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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현대자동차 공장 정문 인근의 모습. 이날 정규직 노조는 2013년 임단협 과정에서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지난 20일 현대자동차 공장 정문 인근의 모습. 이날 정규직 노조는 2013년 임단협 과정에서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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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장 광장에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꽂혔다. 대구를 능가하는 울산의 더위가 연일 방송을 탔고 그 위력은 여전했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 위에는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임금단체협상 교섭을 놓고 부분파업을 벌이고 조합원 결의대회를 진행하기 위한 무대가 설치돼 있다. 무대에는 '4만5천의 힘으로 13 투쟁 승리'라고 적힌 붉은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하지만 파업을 몇 시간 앞둔 공장 안은 의외로 조용했고,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아 적막함마저 느껴졌다.

20일 오전,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정문에서 20분가량을 기다렸다. 노동조합(이하 노조)에 방문 일정을 미리 이야기를 했고, 노조도 정문 안내실에 이를 알렸다고 했지만 직원들은 아무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이날 만나기로 한 박현제 비정규직지회장에게 연락하자 "애들 수법입니다, 골탕 먹인다고"라는 답장이 왔다. 결국 박 지회장이 다시 연락을 해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박 지회장은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사무실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난 7월 20일 철탑농성을 응원하기 위해 울산으로 향한 희망버스가 돌아간 후 5일 만이었다. 경찰은 당시 희망버스 참가자와 경찰의 충돌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사태를 이유로 박 지회장과 강성용 수석부지회장 등 지회 간부들을 수배했다. 그리고 체포된 강 부지회장은 구속됐다.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천의봉씨가 오랜 고공농성을 마치고 땅으로 내려오자, 이제 박 지회장이 갇힌 몸이 된 것이다.

사무실에는 침낭과 전기밥솥 같이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지난해 한 차례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는 박 지회장은 조합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도 어렵다. 당시 공장안에 잠복한 사복형사들에게 납치되듯 체포됐기 때문이다. 체포된 이후 구속심사에서 그는 석방됐고, 경찰의 무리한 체포가 도마에 올랐다. "이번에 체포되면 구속되겠다"는 말에 박 지회장은 "책임을 지는 거니까 괜찮다"며 웃었다.

"정규직 전환 기조 변함없지만 방법, 시기는 열려있다"

박현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장.
 박현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장.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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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비정규직투쟁본부 회의 조직화를 위해 계속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공장 안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수배자 신분이지만 그는 매우 바빴다. 그의 남은 임기는 오는 9월까지다. 선거를 치르고 다시 지회장이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 임기에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박 지회장은 9월에 추석이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 진행 중인 비정규직 관련 특별교섭의 유효기간을 이달 말까지로 보고 있었다.

노사 양측의 특별교섭은 오랫동안 갈등을 일으켜 온 불법파견 문제를 현재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여겨지며 주목받고 있다.

"집행부가 회사와 교섭을 할 수 있는 기간은 사실상 8월 말까지라고 생각한다. 현재 상황을 풀기 위해 어떻게든 교섭을 마무리짓고 싶은 마음이다. 비록 원칙에서 벗어나는 안이 나오더라도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안이 나온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만큼 여지를 열어놓고 교섭에 나서고 있다고 보면 된다."

박 지회장은 "원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범위를 묻는 질문에 "지금은 즉각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게 원칙이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전환의 시기나 방법을 조율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한다는 기본 기조는 변함이 없다"며 "내일(8월 21일) 실무교섭을 하기로 했고, 다음 주 초에 본 교섭을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회에서 어느 정도 열린 자세를 보인 것에 대한 회사 측의 답변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자동차 사측은 지난 2011년 대법원이 사내하청 비정규직노동자 최병승씨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고, 사회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들을 신규채용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하는 방안을 내놨다. 2014년까지 비정규직 3500명을 신규채용하겠다는 것. 이에 비정규직지회는 불법파견을 인정할 것과 비정규직 전원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여왔다. 이 사안은 국내 최대 제조업 공장인 현대자동차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산업 전반에 확산된 불법파견 문제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병승씨의 대법원 판결 이후지만, 비정규직지회는 지난 2003년 설립돼 이 문제를 놓고 10년째 투쟁해오고 있다. 최병승씨와 마찬가지로 박 지회장 역시 조합 설립 초기부터 노조운동에 나섰다. 그는 "30일까지는 교섭에 집중하겠지만 투쟁을 위한 준비도 계속할 것"이라며 "설령 이번 교섭에서 성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이 싸움은 계속 돼야 하고 우리는 그 사명을 저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철탑 위 두 사람 목숨을 담보로 싸우고 싶지 않았다"

가장 큰 현안인 특별교섭과 관련한 이야기를 마치자 박 지회장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는 모두가 철탑 위의 농성에 시선을 보내는 동안 땅 위에서 싸움을 계속해왔다. 296일이라는 오랜 농성이 계속 되는 동안 아래에서 벌어진 투쟁도 만만치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최병승 동지가 철탑을 오른 게, 회사가 신규채용 카드를 꺼내들었을 때다. 노조가 투쟁하는 동안 현대차 사측의 대응은 상당히 위력적이다. 신규채용 카드 역시 그랬다. 그에 대응하는 투쟁으로 철탑에 올랐다. 아래서도 해고자들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철탑 아래를 지키는 것과 동시에 양재동 본사 앞에서 투쟁도 많이 했다. 계속 파업을 하기도 했다. 라인을 끊고 파업을 했을 때 비정규직 30여 명이 사측에게 끌려가기도 했다."

박 지회장은 철탑 아래에서 벌어진 투쟁을 놓고 "두 사람이 빨리 내려와야 한다는 고민이 많았다, 두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며 "이 투쟁이 그 두 사람만의 투쟁이 아니었고, 그들의 고통을 헛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철탑에서 두 사람이 내려오고 이제 박 지회장이 수배생활을 하며 투쟁하게 된 사실을 이야기 하자, 그는 "이런 생활은 익숙해서 괜찮다"며 "조합원들을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지만, 최대한 제가 있는 곳으로 불러서라도 만나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이 가져올 것, 확실히 가져오겠다"

수배생활 한 달 동안 가족들도 그를 자주 볼 수 없었다. 박 지회장은 "결혼한 지 14년 만에 낳은 딸이 가장 보고 싶다, 지난 18일에 봤는데 그게 몇 달만이었다"며 "내 딸이 사회생활할 때는 비정규직 없는,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장 정도는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결국 또 다시 특별교섭을 강조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박 지회장은 "집중교섭을 하겠다는 게 성과를 내기 위해 교섭을 한다는 말이 아니"라며 "지금까지 10년의 투쟁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져올 것을 확실히 가져오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7~8년 동안 신규채용이 없다가 이번에 실시한 것은 그동안 비정규직지회가 회사를 상대로 투쟁해 온 결과"라며 "지회에 가입하지 않은 비조합원들도 이런 사실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비정규직 1000여 명이 신규채용으로 입사했다. 고맙다는 사람도 있고 미안하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투쟁의 성과라는 것을 알면서도 싸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중적인 태도다. 싸우는 사람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도 싸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태그:#현대자동차, #박현제, #최병승, #천의봉, #불법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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