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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음모' 혐의로 현역의원 사상 12번째 체포동의안이 처리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지난 4일 저녁 국정원의 구인영장집행에 응하고 있다.
▲ 국정원 직원에 둘러싸인 이석기 '내란음모' 혐의로 현역의원 사상 12번째 체포동의안이 처리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지난 4일 저녁 국정원의 구인영장집행에 응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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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5·16 군사정변, 곧 쿠데타의 주역이었다. 쿠데타의 우두머리 박정희가 그 무리들과 함께 가장 먼저 한 일은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이었다. 반란 군인들로 구성된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대한민국의 최고 통치기관임을 주요 골자로 하는 법이었다. 1961년 6월 6일, 쿠데타가 일어난 지 20여 일이 지난 뒤였다.

그 나흘 뒤인 6월 10일, 반란 세력은 새로 급하게 만든 최고 정보기관 중앙정보부(아래 중정)를 위해 중앙정보부법을 국가재건최고회의법과 함께 공포한다. 중정은 국가재건최고회의법의 중앙정보부 조항에서 규정한 바, "혁명과업 수행의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쿠데타 친위 기관이었다. 중정은 반란 무리가 무력으로 찬탈한 부당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막강한 권능이 부여된 권력 보위 기관었던 셈이다.

중정과 안기부, 그리고 국정원

그랬기에 중정을 둘러싼 권력 암투는 치열했다. 최초의 중정부장은 36세의 '열혈 청년' 김종필이었다. 박정희의 조카사위(김종필의 아내는 박정희의 형인 박상희의 딸 박영옥)인 그는 당시의 정치·외교와 경제, 사회 분야 등을 망라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로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했다.

하지만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중정부장 자리를 내놓았다. 그에게 불만을 품은 육사 5기 김재춘의 견제 때문이었다. 중정부장에 오른 김재춘은 육사 8기 김종필이 심어놓은 중정 국장과 지부장 30여 명을 전격 교체한다. 하지만 그 또한 5개월 만에 김형욱에게 자리를 내주고 만다.

김재춘을 뒤이은 김형욱은 햇수로 7년간(1963~1969) 중정부장을 지낸다. 유신 후반에는 코리아 게이트 사건을 폭로하면서 박정희 정권과 마찰을 빚다가 미국 망명 후 실종된다. 7년간 막강한 권력자의 자리에 있던 업보의 결과였을까. 그의 최후는 '서류상 사망', '사실상 사망 선고' 등으로 비극적인 의문으로 장식되었다. 김형욱의 중정은 1차 인혁당 사건, 동백림 사건 등 대형 공안 사건을 주도했다.

중정의 권력 암투는 필연적으로 정보 기관 본연의 임무를 소홀하게 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그들의 국내 정치 몰입은 국외 정보 분야에서의 무능함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온 경우도 많았다.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때는 공안검사들조차 중정의 수사 기록을 못 믿겠다며 반발하다가 사표까지 썼다. 1967년의 동백림 사건 처리 과정에서는 독일 정부로부터 국교 단절 불사라는 통보를 받았다. 1973년에 일어난 김대중 납치 사건 때에는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됐다. 모두 중정의 무능과 무리수로부터 비롯된 일들이었다.

이런 상황은 중정을 뒤이은 국가안전기획부(아래 안기부)와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 체제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영삼의 문민 정부를 탄생시킨 1992년 대선 직전, 안기부는 중부지역당(위장 명칭 민족해방애국전선) 사건을 터뜨린다. 안기부는 중부지역당 사건에 '남로당 이후 최대의 간첩 사건'이라는 자극적인 수식어를 덧붙였다. 이에 '앵무새' 언론에서는 '건국 이래 최대 간첩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화답하며 국민들을 광기 어린 공안 잔치판으로 밀어넣었다.

