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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2일 여의도 KBS 본관 로비에서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이 '<추적60분> 국정원 방송 불방관련 공정방송 탄압 저지 집회'에서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이 피켓을 들고 있다.
▲ "공정방송 외면하고 국정원만 챙기느냐!" 지난 2일 여의도 KBS 본관 로비에서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이 '<추적60분> 국정원 방송 불방관련 공정방송 탄압 저지 집회'에서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이 피켓을 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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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 없는 방송의 날,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

3일, 제50회 방송의 날을 맞아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내놓은 성명의 제목이 왠지 슬퍼 보인다. 성명은 축하와 위로, 격려 대신 우울한 문구들로 가득 차 있다. 온통 암울한 회색빛으로 가득 찬 성명 내용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웅변해 주는 듯하다. 

1947년 우리나라 방송이 국제무선통신회의에서 일본 호출부호 대신 독자적인 호출부호를 배당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방송의 날, 우리 방송이 독립국가로서 전파 주권을 회복한 것을 기리는 이날, 왜 언론노조는 "우리 방송의 시계는 70년대 유신 시대 혹은 80년대 신군부 시대로 되돌아가고 말았다"고 비통함을 쏟아 냈을까?

<추적 60분> 불방... KBS가 국정원 산하기관인가

무엇보다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에서는 군부 독재에서나 있을 법한 보도 통제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내용이 가슴에 박힌다.  최근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다룬 MBC <시사매거진 2580> 아이템이 방송되지 않은 데 이어, KBS의 <추적 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판결의 전말'이 잇따라 불방(방송보류) 된 데 대한 분통함과 자괴감이 성명에 가득 배어 있다.

특히 KBS<추적60분>의 불방은 방송의 날 50주년을 맞은 현재 공영방송 수준이 어느 정도 인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KBS는 지난 8월 31일 <추적 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판결의 전말' 편을 방송할 예정이었으나 방송 하루 전 사전심의 내용을 근거로 불방시켰다. 방송 내용보다 '방송 시기의 부적절성'을 들어 방송 자체를 불방시킨 것은 매우 이례적이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방송사 노조에 이어 제작진까지 "보도 가치가 충분할 뿐 아니라 시청자의 알 권리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방송"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사측은 막무가내다. 마치 'KBS가 국정원의 산하기관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노조와 제작진은 "단지 취재 대상이 국정원이라는 이유로, KBS 사장 이하 간부들의 과도한 정치적 판단 하에 해당 방송이 편성표에서 삭제됐다"면서 "'통합진보당 사태'가 뜨거운데 '국정원의 신뢰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방송'은 할 수 없다는 게 불방의 이유였다"고 밝혀 1년 전 긴 파업의 악몽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이에 대해 KBS 사측의 대응논리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 사측은 "현재 이 사건이 1심 판결만 있었고 최종판결이 나지 않은, 재판계류 중인 상황에서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방송 보류는 관련 법규와 KBS의 정당한 내부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국정원의 통합진보당 압수수색 보도 태도와는 전혀 딴판이다.

지난달 28일 국정원이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실 등을 압수수색했을 때 KBS는 어떤 보도행태를 보여줬던가. 관련 소식을 <뉴스9> 헤드라인으로 다루면서 관련 리포트도 4개나 보도했다. 모처럼 매우 민첩성 있는 보도였다.

거의 외면하다시피 해온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청문회와 국정원 규탄 시국선언, 시민들의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를 다룬 모습과는 전혀 다른 보도였다. 이번 <추적 60분> 불방이 외부는 물론 내부의 거센 저항을 사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3년 전부터 내사를 진행한 국정원이 불법 대선개입으로 개혁을 요구하는 규탄의 목소리가 비등한 시점에서 내란음모 사건을 터뜨렸다. 언론이라면 왜 지금 시점에서 이 사건을 터뜨렸는지 당연히 문제를 제기할 만하다. 그러나 KBS는 <뉴스9>에서 국정원 관계자의 말을 빌려 "3년간 내사해온 것", "결정적인 증거가 잡혔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그런가 하면 국정원의 일방적 주장으로 채워진 리포트를 계속 비중 있게 다뤘다. 

