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끊어진 압록강 철교. 저멀리 신의주가 보인다
 끊어진 압록강 철교. 저멀리 신의주가 보인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백두산과 집안의 고구려유적을 보고 단동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국내성이 있는 '집안시'에서 점심을 먹고 깜깜해질 무렵에야 단동에 도착할 때까지 여러 번 압록강을 만났다. 강 너머는 북한 땅이다. 묘한 기분이 든다. 우리 땅을 보는데 이렇게 멀리 돌아와서 구경해야 하나? 아니 멀리서 바라만 보고 직접 만져볼 수 없단 말인가?

우리 일정은 단동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 날 한국으로 떠난다. 그런데 단동의 호텔숙박 풍습이 이해가 안 간다. 숙박하는 사람의 여권을 호텔프런트에 맡기라는 것이다. 많은 나라를 여행해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잠자는 사이에 정보를 빼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전쟁 당시 중공 인민군이 참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남겨놓은 압록강단교 모습. 왼쪽에는 새로 놓은 다리가 보인다. 이 길로 중국과 북한 간에 많은 화물이 오간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 인민군이 참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남겨놓은 압록강단교 모습. 왼쪽에는 새로 놓은 다리가 보인다. 이 길로 중국과 북한 간에 많은 화물이 오간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통관을 기다리는 북한행 화물들.
 통관을 기다리는 북한행 화물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고구려 성인데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며 최근 성벽을 복원한 '박작성'으로 가는 길이다. 압록강 건너편에 이성계가 회군했다는 위화도가 보인다. 지금은 북한 땅으로 북한군과 군인가족만 산다고 한다. 보이는 단칸집은 사람이 살지 않고 전시용으로만 지어 놓은 것 같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밤에는 달랑 전등 하나만 켜놨다가 일찍 소등한다는 것이 이유다.

중국 성이라는 박작성... 성에 반드시 있어야 할 치(雉)와 총안도 엉성해 

일행은 먼저 고구려 지방성의 하나로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박작성을 보기로 했다. 박작성 축조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3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압록강 하구에 위치해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길목을 통제하는 요새다.

성 안으로 일행을 안내하고 들어간 가이드는 철조망이 쳐져 있고 중국군이 지키는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십여 미터의 강물을 두고 철조망이 쳐진 반대쪽에는 압록강이 만든 커다란 삼각주가 있고 마을과 들판이 있다.

 한 발만 건너면 북한 땅이라는 의미의 '일보과' 비석. 건너편은 북한땅이다
 한 발만 건너면 북한 땅이라는 의미의 '일보과' 비석. 건너편은 북한땅이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공터에는 '지척(咫尺), 일보과(一步跨)'라는 비석이 서 있다. 지척이야 알지만 '일보과'가 무슨 뜻인 줄 몰라 가이드에게 묻자 '한 발만 내딛으면 북한 땅으로 갈 수 있다'는 의미란다.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압록강 지류인 이곳의 폭이 10m이지만 평소에는 1m밖에 안 된단다. 마음속에 또 다시 파동이 인다.

박작성은 '애하'와 압록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돌출된 독립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산을 '호산'이라고 해 호산산성이라고도 불린 박작성 안에는 둘레 4.4m의 우물이 남아 있고 20년 전까지도 주민이 살았다는 흔적이 있다. 만리장성이 이곳부터 시작한다며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성을 개조했기 때문이다.

개조 당시 고구려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중국 당국이 복원한 성을 돌아보면 엉성함이 눈에 띤다.

 중국이 만리장성의 동쪽끝이라고 하며 복원한 박작성. 그러나 고구려 성이다.
 중국이 만리장성의 동쪽끝이라고 하며 복원한 박작성. 그러나 고구려 성이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중국이 복원한 박작성의 총안. 고구려 성의 총안은 안쪽은 삼각형처럼 넓게 퍼져있고 바깥쪽은 삼각형의 꼭지점처럼 좁다. 방어를 용이하게 하기위한 지혜다.
 중국이 복원한 박작성의 총안. 고구려 성의 총안은 안쪽은 삼각형처럼 넓게 퍼져있고 바깥쪽은 삼각형의 꼭지점처럼 좁다. 방어를 용이하게 하기위한 지혜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고구려 성에는 치(雉)가 있고 성안에서 밖의 적군을 향해 활을 쏘기 위해 만든 총안이 있다. 총안은 성벽 위에 있는 군인이 밖에 있는 적군을 향해 활을 쏘기 쉽도록 하기 위해 성안 쪽은 삼각형의 넓은 변처럼 만들고 바깥쪽은 삼각형의 꼭지점처럼 좁다. 그런데 중국이 최근 쌓은 박작성의 총안은 안과 바깥쪽의 총안의 구멍크기가 똑같다.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중국이 대규모 장성을 복원한 것은 이민족인 청나라의 지배를 벗어나 오히려 그 땅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끊어진 압록강 철교와 북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분단의 아픔 느껴

