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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 김용판 첫 공판 출석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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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한마디로 말하면, 인터넷을 찾아서 불법 게시글과 댓글 활동을 하였는지 규명해달라는 고소사건에 대해 국정원이 제출한 노트북 하드디스크만 보고 대선 관련 글을 게시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발표함으로써 유권자를 속였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달라는데 노트북 하드디스크만 본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인터넷 검색까지 다 해놓고 이를 은폐하였다는 것이 더욱더 놀랍다." (검찰)

"과연 검찰이 유죄의 증거로 제시한 증거물에 대해서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느냐. 검찰에서 우리에게 준 기록을 분석해보니 피고인이 허위의 수사결과 발표, 또는 수사방해와 관련해서 직접 지시를 한다든가, 또는 피고인이 그러한 지시를 하는 것을 목격했다든가 하는 직접적인 증거물은 전혀 없다." (변호인)

23일 오후 서울지방법원 서관 502호 법정. 검찰측과 변호인측은 서로 '님'자 호칭을 붙이며 최대한 예의를 차리는 모양새였지만, 약 4시간 동안 진행된 재판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직권남용과 선거법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한 첫 공판에서 검찰측과 피고인측은 프레젠테이션(PT)을 통한 모두진술 대결을 펼쳤다. 검찰에서는 특별수사팀장을 맡은 윤석열 여수지청장을 비롯해 박형철 공공형사부장, 김성훈 검사 등 5명이 참석했고, PT는 박 부장이 맡았다. 피고인측에서는 김 전 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법무법인 화우에서 4명의 변호사가 함께 했는데, PT는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도 동석했던 유승남 변호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검찰] 한시간 걸쳐 예 들어가며 복잡한 상황 단순화

검찰은 PT 준비에 많은 공을 들인 기색이 역력했다. 약 한시간에 걸쳐 슬라이드 페이지만 60여 페이지에 달했으며, 각종 사진과 효과까지 사용해 복잡한 사안 전체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며 논리를 전개했다.

특히 검찰은 아래와 같이 일반 살인사건의 예를 들며 김 전 청장이 주도했다는 중간수사결과 발표의 허구성을 주장했다.

"예를 들어보겠다. 한강에 칼에 찔린 아내의 시체가 인양된 사건이 있었다. 남편이 결백을 밝혀달라고 하면서 경찰에게 집에 들어가 안방만 범행에 사용된 칼이 있는지 한정해서 수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안방에는 결정적 증거인 칼은 없었더라도(실제 칼은 욕실에 있었음) 아내의 혈흔이 다수 발견되었고, 탐문 결과 이웃도 사망추정시간에 부부끼리 큰 소리로 다퉜다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범행에 사용된 칼을 찾기 위해 수사를 계속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수사는 하지 않고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주거지 확인 결과 안방에서 남편이 부인을 칼로 찌른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남편은 안방에 한정하여 칼이 있는지만 수색에 동의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감식범위 제한이 있어서... 안방에는 칼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결론을 내렸다' 이러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검찰은 경찰이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임의 제출한 노트북과 데스크탑 하드디스크를 분석·발표하면서, 김씨가 제시한 제안(2012년 10월 이후 3개월 동안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판·지지글)을 받아들여 분석범위를 한정한 논리의 정당성을 깨뜨리는데 주력했다.

검찰은 "제출자(김하영)가 부가한 조건에 따라 분석범위를 제한하는 것이 법률과 판례에 부합하는 정당한 행위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디지털 분석 결과보고서에서 인용되어 있는 형사소송법 제106조3항은 원칙적으로 범죄혐의에 관련성이 있는 디지털 증거만을 압수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이는 수색이 아닌 압수와 관련된 조항이다, 또한 인용되어 있는 대법원 결정 취지도 디지털 증거의 압수는 혐의사실과 관련된 부분으로 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내세운 분석범위 제한 논리는 결국 은폐 조작 범행의 수단"이라며 "디지털 증거분석을 통하여 국정원 여론 조작의 실체가 드러났음에도 이를 은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선거에 있어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국민주권 헌법 가치를 부정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피고인의 범행과 같은 행위가 다음 선거에서 다시 반복되어도 되는지 피고인과 국민들에게 묻고 싶다"는 말로 긴 PT를 마무리했다.

