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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날' 월요일(12일)이 지나가고 있다. 어둠 속에서도 무언가를 비춰주는 달의 역할을 생각하니 지난 10일 교육공동체를 탐방하러 갔던 곳, 동행들과 함께 틈을 내어 산책했던 곳, 술집이 가득했던 대전 대흥동 거리가 떠올랐다. 그 거리 곳곳에는 다소 인문학적인 문화요소가 들어간 공공미술이 설치돼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 빛나는 달의 모습과도 상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드넓고 근사하게 세팅된 화랑가 공간에 전시되는 미술품은 나름의 격조를 풍기지만 난 그것들에서 인간적인 친밀감을 느끼지 못했다. 현실에서 유리된 이상의 나라에서는 꿈을 꾸게 하고, 과거와 미래가 하나로 표현돼 시각은 더 없어 넓어지지만, 가슴 편히 숨 쉴 수 있는 호흡에 대한 동질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포근해지는 거리, 함께 가보시겠습니까

오래된 벽에 물고기와 새떼를 연상시키는 작품
▲ 대흥동 벽화 오래된 벽에 물고기와 새떼를 연상시키는 작품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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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대흥동 거리는 아직도 한 집 건너 술집과 고기집이 즐비하다. 그래도 1분 정도 걸을 때마다 전시장에 볼 수 있는 투명한 아크릴판이 오래된 담벼락에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 만난 전기콘센트집이나 두꺼비집은 웃음을 터지게 한다. 마치 동화 속 난장이집 같은 느낌을 준다. 뿐만 아니다. 걸음을 옮기다 보면 한 번쯤은 걸쳐보고 싶은 부드러운 면 질감의 티셔츠가 벽에 걸려 있다. 이것을 보면 이미 그 티셔츠를 입은 듯이 가슴이 포근해진다.

전기집이 아기자기한 동화의 나라집 같아 웃음이 나왔다
▲ 상생의 문화 전기집이 아기자기한 동화의 나라집 같아 웃음이 나왔다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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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돈은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문화의 풍경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난하고, 힘 없고, 별볼 일 없는 사람에게는 친절하지 않은 풍경, 그러나 인문학적 미술은 이 거리에서 가난하고, 힘 없고, 별볼 일 없는 건물과 담벼락과 전신주에 생동감 넘치는 색감을 심어 찬란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새떼의 하나가 되고, 물고기가 되는 듯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상생의 문화. 그것이 바로 예술이 가진 향기고 힘 아닐까.

남루하지만 참 부드럽고 따스해 보인다
▲ 대흥동 티셔츠 남루하지만 참 부드럽고 따스해 보인다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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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토마토>가 발행되는 카페에서는 발행 3주년을 기념해 이곳을 찾는 남녀노소의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새로운 벽화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중년의 여인은 혼자서도 평화롭게 꿈길을 오가는 메모를 하다가 살짝 잠이 들었다. 옥상에는 아무도 없지만 모든 사람들이 눈으로 이야기 하는 것 같은 얼굴들이 있었는데, "친구야! 반갑다!"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이 카페에서 내가 느낀 것은 '더불어 함께'와 '느린 평화로움'이었다.

네가 주인이니? 내가 주인이지? 아냐 주인은 없어 그냥 우린 모두 하나야 라고 말하는 듯한 아기자기 한 벽화
▲ 토마토의 벽화 네가 주인이니? 내가 주인이지? 아냐 주인은 없어 그냥 우린 모두 하나야 라고 말하는 듯한 아기자기 한 벽화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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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카페의 벽화에는 주인이 누구고, 손님이 누구라는 개념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서로 다른 너와 내가 사이좋은 우리로 묶이는 것이다. 나는 이런 걸 참 좋아한다. 내가 조직문화에서 쉽게 피곤해지는 이유는 서열이 분명한 조직 속에서 네가 할 일과 내가 할 일이 구분되는 것과 논리 정연함 속에서 자칫 상실되기 쉬운 인간미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때로 두서 없음을 무척 즐기며 철이 들지 않는 푼수처럼 행동하는 게 평안하다.

공공미술이 널리 퍼진다면...

혼자 옥상에 있어도 모두와 함께 있는 것 같은... '친구야 잘 있었니?'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다.
▲ 토마토 옥상 혼자 옥상에 있어도 모두와 함께 있는 것 같은... '친구야 잘 있었니?'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다.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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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으로 나는 기관지가 튼튼하지 못해 조금만 걸어도 다른 사람과 속도를 맞추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더불어 함께 어디론가 탐방을 자주 가지 않는다. 그러나 문화와 관련된 탐방은 때때로 멈추면서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 땅을 밟는 느낌이 아닌 구름길을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구름길을 가는 듯한 이 느낌들을 나는 무척 좋아해서 혼자서도 곧잘 이런 상생의 기운이 감도는 곳들을 산책한다. 혼자라서 느끼는 외로움은 때로 더 깊은 미학적인 행복감에 빠지게 하고, 붓길에 집중할 수 있는 감성의 샘물을 깊게 해준다.

그늘진 곳과 나보다 부족한 곳 그리고 아프고 어리석고 모자란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어두운 곳을 비춰주는 달빛 같은 공공미술품들을 술집이 가득한 대흥동에서 만나서 참 좋았다.몇 년 전의 대흥동에서 문화라면 내가 종종 들르던 화랑과 지필묵가게 그리고 전시장 몇 군데가 전부였다. 내가 사는 청주의 술집거리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도시 그리고 동네마다와 물질 문명이 번쩍거려서 서로의 눈빛이 잘 읽혀지지 않는 네온의 거리에도 이렇게 영혼의 색감이 묻어나는 상생의 예술이 많이 많이 꽃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차시비로 살인이 생기는 동네에서도 담벼락이 넉넉한 주차공간을, 그리고 그 위에서 크게 웃음 짓고 악수하는 사람들을 그리면 사람들은 싸우기도 전에 머쓱하며 큰소리를 낼 마음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예술의 힘은 그렇게 소리없이 사람의 영혼을 부드럽게 만드는 마법의 향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담백하나 재미있는 상생의 주제가 포인트로 있는 캘리그라피로 거리의 간판들이 순 우리말로 쓰여지고, 간판 이름과 연관된 시나 스토리텔링이 있는 그림들이 사람들을 맞이한다면 굳이 상생을 목소리 높여 외치지 않아도 상생이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우선 나부터 '어제보다 오늘을 더 착하게, 오늘보다 내일은 좀 더 느리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토마토 카페에 있는 얼굴들 중에서 나와 닮은 미소를 하나 찾아 마음 속으로 말한다.

"친구야!  천천히 호흡하면서 땅에 뿌리 깊에 내리고  하늘로 천천히 가자! 네가 먼저가고 내가 먼저가고 없이 그냥 이웃들의 손도 잡고 오래 오래 가자!" 


태그:#대흥동상생의 미술, #인문학적인 문화, #이영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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