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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영화 <잡스> 시사회가 열린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점에 붙은 대형 홍보 전광판.
 21일 영화 <잡스> 시사회가 열린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점에 붙은 대형 홍보 전광판.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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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영화라기보다 다큐멘터리 같아, 누군가 따라다니며 정성껏 찍은..."

21일 밤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영화 <잡스> 시사회에 참석한 한 20대 남녀의 소감 한토막이다. 젊은 시절 스티브 잡스를 빼닮아 화제를 모은 애시튼 커처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가 빛을 발하기도 했지만 할리우드 영화답지 않게 극적 요소를 절제한 탓도 있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대부분을 잡스가 작은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한 뒤 개인용 컴퓨터(PC) '애플2'와 '매킨토시'를 만들던 70~80년대에 주로 할애했다. 90년대 말 애플에 복귀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잇따라 성공시킨 잡스의 전성기(?)를 기대했던 젊은 관객들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또 시대적 배경이 비슷한 영화 <실리콘밸리의 해적들>(1999)에서 초점을 맞춘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경쟁 관계도 이 영화에선 '전화 한 통화'가 고작이다.

영화 <잡스> 주인공 애시튼 커처는 젊은 시절 스티브 잡스 외모를 빼닮아 관심을 모았다.(영화 공식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영화 <잡스> 주인공 애시튼 커처는 젊은 시절 스티브 잡스 외모를 빼닮아 관심을 모았다.(영화 공식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누리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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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컴퓨터 창업 직후인 70년대 개인용 컴퓨터 '애플2'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은 영화 <잡스> 한 장면.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컴퓨터 창업 직후인 70년대 개인용 컴퓨터 '애플2'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은 영화 <잡스>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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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영화 <잡스>는 '인간' 잡스에 주목한다. 오늘날 애플을 만든 '잡스 정신'의 뿌리이기도 한 잡스의 '현실 왜곡장'과 그로 인한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 인간적 고뇌를 생생하게 그린다. 혼전에 낳은 딸 리사를 외면하는 비정한 아빠, 창업 동료들에게 주식 한 푼 남기지 않고 회사 비전을 따르지 않는다며 직원을 가차 없이 자르는 몰인정한 기업인 모습이 그것이다. 이 영화가 '아무도 몰랐던 그의 숨겨진 진짜 이야기'라고 내세운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박웅현 "잡스 창의력 원천은 집요함"

오는 29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열린 이날 시사회에 앞서 광고계 스타인 박웅현 TBWA코리아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같은 유명 광고 문구와 <책은 도끼다>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로 잘 알려진 박웅현 역시 스티브 잡스 창의성의 뿌리를 '현실왜곡장(자기왜곡장)'과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집요함에서 찾았다.

"현실이 자기 의지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 수년 전 딸 리사, 수년 후 암 진단에서 그랬듯 현실을 왜곡해 버린다."

광고업계 스타인 박웅현 TBWA코리아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21일 오후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영화 <잡스> 시사회에서 앞서 강연을 하고 있다.
 광고업계 스타인 박웅현 TBWA코리아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21일 오후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영화 <잡스> 시사회에서 앞서 강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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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현이 이른바 '성경'으로 불리는 전기 <스티브 잡스>(월터 아이작슨 지음)를 읽으면서 쓴 메모 한 토막이었다. 박웅현은 "창의력의 핵심은 집요함인데 잡스는 자기 생각에 대해 확신을 갖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게 나올 수 있었다"면서 "부정적인 요소를 객관적으로 보면 일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현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영화 속에서도 이런 잡스의 '현실 왜곡장'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때 자기가 걷어찼던 '매킨토시' 아이디어를 다시 받아 성공시킨 이야기랄지, 딸 리사를 자기 딸로 인정하지 않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주식시장에 기업을 공개하면서 창업 동료들에게 주식 한 장 남기지 않은 것도 회사를 위해 공헌한 게 없고 앞으로도 기대할 게 없다는 '자기 합리화'였다.

하지만 이런 '현실 왜곡장'은 결국 첫 그래픽 기반 사용자 환경(UI)인 매킨토시를 비롯해 픽사 애니메이션, 아이맥, 아이팟과 아이튠즈, 아이폰와 앱스토어, 아이패드 등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로 이어졌다.

"창의력은 우리 각자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무엇인가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왜 IBM을, 마이크로소프트를 따라가야 해,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뽑아내려는 고집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게 잡스다."


박웅현은 잡스가 생전에 월터 아이작슨을 통해 자신의 전기를 직접 남긴 점에도 주목했다. 박웅현은 "내가 죽고 나면 온갖 시정잡배들이 내 책을 쓸 텐데 제대로 된 책이 나올 리 없어,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아이작슨을 불러 책을 쓰게 한 것"이라면서 "잡스는 완결형 인생을 산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잡스 사후 애플의 변화에 대한 한 관객 질문에도 박웅현은 "예측을 할 수 없지만 과연 잡스 DNA를 애플에 얼마나 심었나 하는 시험이 될 것"이라면서 "잡스가 진짜 선수라면 자기가 빠져도 (애플에) DNA를 남겨야 한다, 팀 쿡도 사실 스티브 잡스(의 DNA다)"라고 답했다.

90년대 후반 애플 임시 CEO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가 애플 디자인 담당 조너선 아이브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은 영화 <잡스> 한 장면.
 90년대 후반 애플 임시 CEO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가 애플 디자인 담당 조너선 아이브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은 영화 <잡스>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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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에는 잡스 사후를 암시하는 듯한 의미심장한 장면이 등장한다.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난 지 12년 만에 애플 '임시 CEO'(iCEO)로 복귀한 잡스는 후일 아이팟과 아이폰을 디자인한 조너선 아이브(현 애플 수석부사장)에게 자신이 없는 애플에 왜 계속 남았느냐고 묻는다. 이에 아이브는 잡스는 없어도 보통 사람들이 쓰기 편한 제품을 만든다는 그의 정신은 애플에 계속 남아 있었고 언젠가 되살아날 걸 믿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2011년 10월 5일 잡스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돼 가지만 추모 열기는 전기로, 영화로 이어지고 있다. 애플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이번 영화가 실제와 다르다고 혹평한 만큼 소니픽처스에서 공식 전기를 바탕으로 만들게 될 새 잡스 영화도 관심을 모은다. 그렇다고 '온갖 시정잡배들'이 만드는 영화를 무시할 순 없다. 잡스 인생에서 제작자들이 주목하고 싶은 내용은 제각각이고, 영화만큼 '현실 왜곡장'이 크게 작용하는 분야도 없기 때문이다.


태그:#잡스, #스티브 잡스, #애플, #박웅현, #아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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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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