움을 감사하고 서운함은 털어 버리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정말 시끄럽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어느 덧 7개월이 지났건만 세상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이며,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의혹 사건이며,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발표며….

약자와 강자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주며, 기다려주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기도하면서 이번 추석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당구도 치면서 짜장면도 시켜 먹어야겠다. 그러고 보니 환한 보름달과 당구공이 많이 닮았다.


태그:#당구, #당구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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