당시 안기부가 내놓은 사건 개요는 살벌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사건의 발단에 있던 거물 간첩 이선실에게는 '북한 권력 서열 22위'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권총과 수류탄 등의 무기류와 난수표 및 공작금 100만 달러 등 총 149종 2399점에 달하는 범죄 혐의 증거물이 그 뒤를 따랐다. 구속자만 62명이었고, 지명 수배자는 300여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법원 판결 결과, 중부지역당은 북한의 조선노동당과는 관련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는 말이 있다. '태산이 떠나갈 듯 시끄럽게 굴더니 막상 나타난 것은 쥐 한 마리'라는 뜻의 고사성어다. 예고는 큰일이 날 것처럼 떠들썩했으나 그 결과가 보잘것 없을 때 이를 비꼬는 말이다. 20여 년 전 안기부가 주도한 중부지역당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이석기 RO 사건, 놀라운 기시감

그런데 그와 비슷한 사례는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최근 '석기 시대' 정국을 주도하는 국정원의 '과거 작품'인 '일심회 사건'과 '왕재산 사건'이 그것이다. 2006년에 일어난 일심회 사건은 옛 민주노동당의 당직자들이 북한에 당원 신상 정보 등을 제공한 혐의가 주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일심회 조직의 실체를 없는 것으로 보고 이적단체 혐의에 무죄 선고를 내렸다. 일심회 간부들이 북한에 넘긴 것으로 알려진 기밀의 상당수도 이미 언론에 공개된 것으로 드러나 실소를 자아냈다.

왕재산 사건은 불과 2년 전인 2011년에 일어났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당시 집권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수세에 몰려 있었다. 한나라당 소속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투표에서 패배해 여론전에서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국정원과 검찰은 왕재산 사건에 12년 만에 처음으로 '반국가단체' 혐의를 적용하며 대대적인 공안몰이를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최종 선고에서 반국가단체 혐의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

지난 8월 30일, 국정원은 'RO 조직 사건'을 터뜨렸다. 1만여 명의 '정예' 인력에 1조 원에 가까운 막대한 예산을 주무르는 국정원이라는 거대 공룡 조직이 (비록 '셀프'이긴 했지만) '개혁' 명분으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었다. 그들이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의원과 그 휘하 무리로 이루어진 RO 조직을 향해 빼든 범죄 혐의는 30여 년만에 처음으로 적용한 '내란음모'였다.

국정원은 어김없이 총기 탈취와 유류시설 및 철도 등 국가 주요시설 타격 등의 살벌한 범죄 '사실'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이석기 의원의 신발장에서 발견되었다는 돈뭉치 1억 원은 중부지역당 사건 당시 주범 중 하나였던 김낙중의 집 마당 장독대 아래서 발견된 100만 달러와 권총, 독총 등의 공작 장비를 떠올리게 했다. 참으로 구태의연하지만, 여전히 어지럽고 혼란스러우면서 무서운 기시감이다.

중정과 안기부, 국정원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의 힘은 막강하다. 오죽하면 남자와 여자를 서로 맞바꾸는 것 빼고는 무슨 일이라도 다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왔을까. 버버리 코트에 선글라스를 낀 '기관원', 혹은 '정보원'의 이미지 표상은 여전히 많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한다. 그런 위축은 심리적일 뿐더러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하는 물리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무심한 시선 하나와 말 한 마디가 그대로 권력으로 작동한다고 믿는다.

지금 국정원은 남재준 국정원장이 이끌고 있다. 그는 휘하 조직이 RO 조직 사건을 터뜨린 이후 단 한 마디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는 압수수색 '거사일'이었던 8월 30일까지 '국정원 셀프 개혁'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 '국정원 셀프 개혁'이라는 3어절의 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지난달 30일까지 그 7음절의 말 때문에 뒤숭숭했을 그의 꿈자리는, 이제 '굿 잠'으로 장식된 평안한 자리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의 그런 '굿 잠'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이석기 의원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이루어지는 5일 오전 10시 30분의 수원지법 법정이 그 첫 시험대가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국정원, #남재준 원장, #아르오 조직 사건, #태산명동서일필,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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