[변호인] 짧지만 물러서지 않고 조목조목 반박

변호인의 PT는 검찰측의 절반 가량인 30여분이었지만, 내용적으로는 조금도 물러섬이 없었다. 변호인측은 "초기에는 아무래도 증거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검찰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모두진술을 길게 하지는 않겠다"면서 "다만 종결단계에서 피고인 신문 전에 좀 긴 시간을 할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변호인은 우선 두가지를 지적하며 검찰측과 신경전을 벌였다. 공소장에 '수기보고서' 또는 '분석범위 제한' 등 은연중에 범행을 암시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면서 재판부와 언론에서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직전 이루어진 검찰의 PT에 피고인의 안좋은 인상의 사진이 여러장 등장한다며 "공식적인 자리에서 초상권 동의도 안받고 사진을 보여주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사태다,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본격 발표에 들어가서 변호인은 이번 사건의 키워드를 정리하면서 검찰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과연 경찰의 부정한 행위가 있었는가? 그 다음 피고인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는가? 애초 분석, 발표, 반환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모든 수사과정이 적법했고, 수사 결과는 객관적 사실 그대로 발표됐다. 이것은 지금 단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보여줄 수는 없고, 나중에 증인신문이나 여러 가지 절차를 통해서 보여주겠다. 과연 부당한 지시가 있는가? 백번 양보해서 수사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가정 하더라도, 피고인이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피고인의 허위의 수사결과 발표 및 수사방해를 지시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변호인 역시 "검사 PT에도 나왔지만 임의제출 시에 과연 확인 조건이 있었느냐가 가장 큰 쟁점"이라며 ▲김하영의 임의제출서에 분명히 있었고 ▲분석관들의 자유로운 토론으로 분석의 범위를 2012년 10월 이후 3개월동안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판·지지글에 대해서 확인하기로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김 전 청장이 개별 수사 상황까지 보고받은 적이 전혀 없고 "실체적 진실은 분석범위와 관련된 글은 찾을 수 없었기에 분석팀장, 수사과장, 수사부장을 거치는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어떤 정도로 보고됐냐면, 국정원의 고유업무, 즉 대북심리전과 관련된 글을 일부 발견했다는 정도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또한 관할서인 수서경찰서에 분석결과물 반환을 지연시킨 혐의에 대해서도 "반환 업무는 지극히 실무적인 문제로 피고인에게 보고조차 되지 않았다, 당시 피고인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특히 변호인은 "무엇보다 피고인에게는 이 사건을 범할 동기가 전혀 없다"면서 "일부 언론에서 본청장 되는 거 아니냐는 보도가 있었는데 박근혜 후보는 당시 김기용 본청장의 임기 보장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래서 박 후보의 당선은 오히려 피고인 개인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127시간 CCTV 놓고 신경전

검찰과 변호인은 경찰 분석관들의 분석 상황을 녹화한 127시간짜리 CCTV 화면을 놓고 서로 신경전을 벌였다.

유 변호사는 "그 녹화영상 원본 전부를 검찰에서 가지고 있다면 제출해주고 녹취록도 제출해달라, 객관적으로 각각 문제되는 부분을 검증하면 될 것"이라며 "객관적으로 보면 게임 끝"이라고 말했다. 이에 윤 지청장은 "전체를 다 틀어보면 게임 끝난다고 했는데, 우리는 정 반대(우리쪽이 게임 끝이라고)로 생각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국정조사 때 검찰이 조작했느니 이런 말이 나왔는데, 그 주장 자체가 심히 왜곡"이라면서 "우리는 사본을 압수해왔는데, (누군가 경찰에 남아있는) 원자료에 손을 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강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유 변호사가 "이 사건 증인으로 나올 많은 경찰 분석관들이 이 사건 피고발인이다, 아직 검찰 수사가 안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혹시 그중 한명이라도 (검찰이) 약점을 잡아서 '사실 이거 아니지 않느냐, 그러니까 지시가 있었다고 이야기해라' 그 한마디면 우리는 끝난다"라고 말했다.

윤 지청장은 "그들에 대해 사법처리를 하지 말아달라는 취지로 해석되지만 그것은 증언을 다 들어봐야 한다"면서 "절대 보복성이나 이런 것을 기피하고 합당한 선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태그:#김용판, #공판,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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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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