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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0일 오후 10시2분]

생각에 잠긴 전재국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미납 추징금에 대한 자진납부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이행각서를 검찰에 제출한 뒤 차량에 올라타 생각에 잠겨 있다.
▲ 생각에 잠긴 전재국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미납 추징금에 대한 자진납부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이행각서를 검찰에 제출한 뒤 차량에 올라타 생각에 잠겨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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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징금 환수 문제와 관련해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가족 모두를 대표해 사죄드립니다."

9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 앞을 잘 볼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이 자리에서 발표된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의 추징금 전액 납부 선언은 우리 사회가 아무리 오랜 세월 해결 못하고 있는 문제라도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언론과 검찰, 국회가 힘을 모으면 충분히 풀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 전 대통령이 군형법상 반란·내란과 뇌물수수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을 확정 판결 받은 때가 1997년 4월이었으니, 정확히 16년하고도 5개월 만에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추징금 문제는 올해 5월 중순까지는 답보상태였다. "은행예금 29만원밖에 없다"에 가로막혀 진도를 못 나갔던 문제가 4개월만에 해결된 것이다.

이 4개월을 복기하는 것은 향후 우리 사회가 오래 묵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

[언론] <한겨레> 문제제기, <뉴스타파> 특종... 이념 성향 막론하고 한목소리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자진납부 계획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자진납부 계획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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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전 대통령 추징금 문제는 드물게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언론이 한목소리를 낸 사안이었다. '전두환 쿠데타'의 원죄를 공유하는 <조선일보>마저 사설을 통해 "전두환씨, 국가와 국민에 거짓말하며 인생 마칠 건가"(7월 17일자)라고 말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의 사설 제목은 "'전두환 비자금' 의혹, 한 푼도 남김없이 밝혀야"였다.

이런 흐름을 형성하는데 <한겨레>가 선도적으로 힘을 보탰다. 이 신문은 지난 5월 20일부터 창간 25주년 특집 "전두환의 숨겨진 재산을 찾아라" 기사를 시작으로 추징금 미납 문제를 공론화했다. 사실 이전까지 미납 추징금 1672억2652만원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문제였다. 이 신문은 다시한번 환기시켰다. 10월이면 추징금 시효가 끝난다고.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그러면서 독자에게 제안했다. 같이 찾아보자고.

협업(크라우드 소싱, crowdsourcing) 제안에 누리꾼들이 반응했다. 9월 초 현재까지 전자우편과 SNS를 통해 140여 건의 제보가 쏟아졌고, 그를 토대로 후속보도가 이어졌다. 이 사안을 주도한 고나무 기자는 "올해 초 불거진 5·18 역사 왜곡 논란을 계기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추징금 및 5공화국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기자로서 화두였다"면서 "언론이 좀더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서 기획기사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6월 3일 <뉴스타파>가 ICIJ(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자료를 토대로 해외 조세피난처에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페어퍼 컴퍼니 '블루 아도니스'를 설립했다고 특종 보도한 것 역시 중요한 계기였다. <한겨레>가 여론을 환기했다면, <뉴스타파> 보도는 여론에 불을 지핀 셈이다.

[검찰] 민첩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채동욱 총장, 전면에 나서다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추징금을 받아낸 검찰의 행보에는 채동욱 검찰총장의 뚝심이 바탕이 됐다. 1995년 평검사 시절 12·12 군사반란 사건 재수사에 참여했던 채 총장이 공소유지 검사로서 법정에서 전 전 대통령과 설전을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추징금을 받아낸 검찰의 행보에는 채동욱 검찰총장의 뚝심이 바탕이 됐다. 1995년 평검사 시절 12·12 군사반란 사건 재수사에 참여했던 채 총장이 공소유지 검사로서 법정에서 전 전 대통령과 설전을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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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불을 지폈다면, 검찰은 그 위에 솥단지를 걸어 밥을 했다. 사실 아무리 여론이 들끓어도 검찰이 마음먹고 움직이지 않았다면 추징금 문제는 해결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전 전 대통령측이 여론의 눈치를 봤다면, 추징금 문제를 16년 동안이나 끌어왔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환수의 1등 공신은 역시 검찰이다.