압록강은 분단의 아픔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압록강 철교는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동을 잇는 다리이다. 압록강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다. 한국전쟁 때 끊어진 다리와 새로 가설된 다리다. 북한 쪽에서 1/3쯤 되는 부분에서 끊어진 다리에는 폭격으로 휘어진 철교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새로 가설된 다리에는 열차와 짐을 가득 실은 화물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압록강 철교는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중국의 단동시를 연결하는 총연장 944m의 철교로 압록강 하구에서 상류로 45㎞ 지점에 위치한다. 끊어진 다리인 '압록강단교' 앞에는 한국전쟁시 중공 인민군이 한국전에 개입한 것을 기념하는 조형물을 세워 놓았다.

 신의주쪽에서 바라본 단동시가지 모습. 북한인들이 휘황찬란한 단동의 야경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를 생각하며 가슴이 아팠다.
 신의주쪽에서 바라본 단동시가지 모습. 북한인들이 휘황찬란한 단동의 야경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를 생각하며 가슴이 아팠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북한 신의주 모습. 북한의 선전문구가 보인다.
 북한 신의주 모습. 북한의 선전문구가 보인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일행은 조그만 여객선을 타고 압록강 철교가 끊어진 부분까지 갔다가 북한 쪽 강변 가까이 다가가 신의주 풍경을 바라보다 돌아왔다. 강변에서 수영 연습하는 사람들이 보여 어린이들인 줄 알았는데 망원렌즈로 클로즈업해보니 성인여성들이었다. 마을에는 붉은 글씨로 "김정은~" 어쩌고저쩌고 하는 선전문구가 가는 곳마다 걸려 있다. 

신의주는 북한에서 두 번째로 잘사는 도시라고 한다. 우리 조그만 중소 도시의 항구 모습인 신의주를 보다 뒤를 돌아 단동을 보았다. 마천루처럼 높이 솟은 스카이라인이며 깨끗한 신식 건물들 모습이다. 신의주 사람들이 밤에 단동의 휘황찬란한 야경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가슴이 답답해진다.

북한 동포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던 일행들

5박 6일의 일정이 끝난 일행은 단동에서 배를 타고 인천을 향해 떠났다. 저녁을 먹은 19명의 일행이 한 방에 모여 결산하는 자리에서 각자의 여행 소감을 말했다. 단동에 있는 북한식당인 고려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공연하는 아가씨들의 공연을 보다 눈물을 흘렸던 이순옥(64세)씨가 입을 열었다.

"공연은 좋았는데 아가씨들이 꼭두각시 같아 마음이 아팠어요. 다리 하나를 두고 이쪽은 잘살고 북한 쪽은 못사는 게 너무 짠하고 가슴 아파요. 끊어진 압록강 철교 입장료가 6천 원인데 3천 원은 북한 쪽에 줬으면 좋겠어요."

세계문화의 흐름을 알고 역사의식이 있는 김진호씨의 얘기다.

"고구려와 북한이 우리 땅인데 정치하는 사람들이 잘못해 이렇게 된 것 아닙니까? 또 잘못된 정치인을 뽑을까 걱정됩니다."

예술을 전공하고 들꽃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이정남씨의 얘기다.

"언젠가는 백두산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일본의 역사왜곡을 보았지만 중국의 역사왜곡도 심각함을 알고는 깜짝 놀랐어요. 고구려 고분 벽화들이 많이 훼손된 게 아쉬워요."

 점심을 먹은 후 북한 고려식당에서 공연이 있었다. 운영은 중국인이 한다고 한다.
 점심을 먹은 후 북한 고려식당에서 공연이 있었다. 운영은 중국인이 한다고 한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인천으로 돌아오는 배에서는 난상토론과 이야기 꽃이 피었다.
 인천으로 돌아오는 배에서는 난상토론과 이야기 꽃이 피었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문화해설을 하는 오세화씨는 비가 와서 천지를 못 본 아쉬움과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해 얘기했다.  

"하루빨리 국력을 키워서 우리 문화재를 보전해야 합니다. 천지를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게 아닌가 봐요. 북한주민들이 우리를 기다렸는데 너무 늦게 와서 비를 내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나이가 제일 많은 홍성학씨의 얘기다.

"가볍게 문화답사를 왔는데 잃어버린 땅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어요. 여러 가지로 공부가 됐습니다. 광개토왕비가 왜 여기 있어야 하나요? 왜 우리가 비자를 받아서 이곳까지 와봐야 합니까? 북한 고려식당에서 공연하는 아가씨들을 보면서 즐거운 마음이 하나도 없었어요.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즐겁게 토론하고 얘기하는 사이에 배는 인천항에 도착했다. 잃어버린 땅과 분단의 아픔을 경험한 이번 여행은 의미가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그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단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