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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 부두에서 유엔군 피난 수송선에 오르고자 몰려든 피난민들(흥남, 1950. 12. 19.).
 흥남 부두에서 유엔군 피난 수송선에 오르고자 몰려든 피난민들(흥남, 1950. 12. 19.).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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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미정

준기가 깊은 낮잠에서 눈을 뜨자 순희는 곁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어머, 깨셨군요."
"뭐하는 거야요?"
"당신 바지 단추 달아요."
"관 두라요."
"내가 떨어트렸잖아요."
"하긴 당신 바느질 솜씨는 빈틈이 없디요."

준기는 시트를 걷고는 자기 배의 꿰맨 수술자국을 보였다.

"아두 확실하게 당신의 바느질 솜씨가 내레 배에 새겨젯디."
"어머, 아직도 꿰맨 자국이 선명하네요."
"내레 이 자국을 없애려다가 기대루 뒀수. 기때를 잊을 수가 없디. 당신 아니믄 내레 죽었수."

순희는 준기 배의 수술자국을 살피며 말했다.

"나도 생각이 나네요. 그날이 1950년 8월 하순으로 음력 보름께였는데 자정이 넘자 갑자기 안개로 캄캄했지요. 그날 밤 큰 야간전투가 있었어요. 이튿날 수색조가 절벽 아래서 대검에 찔려 창자가 쏟아진 당신을 업고 왔어요. 나는 곧바로 밖으로 쏟아진 창자를 깨끗이 소독한 뒤 뱃속으로 집어넣고 마취도 하지 않은 채 봉합수술을 했지요."
"기때 무턱 아파 몸부림을 텟지요."
"그럼요,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고, 윤성오 상등병이 붙잡아 준 탓으로 간신히 봉합수술을 마칠 수 있었어요."
"거 윤성오 상등병을 서울 창신동에서 만낫디. 목사님이 되었더만요."
"어머, 그래요. 정말 사람 팔자 알 수 없구만요."
"참 우리는 이야기도 많구, 사연도 많습네다."
"그래서 이렇게 다시 만난 겁니다."
"기거 말이 되네요." 

준기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후딱 세수한 뒤 순희가 단추를 달아둔 바지를 입었다.

"벌써 저녁시간입니다. 뭘 드실래요."
"여기 와서도 호텔 밥을 먹기가 좀 그러네요. 뭐, 이 고장의 별식은 없나요?"
"길세, 내레 구미서 지낼 때 국시를 좋아했는데."
"그럼, 우리 그걸 먹어요."
"알가시오. 아까 요기로 오다보니 채미정 앞에 식당가가 보이던데 거기 가믄 있을 거야요."
"산책도 할 겸 거기로 가요."

그들은 호텔을 벗어나 채미정 쪽으로 나란히 걸었다. 순희는 슬며시 준기의 팔짱을 꼈다. 준기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곧 채미정이 나왔다.

"우선 요기를 한 번 둘러봅세다."
"좋아요."

구미 채미정(埰薇亭)

명승 제52호
소재지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산249
이 건물은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영조 44년(1768)에 건립한 정자다. 길재는 고려시대인 1386년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를 거쳐 문하주서에 올랐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선산에 은거하면서 절의를 지켰다. '채미'란 이름은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것을 중국의 충신 백이(伯夷)·숙제(叔齊)가 고사리를 캐던 고사에 비유하여 명명한 것이다. …

구미 금오산 어귀 채미정(2004. 12. 1.).
 구미 금오산 어귀 채미정(2004. 12. 1.).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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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가락지

안내판 옆에는 큰 바위 돌에 길재 선생의 회고가가 새겨져 있었다.

"어머, 이 시조! 나 초등학교 다닐 때 줄줄 외웠던 시조에요. 지금도 욀 것 같아요."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길재.

"잘 외시우. 순희씨는 우리 고향의 진달래꽃 시도 잘 외우더만…."
"집안 형편이 좋았더라면 간호학교에 가지 않았을 거야요. 펄벅과 같은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그건 과욕이에요. 나이가 들어도 시나 소설, 에세이를 좋아하는 걸로 만족할래요."

그들은 채미정 정자에 나란히 앉았다. 준기는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상자를 꺼냈다.

"순희씨, 이것 받으시라요."
"뭐예요."

순희가 포장지를 뜯자 상자에서 쌍금가락지가 나왔다.

"웬 거야요?"
"순희씨가 기때 구미 형곡동 행랑채에서 출발에 앞서 나에게 금가락지를 주었댓디요. 그 가락디 참 요긴하게 잘 썻디요. 내레 순희씨에게 무얼 선물할까 생각하다가 문득 그게 떠오르더만요. 기래서…."

