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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어촌희망재단 홈페이지
 농어촌희망재단 홈페이지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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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닥치는 찜통 더위에 심신이 지쳐가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서울 성공회대학교에 다니는 큰딸로부터 전화를 받은 뒤 더 힘이 빠졌다.

"아빠, 나 농어촌희망재단에서 주는 농어촌자녀 장학금 이번엔 못 받아."
"왜? 성적이 안 되니?"
"그게 아니고, 우리 학교가 지원 대상에서 빠졌대."
"응? 학교가 빠지다니?"
"그렇게 됐대, 학교에서도 이해가 안 된다고…."
"이유가 뭔데?"
"자세한 건 모르는데, 학생 숫자가 적어서 그렇다고."
"참나… 그게 말이 되니? 학생 수가 적다고 지원 대상에서 뺀다는 게…."

전화를 끊고 곰곰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해 안 되는 일을 보는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구체적인 사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3년 전, 딸아이가 사립대로 진학했을 때 걱정을 많이 했다. 농부의 입장에서 사립대 등록금을 대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성적장학금에다 가난한 농부에게 지원해 주는 이런저런 장학금 덕에 큰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그 중 농어촌 희망재단에서 주는 학기당 150만 원의 장학금이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이번에 아예 지원 대상에서 배제됐다니….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혹시 정부에 찍혀서 그런 건 아닐까? 설마….'
'학생 숫자가 적다고 대학 자체를 빼면 그 학교 다니는 학생은 무슨 죄인가?'
'다른 이유가 있겠지, 생각 못한….'

학교 학생 수가 장학금 지급의 기준?

예단하지 말자고 생각을 정리한 후 아이가 다니는 학교로 전화를 걸어 담당자와 통화했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학교측에선 작년에 휴학생과 군 입대 등으로 학생 숫자가 몇 백 명 줄었는데 결국 인원이 적다는 이유로 빠지게 됐다고 했다. 이유가 타당하냐고 묻는 질문에 학교측은 "이해할 수 없다, 학생 숫자가 적다고 대상에서 빼버리면 학생들만 억울한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내용을 좀 더 알아보기 위해 먼저 농어촌희망재단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농어촌희망재단은 한국마사회 경마수익금을 주 재원으로 해 운영되는 비영리 공익법인이었다. 그 사업 중 하나가 농어촌자녀 장학금인데, 학기 당 약 1650명의 농어촌 자녀 대학생을 선발해 1인당 150만 원을 지급하고 있었다.

지원대상의 기준을 보면 우선이 대학교에 재학하는 농어업인의 자녀여야 한다. 또 지원 대학의 범위는 '원격대학 등 기타 법률이 정하고 있는 고등교육기관, 종교 등 특수 목적학과만 있는 대학은 제외 한다'고 되어 있다.

사실상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농어업인의 대학생 자녀들은 거의 해당되며, 큰 딸이 다니는 학교도 기준에 포함되는 대학이었다. 결국 대상 대학 가운데 학생 숫자로 다시 걸러냈다는 얘기였다. 도대체 누가 이런 생각을 하고 정책으로 실행했을까?

담당자와 통화를 시도했다. 농사를 짓고 있는 현직 농부이자 시민기자임을 밝히고 이번에 성공회대학교가 지원 대상에서 빠진 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다. 담당 직원 역시 "학생 숫자가 적어서 그렇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마사회로부터 후원을 받아 전국 340여 대학교 농어촌 자녀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는데, 매년 후원금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 학교당 4명 이상 받을 수 있는 대학으로 선을 그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100여 곳이 넘는 대학이 탈락했으니 숫자로 봐도 적지 않은 수의 대학이 아예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말이다. 그렇게 한 이유를 묻자 "학생 수가 많은 큰 대학을 지원했을 때의 홍보효과와 학생처로부터의 업무상 원활한 교류 등의 이유가 있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구체적인 설명을 추가로 들었을 뿐, 농어촌자녀 장학금을 주는 대상 대학의 기준을 학생 숫자로 정했다는 결론은 같았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차별이 현실화된 것이었다. 담당 실무자는 친절하게 경위와 배경을 설명해주었고 결과적으로 소수 대학이 배제되면서 피해를 보는 대학생이 있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차후라도 전향적인 방향으로 개선해 보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농어촌에 희망 대신 허탈한 '실망'만

큰딸은 상주로 귀농한 뒤 1년 동안 다닌 중학교를 졸업할 때 이미 장학금에 대한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갖게 됐다. 더러 장학금을 지급하는 공급자의 뜻을 지나치게 반영한 나머지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장학금은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그 자체로 교육적 기능을 수행하고, 그래야만 하는 게 상식이다. 마땅히 그 기준에 공정성과 객관성이 엄격히 적용돼야 하며 어떤 이유로도 차별을 받아선 안된다.

농어촌희망재단에서 적용한 기준은 대학은 물론이고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백번을 양보해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다니던 대학, 부모의 직업이 바뀐 것도 아니고, 학생 성적이나 조건에 변동이 생긴 것이 아님에도 단지 다니는 학교의 학생 숫자가 적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탈락됐다면, 어느 누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농어촌에 희망 대신 허탈한 '실망'만을 안겨준 것이 아닐까?

지금 이 시간에도 이 땅의 수많은 대학생과 부모들이 살인적인 등록금 때문에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다. 학비와 생활비에 한 푼이라도 보태려고 궂은 알바를 감당하고, 생명조차 위험한 작업장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꽃같은 나이에 세상을 뜨는 등 참담한 사고도 뉴스에서 종종 본다. 이런 현실에서 장학금은 학생들에게 한줄기 오아시스 같은 존재일 것이다.

농어촌희망재단은 이번에 시행한 장학금 기준에 대해 다시 한 번 사려 깊게 돌아보고 이름처럼 모든 이에게 골고루 희망을 주는 재단이 되기를 바란다.


#장학금#농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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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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