"기소단계에서 선거법 적용 여부를 놓고 검찰 내부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던 만큼 댓글의 성격과 법적인 의미에 대해선 추후 법원의 재판결과를 지켜봐야 된다"며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서 소극적이고 미온적 태도로 보도해오던 태도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1년 전 '최장 파업', 벌써 잊었나

이런 상황에서 KBS가 <추적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편을 불방시킨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국정원 정치공작에 누가 될까봐 방송을 불방시켰다"는 따가운 비판과 함께 "KBS사장이 오로지 정권에 잘 보여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려는 것"이란 질타가 쏟아질 만하다. 내부에서조차 "정권의 낙하산 체제였던 이병순-김인규 전 사장 시절보다 더 엉망으로 KBS 뉴스와 프로그램이 나가고 있다"는 자괴 섞인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추적 60분>은 우리나라 최초의 탐사 프로그램으로 올해로 방영 30주년을 맞는다.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출항한 이 프로그램이 그동안 '사회의 그늘 들추기'로 찬사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청률과 영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에 이어 최근까지 불방이 잦아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추적 60분>은 이명박 정권시절인 2010년, 의혹과 부실투성이로 전락한 4대강 사업과 관련한 보도가 두 차례 불방된 사례가 있다. 불방과 관련 청와대 외압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불방사례는 KBS뿐만 아니라 MBC에서도 되풀이 됐다.

"2010년 8월에는 MBC PD수첩 4대강편이 김재철 사장의 지시로 결방되는 일도 있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KBS 추적60분 4대강편이 역시 상부의 지시로 결방됐다. 청와대 외압설도 나왔다."

감사원이 4대강 사업이 총체적 부실에 처해있다는 2차 감사 결과를 내놓은 지난 1월 23일 한국기자협회가 <기자협회보>에 실은 ''부실 4대강' 부끄러운 언론'이란 입장의 글에는 당시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기자협회보>는 "지난 5년 동안 언론들에게 4대강은 '금기어'였다"는 기사에서 "4대강 공사 현장에서 오염사고가 나도, 멸종위기종의 서식지가 유린돼도, 천주교 주교가 4대강 반대 미사를 벌이고 신부들이 릴레이 단식을 해도 기사를 쓰는 언론은 몇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11년 말 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조, 한국PD연합회가 선정한 '언론에서 무시당한 뉴스 10'에서 4대강 부실공사는 'MB 측근 비리'에 이어 2위로 뽑혔다. 검증은 둘째 치고 4대강 홍보에 나선 언론들도 적지 않았는데 당시 KBS는 4대강 통수식을 생중계하고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4대강 해부 프로그램 불방을 항의하는 제작진을 징계한 것은 물론이다.

MBC 보도에는 금칙어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제50회 방송의 날 축하연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제50회 방송의 날 축하연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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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는 최근 공개한 '민실위 보고서'에서 이러한 안타까운 현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누구를 위한 뉴스, 누구를 위한 방송인가?'에서 노조는 '금칙어'가 뉴스에서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고 밝혀 충격을 던져 주었다. 

불통과 오기로 가득한 박근혜 대통령의 '나홀로 인사'와 국정원 개혁 요구 목소리 등 현 정부에 불리한 키워드를 제목과 내용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박 대통령은 방송의 날을 맞아 "방송 산업을 창조경제의 핵심 산업으로 육성할 것"이라며 "방송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말해, 방송을 '돈벌이 수단'으로 치부하는 저급한 인식을 보여줬다.

무너진 방송의 공공성,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공정보도를 요구하다 거리로 내몰린 17명의 해직 언론인이 아직도 일터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도 모른 척 하고 있다.

방송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며 최장기한 파업을 벌인지가 1년도 채 안 된다. 그런데 공영방송사들의 '눈치 보기', '코드 맞추기'는 더해만 가고 있으니 "'언론 자유' 없는 방송의 날,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는 말이 괜한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태그:#방송의 날, #불방 , #국정원, #금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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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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