순희는 그 금가락지를 손가락에 끼어보았다.

"언제 내 손가락을 쟀소?"
"눈대중으로 맞췃디요."
"고마워요. 당신은 나를 또 한번 놀라게 하네요. 그때 그 일을 잊지 않고 있다니. 평생 간직할게요."

금오산 도선굴(2004. 12. 1.)
 금오산 도선굴(2004. 12. 1.)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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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이튿날 아침, 느즈막이 일어난 두 사람은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아침밥을 든 뒤 금오산 등산에 나섰다. 등산로 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타자 도선굴 어귀에 이르렀다. 거기 명금폭포에서는 폭포수가 시원하게 쏟아졌다. 그 소리가 마치 우레 소리처럼 들렸다. 그 소리를 뒤로 하며 바위벽을 타고 도선굴에 이르자 구미시가지와 낙동강, 천생산, 유학산 일대가 환히 보였다.

"낙동강을 보니까 그 시절이 생각나네요. 그때가 9월 초순이었을 거예요. 당신과 낙동강을 건너는데 밤 강물이 어찌나 찼던지…. 그런 가운데 미루나무가지를 놓쳐 강물에 떠내려가는 걸 당신이 잡아 주었지요. 그날 밤 낙동강 물귀신이 될 뻔했지요. 그 전 야전병원에 있을 때도 융단폭격 날 당신 때문에 살아났고."
"참 우리는 서로간 빚도, 추억도 많습네다. 추억이 많은 사람은 늙어서도 외롭디 않다디요."
"아마, 기럴 거야요."
"오늘 따라 문득 야전병원장 문명철 중좌가 생각납네다."
"그 분은 의사로나, 인간으로나 매우 훌륭한 분이었지요."

준기와 순희는 낙동강 쪽을 바라보며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낙동강과 유학산에서 있었던 추억담을 나누며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했다. 그들은 객실로 돌아온 뒤에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나 과거가 복잡한 여자예요. 내 입으로 당신을 기다리겠다고 굳게 약속까지 하고는…."
"애초에는 섭섭한 마음도 많았디만 기게 곧 순희씨 탓이 아니란 걸 알앗시오. 그만 됏수다."
"사실 나 미국에 아들도 하나 있어요."
"우리 사이 그새 24년의 세월이 디났는데 그만한 과거나 사연이 없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일 거야요. 사실 나두 요기서 멀지 않는 곳에 내 딸이 살아요."
"부인과는 사별했나요?"
"아니오. 기낭(그냥) 기러케 헤젯디. 왠지 그 너자에게 마음이 가디 않더만요."
"……."

채미정에서 바라본 금오산(2004. 12. 1.).
 채미정에서 바라본 금오산(2004. 12. 1.).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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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묻지 마세요

"우리 앞으로 과거를 묻디 말고, 서로의 상처를 덮으면서 삽세다."
"고맙습니다. 무슨 영화 제목 같아요."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그런 영화도 이서요. 해방과 육이오를 겪는 동안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별의별 일을 다 겪어시오. 데(저)마다 본의 아니게 죄도 많이 짓시우(지었어요). 우리는 이렇게라두 다시 만났으니 다행입네다. 아직도 만나디 못한 가족들은 일천만 명이 넘는다고 하더만요."
"당신은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나지 못했지요."
"길쎄, 내레 생전에 만나보기나 할디. 아직도 휴전선 철조망은 요디(요지)부동이디요."
"생전에 북의 가족을 만나보시려면 미국으로 오세요. 미국동포 가운데 이북사람은 제삼국에서 가족을 만나본 이도 있다고 하던데요."
"기래요?"
"앞으로 미국 동포들은 마음만 먹으면 북한에 갈 수도 있을 거라고도 하더군요."
"아, 기런 길도 있군요. 내레 당신을 만나자 이데는(이제는) 오마니를 만나고 싶은 욕심이 불쑥 솟네요."
"그건 자식으로 당연한 욕심이에요."  
"내레 고향을 떠나올 때 우리 오마니는 '네래 훈장을 따오기보다 아무쪼록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가서'라고 하셨디요."
"그게 세상의 모든 어머니 마음입니다. 꼭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 생전에 만나 뵈세요. 아마도 부모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준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어렸다. 그 눈물을 순희가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두 사람은 세면과 몸단장을 한 뒤 곧장 서울로 향했다.

유엔군 묘지에 한국의 한 소녀가 헌화하고 있다(부산, 1951. 4. 9.).
 유엔군 묘지에 한국의 한 소녀가 헌화하고 있다(부산, 1951. 4. 9.).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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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들과 답사 길에 직접 촬영하거나 수집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태그:#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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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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