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진범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가 종료된 사건을 가리켜 흔히 '미결 사건'이라고 부른다. 미결 사건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가지일 것이다. 그 중 하나는 사건수사에서 별다른 실마리를 찾지 못한채로 점점 시간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강도와 살인같은 강력범죄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생겨나는데, 몇 달 전 또는  몇 년 전에 발생한 사건에서는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수사진들의 관심은 아무래도 최근에 발생한 사건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1년, 2년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간다. 공소시효까지 만료된다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런식으로 하나둘씩 미결 사건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본다면, 이런 미결 사건은 범죄자에게는 완전 범죄에 해당한다. 자신의 이익과 만족을 위해서 범죄를 저질렀는데 발각되지도 않고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은채로 공소시효가 지났다.

 

범죄자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일도 바라기 힘들 것이다. 흔히 '완전 범죄는 없다'라는 말들을 하곤 하는데, 실제로 존재하는 여러가지 미결사건들을 보고 있으면 '현실은 그렇지 않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해결되지 못한 수많은 사건들

 

하지만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이 범죄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우선 피해자의 가족들이 그렇다. 사랑하는 자식이나 부모가 아무 이유없이 살해당했는데 범인을 잡지 못하고 하염없이 시간만 흘러간다면 그 가족의 심정이 어떨까. 당장이라도 경찰서에 달려가서 범인을 잡아달라고 호소하거나 아니면 형사들을 상대로 분통을 터뜨릴만도 하다.

 

미결 사건의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와 그들이 속한 경찰서도 피해자를 잊지 못할 수 있다. 그런 사건은 해당 경찰서의 입장에서는 치부로 남게 되는 것이다. 마이클 코넬리의 2005년 작품 <클로저>에서, 주인공 해리 보슈의 상사는 미결 사건들을 가리켜서 '잊혀진 목소리들의 합창'이라고 표현한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자신을 기억해달라며 사방에서 속삭이는 소리들이다.

 

<클로저>는 '해리 보슈 시리즈'의 11번째 편이다. 첫번째 편인 <블랙 에코>에서 보슈는 LA 경찰국 강력계 형사로 데뷔한다. 그리고 8번째 편인 <유골의 도시>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슈는 사표를 던지고 경찰국을 뛰쳐나와서 사립탐정으로 변신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에 보슈는 <클로저>를 통해서 다시 경찰국으로 복귀한다.

 

보슈가 다시 경찰국으로 복귀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예전의 파트너였던 여형사 키즈민 라이더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 <클로저>에서도 보슈는 라이더와 함께 파트너를 이루며 사건을 추적한다. 대신 보슈는 더이상 강력계 소속이 아니다. 보슈는 '미해결 사건 전담반'으로 발령 받는다. 그곳은 사건수사로 산전수전 다겪은 베테랑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보슈와 라이더에게 떨어진 첫번째 사건은 1988년에 있었던 한 여고생 살인사건이다. 레베카 벌로런이라는 이름의 여고생은 자신의 집에서 실종된 뒤 얼마 후에 집근처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범인은 아직까지 잡히지 않았다. 보슈와 라이더는 당시에 작성했던 자료를 검토하며 수사를 시작하고 과거의 범인에게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한다.

 

탐정생활을 마치고 복귀한 해리 보슈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랐던 질문은 '어떻게 과거의 범인을 잡을까'가 아니라, '왜 보슈는 다시 경찰국으로 돌아왔을까'였다. 보슈는 형사로서의 능력은 뛰어났지만, 조직내에서 융화하지 못하는 '고독한 코요테' 같은 이미지가 강했다. 보슈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그의 그런 면에 많이 이끌렸을 것이다. 그런 보슈가 다시 조직생활을 시작했다. 왜일까?

 

보슈는 시리즈의 전편인 <로스트 라이트>에서도 4년 전에 발생했지만 해결되지 못한 사건을 독자적으로 추적한다. 하지만 혼자이기 때문에 그만큼 곤욕을 치른다. FBI에게 체포되는가 하면 자신의 집을 수색당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보슈는 분노나 수치심보다는 철저한 무력감을 느낀다.

 

보슈가 다시 조직으로 돌아온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어차피 보슈의 천직은 범죄자를 추적해서 잡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직과 융화하지 못하더라도, 상사에게 쓴 소리를 듣더라도 조직의 힘을 빌리는 것이 범죄자를 상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아니면 조직내에서 자신의 능력을 더욱 잘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보슈는 다시 형사로 돌아왔다. 그것도 오래 전에 죽은 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미해결 사건 전담반으로. 억울하게 죽은 채로 구천을 떠도는 피해자의 영혼은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관의 주변을 맴돌며 하소연할지 모른다.

 

날 죽인 범인이 아직 뻔뻔스럽게 살아있으니 어서 가서 잡아달라고. 원통해서 이대로는 저 세상에 갈 수 없으니 제발 내 한을 풀어달라고. 망자를 달래기 위해서 살풀이나 푸닥거리를 하는 것 보다는, 해리 보슈처럼 열심히 뛰어다니며 범인을 추적하는 것이 억울한 영혼을 달래는 지름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클로저> 마이클 코넬리 지음 / 한정아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클로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1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2013)


태그:#클로저, #해리 보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