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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장 풍경. 야채를 들고 나온 할머니가 연신 부채질을 하며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보성장 풍경. 야채를 들고 나온 할머니가 연신 부채질을 하며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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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무슨 놈의 날이 이 모양이다냐!"

장꾼들 목소리에 짜증이 잔뜩 섞여 있다. 가을에 접어든다는 입추가 지난 지 한참이건만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 탓이다. 한 무리의 할머니들이 더위를 피해 그늘진 처마에 진을 쳤다. 장사는 뒷전이다. 장사 얘기며 자식 자랑, 바깥양반 뒷담까지 이어진다. 귀동냥으로 듣는 할머니들의 수다가 정겹다.

길게 늘어진 좌판에서 나물을 다듬는 할머니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목청껏 소리를 내지르는 장꾼의 호객 행위도 들려온다. 농익은 땀 냄새, 손수레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가락도 여느 시골장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지난 22일 전남 보성장 풍경이다. 매 2일과 7일에 열리는 보성장은 요즘 보성녹차골향토시장으로 불린다. 지난 7월부턴 매주 토요일에도 선다. 시외버스터미널과 보성역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보성장의 채소전 풍경. 한 할머니가 장꾼들과 흥정을 하고 있다.
 보성장의 채소전 풍경. 한 할머니가 장꾼들과 흥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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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장 풍경. 할아버지들이 잡화상에 모여 물건을 고르고 있다.
 보성장 풍경. 할아버지들이 잡화상에 모여 물건을 고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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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에 들어서기도 전에 장독이 길손을 맞는다. 자연의 생명력을 담은 보성의 특산품 '미력옹기'다. 그 옆으로 야외공연장과 보성 특산물을 파는 명품관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통로를 따라 먹거리촌과 어물전, 채소전, 잡화·의류전, 곡물전이 정갈하게 서 있다. 업종별로 상권을 묶어 장을 편하게 보도록 돼 있다.

잡화전 한쪽이 떠들썩하다. 만물상이다. 이곳의 인기 품목은 음악 플레이어. 생김새가 1990년대 미니카세트와 흡사하다. 4만~5만 원대의 만만치 않는 가격임에도 인기가 높다. 할아버지에서부터 젊은 아낙네들까지 합세해 왁시글덕시글하다.

"이놈만 있으믄 들에 나가 농사일 할 때 심심하지 않아. 이것(칩)만 끼우믄 듣고 싶은 노래를 다 들어. 아 이 쪼그만 것(칩)에 노래가 1000곡이 넘게 들었다니깐."

잡화전을 뒤로 하고 채소전에 들어서자 색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보통 난장은 할머니들이 펼치기 일쑤다. 헌데 한 할아버지가 쑥스러운 듯이 난장을 지키고 앉아 있다. 미력면에서 온 박해종(73) 할아버지다. 앞에는 감자, 마늘이 가지런히 놓였다.

그 모습이 오지다. 장에 나오는 할머니를 위해 기꺼이 짐꾼이자 운전기사가 됐단다. 장터 오는 길이 즐겁고 행복했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뿌듯해진다. 조금 떨어진 곳에선 한 할아버지가 붕어빵을 굽고 있다. 할머니는 옆에서 호떡을 굽고 있다. 보성장에서 만나는 또 다른 정겨움이다.

박해종 할아버지. 할머니가 시장 가는 길에 운전기사를 자청해 동행해 왔다.
 박해종 할아버지. 할머니가 시장 가는 길에 운전기사를 자청해 동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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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장 어물전 풍경. 업종에 따라 권역이 구분돼 있는 게 보성장의 특징이다.
 보성장 어물전 풍경. 업종에 따라 권역이 구분돼 있는 게 보성장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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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릿한 뻘 냄새가 코끝에 와 닿는다. 갯내음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중앙통로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어물전이 위치하고 있다. 곰장어와 광어, 숭어, 농어, 소라, 낙지, 게, 양태가 줄지어 있다. 득량만의 차진 갯밭에서 나온 것들이다. 짱뚱어도 한 몸매 뽐내고 있다. 철 지난 보성꼬막도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이놈의 새끼야! 여그서 도망가다 밟히면 뼈도 못 추려."

할머니의 불호령에 깜짝 놀라 쳐다보니 칠게 몇 마리가 자신들을 가두고 있는 함지박에서 탈출을 감행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벌써 탈출에 성공한 꽃게가 장터를 갈고 다닌다. 그 소리에 놀란 바지락이 연신 물총을 쏘아댄다. 그 모습이 재밌다.

어물전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채소전 난장을 펼쳤던 할머니들이 주섬주섬 보자기를 챙기고 있다. 이내 하나둘씩 장을 빠져나가 버스에 몸을 싣는다.

보성장 채소전 풍경. 보성장은 여느 시골 장터보다 깔끔히 단장돼 있다.
 보성장 채소전 풍경. 보성장은 여느 시골 장터보다 깔끔히 단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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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장에 나온 조개류. 청정 득량만에서 갓 잡아 온 것으로 싱싱하다.
 보성장에 나온 조개류. 청정 득량만에서 갓 잡아 온 것으로 싱싱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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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장의 역사는 깊다. 조선 말엽에 섰던 우시장이 그 시초다. 1950년대에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후 지난 4월 새롭게 단장했다.

"10여 년 전만해도 전국에서 제일 큰 삼베시장이 섰제. 하룻장에 삼베 2000필이 넘게 거래되고 삼만 해도 수천 근이 거래됐제. 멀리 남원이나 진주에서까정 사람이 몰려 들었응께. 그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거만."

보성 토박이 정보현 상인회장의 말이다. 보성장이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해 또 한 번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에도 문을 여는 것이다. 전통시장에 신나는 문화공연과 체험을 접목시켰다. 장을 보면서 노래도 부르고 옹기와 장구도 만든다. 천연염색도 할 수 있다.

"엄청난 돈을 투자해서 이렇게 멋드러지게 지었는데, 오일장으로만 활용하기엔 너무 아깝지 않겄소? 상설시장으로 가야제."

보성녹차골향토시장 상인회가 토요시장을 열고, 문화공연에 체험까지 곁들인 이유다.

보성장 풍경. 녹차골 전남 보성에서 매 2일과 7일, 그리고 토요일에 서는 장이다.
 보성장 풍경. 녹차골 전남 보성에서 매 2일과 7일, 그리고 토요일에 서는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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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보성향토시장, #보성장, #재래시장, #전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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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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