검찰은 빠르게 반응했다. <한겨레> 기획보도에 반응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보도 다음날인 5월 21일 채동욱 검찰총장이 직접 나섰다. 그는 주례 간부회의에서 "고액 벌금·추징금 미납자를 파악하고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서라도 철저히 징수할 수 있도록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사흘 뒤인 5월 24일 서울중앙지검에 '전두환 추징금 집행전담팀'이 구성된다.

검찰은 차근차근 나아갔다. 과거 기록을 꼼꼼히 검토한 후 7월 16일 연희동 자택 압류와 일가 소유 회사·주거지 17곳 압수수색으로 본격 압박을 시작했다. 이후 수 차례 추가 압수수색을 실시했고, 전담팀도 확대했다. 8월 12일 전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씨 소환, 다음날 조카 이재홍씨 체포, 또 그 다음날 이창석씨 구속영장 청구에 이어, 이달 3일에는 차남 전재용씨까지 소환했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납부율이 컸던 노태우 전 대통령 측의 미납액까지 모두 추징하는 부가 효과까지 얻었다.

이런 행보의 밑바탕에는 채동욱 검찰총장의 뚝심이 있었다. 채 총장은 6월 4일 주례보고회의에서 "추징금 추적은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용기와 몸을 던지는 헌신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7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지금부터 (전 전 대통령의 재산임을) 입증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 끊임없이 진행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과정에서 범죄 혐의가 포착이 된다면 수사로 전환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1995년 평검사 시절 12·12 군사반란 사건 재수사에 참여했던 채 총장이 공소유지 검사로서 법정에서 전 전 대통령과 설전을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사형을 구형한 검찰의 논고문 초안은 그의 손에서 작성됐던 것이었다. 그랬던 그가 18년이 지나 검찰총장으로서 추징금 환수에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은 역사의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국회] 과거 감정을 뒤로 하고 검찰 밀어주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시효를 연장하는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이 6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33인에 찬성 227인, 반대 2인, 기권 4인으로 통과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시효를 연장하는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이 6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33인에 찬성 227인, 반대 2인, 기권 4인으로 통과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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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여의도 국회는 6월 27일 일명 '전두환 추징법'으로 불리는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으로 화답했다. 이 법은 검찰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실시된 7월 16일이 이 법이 발효된 직후라는 점은 이번 추징금 국면에서 국회의 법안 통과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보여준다.

전두환 추징법의 주요 내용은 크게 ▲ 추징금 시효를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 추징 대상을 가족 등 제3자로까지 확대하고 ▲ 추징금 집행의 실효성 강화를 위해 검사가 관계인의 출석 요구, 과세정보 제공 요청, 금융거래정보 제공요청 및 압수·수색영장 청구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입법 논의 과정을 들여다면, 정치권의 속내는 복잡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난 대선 당시 여야 모두 검찰 개혁을 전면에 내걸었고, 각론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 개혁의 핵심은 과대한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판단할 때 전두환 추징법은 반대였다. 오히려 검찰의 권한을 늘렸다. 민주당 법사위 관계자는 "사실 당시 검찰 개혁 입법 논의가 전혀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오히려 검찰의 권한을 강화하는 전두환 추징법이 맞는 방향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여야 정치권은 검찰을 밀어줬다. 특히 검찰에 '구원'이 있었던 야당이 더 적극적이었다. 그 결과 검찰은 전 전 대통령뿐 아니라 가족들을 압박할 수 있었고, 훨씬 손쉽게 성과를 낼 수 있었다.

2013년 뜨거웠던 여름, 펜을 쥔 언론과, 칼을 쥔 검찰과, 법전을 쥔 국회는 이렇게 움직였다. 그리고 16년 넘게 버텨오던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전두환#전재국#추징금#채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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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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