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학생들이 백양로 '막둥이 나무'를 지키기 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학생들이 백양로 '막둥이 나무'를 지키기 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막둥아, 스탠 바이 미(내 곁에 있어줘)~"

지난 12일 오후 6시께, 연세대 신촌캠퍼스 도서관 앞에서 광고 삽입곡으로 유명한 <스탠 바이 미>(Stand By Me)가 흘러나왔다. 음악에 맞춰 검은 무용복을 입은 다섯 명의 대학생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멈춰 서서 이들을 쳐다봤다.

베어진 나무들과 휘어진 철근,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콘크리트 덩어리…. 무대라고 하기에는 뒤로 펼쳐진 풍경이 다소 어지러웠다. 무대 위 학생들은 학내 연극 동아리원들로, 대학본부가 추진 중인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아래 백양로 프로젝트)를 반대하고 남은 나무를 지키기 위한 퍼포먼스를 벌이는 중이었다.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나무는 지난 6일 일부 교수들이 불침번을 서가며 지켜낸 바 있는 '막둥이' 은행나무다. 왜 이들은 나무를 지키려고 하는 것일까.

 도서관 앞 공사장 안에 남은 잘려진 나무들 모습. 뒤로 학생들이 '막둥이'라 부르는 은행나무가 보인다.
 도서관 앞 공사장 안에 남은 잘려진 나무들 모습. 뒤로 학생들이 '막둥이'라 부르는 은행나무가 보인다.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최근 연세대에는 백양로 프로젝트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연세대 정문에서 본관까지 이어지는 길인 백양로는 캠퍼스의 중심 축이자 1970~80년대 대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을 펼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백양로 프로젝트란 캠퍼스 리모델링의 일환으로, 2015년까지 백양로에 지하 4층·지상 1층 규모의 주차·교육·문화시설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홍보 누리집을 통해 "친환경 녹지의 보행로와 광장을 조성하겠다"고 밝히며 지난 8월 21일 착공에 들어갔다. 그러나 학생·교수들은 대학본부가 반대 여론을 무시한 채 수익성만을 좇아 졸속공사를 진행했다고 비판하는 상황이다.

지난 8월 21일 착공에 들어가면서 대학본부 측과 학생·교수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대학본부 측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공사를 강행했지만, 이에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구성원들은 "여론 수렴 없는 일방적 처사"라며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 학생들은 공사장 터에 천막을 치고, 공연과 영화 상영, 공사장 외벽에 벽화 그리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반대 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또한 연세대 신촌 캠퍼스 교수 800여 명 중 240명이 모인 '연사모(연세를 사랑하는 교수들의 모임)'도 릴레이 기고문을 쓰는 등 힘을 보탰다.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 저지를 위한 천막이 공사장 안에 차려져있다.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 저지를 위한 천막이 공사장 안에 차려져있다.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지나가던 학생들이 백양로 프로젝트에 관한 설명판을 읽어보고 있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백양로 프로젝트에 관한 설명판을 읽어보고 있다.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도서관 앞에서 퍼포먼스를 지켜보던 이민철(23) 학생은 "대학본부가 학생들과의 의사소통도 없이 독단적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내에서 만난 최정상(22)씨는 "백양로는 역사적 상징성이 굉장히 강한 곳이라고 알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공사를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대화도 없이 역사를 해치면서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백양로도 일종의 무형자산인데 너무 쉽게 개발한다는 지적이었다.
        
"지나친 상업화 아닌가" vs. "학생 복지 위한 것"

캠퍼스 상업화 논란은 비단 연세대만의 일은 아니다. 2003년 고려대, 2008년 이화여대 등 다른 대학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의 경우, 학내 여론 수렴 절차를 충실히 거쳤고 완공 후에도 학생들이 주로 시설을 이용했다. 연세대 학생들은 이런 점에서 이화여대와 연세대의 경우는 다르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이 공사장 외벽에 그린 백양로 나무 그림
 학생들이 공사장 외벽에 그린 백양로 나무 그림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로 인해 만들어진 공사장을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로 인해 만들어진 공사장을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연사모의 교수들은 백양로 프로젝트의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공사장 천막을 지키던 서길수 경영학과 교수는 "대학본부 측 말대로라면 공사 후 세울 건물의 77%가 주차장이다, 주차장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왜 900억 원씩이나 들여 공사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함께 있던 조대호 철학과 교수는 "대학의 존재 이유는 결국 후학 양성에 있는 것인데, 주차료와 공간 대여료 등 요즘 대학에서 돈벌이를 하는 게 너무 당연시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학본부 측은 이에 대해 백양로 프로젝트의 목적은 수익 사업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임홍철 백양로 사업단장은 "이번 사업은 학생들의 편의 증진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지금도 법정 주차 대수 제한 때문에 주차장이 더 필요한 게 현실이고, 주말에는 지역사회 주민들에게도 제공할 계획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대호 철학과 교수, 서홍원 영문학과 교수가 백양로 프로젝트 저지를 위해 천막에서 밤을 지내는 모습.
 조대호 철학과 교수, 서홍원 영문학과 교수가 백양로 프로젝트 저지를 위해 천막에서 밤을 지내는 모습.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지난 12일, 학생들의 '막둥이 지키기' 퍼포먼스가 열리던 시각. 공사장 뒤 도서관 7층에서는 '제대로 된 백양로 사업을 위한 1차 목요 포럼 및 공청회'가 열렸다. 교수 등 40여 명이 모여 백양로 프로젝트의 건축·토목공학적 문제점과 타 대학의 성공적 리모델링 사례 등을 이야기했다. 이화여대 편의시설(ECC) 건축사업을 맡았던 박경희 이화여대 경영학 교수는 "당시 교수들은 물론 지역사회 공동체·학생들을 만나며 일일이 설득하느라 약 4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며 "학교는 결국 학생들을 위한 최고의 시설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한혜정 교수(연세대 문화인류학)는 포럼을 마친 뒤 이날 밤 늦게까지 천막을 지켰다. 비가 와서 천막들 사이로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조 교수는 "가르치던 한 학생이 얼마전 내게, '우리 총장님은 개발적 상상력이 참 풍부하신 것 같아요'라 말하더라"며 학내 지나친 난개발을 경계했다. 그는 또 "학생들이 이럴 때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인간다운 삶을 배워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백양로 지키기 프로젝트'에 서명한 학생은 1000여 명 정도. 서명은 페이스북 페이지인 '백양로님 많이 당황하셨어요?'에서도 받고 있다. 앞으로 2년여가 걸릴 사업인 만큼, 이를 두고 대학본부와 구성원 간 팽팽한 줄다리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태그:#연세대, #백양로, #캠퍼스 상업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