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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16일 오후 5시 47분]

성우제 소장을비롯한 솔루션위원회 관계자들이 6일 민지네 새집 출발을 축하했다.
 성우제 소장을비롯한 솔루션위원회 관계자들이 6일 민지네 새집 출발을 축하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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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소녀는 어떤 영혼의 소유자일까?'

성우제(50) 서울동부보호관찰소장은 샛노랗게 물들인 머리와 짙은 화장, 짧은 치마를 입은 민지(가명·15)를 보고 적이 놀랐다. 유흥업소 여성 뺨치는 차림이었다. 민지는 비행에 심하게 노출된 보호관찰 대상자다.

일용노동자인 아빠(49)와 결혼한 조선족 엄마(37)는 민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혼하면서 가족 곁을 떠났다. 아내에게 배신당한 아빠의 분노는 민지 남매에게 종종 가해졌다. 엄마에게 버림받고, 아빠에게 폭행당한 민지는 같은 학교 학생을 집단 폭행했다가 가정법원에서 보호처분을 받고 학교도 떠났다.

성 소장은 민지네 집 안팎을 보고 더욱 충격을 받았다. 민지 아빠는 조선족 아내가 떠나자 벽시계와 전자제품 등 각종 중고 물건 수집에 나섰고, 5년여에 걸쳐 모은 물건들이 온 집안을 뒤덮었다. 민지 아빠가 물건을 수집한 속내는 재결합하면 아내에게 줄 요량이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중고 물품을 모았다가 장인장모에게 주면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고, 수년 동안 쌓인 물건에선 악취가 진동하면서 집안은 끔찍한 고물 창고로 변했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열다섯 살 소녀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

성 소장은 고민 끝에 민지네 가족을 살리기 위한 TF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광진구청과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서울위기청소년교육센터와 자양종합복지관, 반성매매 인권행동 이룸과 지구촌사랑나눔 등의 관계자들로 솔루션위원회를 만들었다. 보호관찰소는 솔루션위원회를 통해 ▲고물철거 및 도배 등의 주거환경 개선 ▲민지 질병 치료 및 수술 ▲상담과 심리치료를 통한 가족기능 회복 ▲민지 아빠 일자리 알선과 민지 미용기술과 취업 지원을 진행할 계획이다.

보호관찰소는 법무부 소속 기관으로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과 사회봉사 처분을 받은 청소년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보호관찰, 사회봉사명령 등을 집행한다. 특히, 불우 대상자 가정에 대한 원호(援護)와 지원, 검정고시와 기술교육, 심리치료 등의 사회복귀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처벌보다 치료하는 보호관찰... 낙인보다 포용이 사회 안정에 기여

각종 고물과 물건들로 가득찬 민지네 집안.
 각종 고물과 물건들로 가득찬 민지네 집안.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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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6일 서울 송파구 거여동 서울동부보호관찰소에서 진행된 성우제 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민지네 살리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지난달 25일부터 광진구청의 지원을 통해 청소차 3대와 1.5톤 화물차 5대 등 모두 8대 분량의 고물과 폐품 등을 실어냈다. 5년간 쌓아두었던 짐들을 들어내는 일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민지 아빠가 처음엔 반발했는데 보호관찰소의 이광열 관찰과장과 배상혁 주무관이 자기 집안일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수고하는 것을 보고 용기와 감동을 받으면서 주거환경 개선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지난 2일 도배와 장판작업까지 마치면서 악취가 진동하고, 쌓인 물건 때문에 햇빛조차 들지 않던 집 안팎이 신혼집처럼 환해졌다."

- 솔루션위원회를 구성한 이유는 무엇인가.
"보호관찰소 독자적으로 민지네 살리기를 하기엔 역부족이다. 광진구청과 청소년상담 기관 등의 협력을 통해서 민지네를 살려야 한다는 바람으로 솔루션위원회를 구성했고 각 기관의 역할분담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기관과 정부기관, 민간기관 간의 협력을 통해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고, 위기에 처한 소녀의 상처가 회복되고, 위기 가정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 보호관찰 대상 청소년들은 누구인가.
"보호관찰소에 오는 청소년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경쟁과 서열의 희생양이다. 우리 사회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인정하거나 이해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가난한 가정과 결손가정의 아이들을 안아주려는 사회적인 노력이 부족하고, 이탈된 청소년들을 위한 기관도 부족하다. 이로 인해 비행과 처벌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뿐 아니라 전 사회 차원의 노력이 요구되지만 당장은 해결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런 만큼 솔루션위원회 활동을 통해 위기 청소년을 살리는, 작지만 의미 있는 계기가 됐으면 정말 좋겠다."

- 서울동부보호관찰소의 보호관찰 대상자를 위한 노력이 남다른 것 같다.
"보호관찰소의 역할은 비행과 범죄에 노출된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정성을 다하면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난 4월부터 21명의 보호관찰대상자들을 대상으로 '행복 나눔 밥상'을 진행하고 있다. 농협가락공판장 특수품목도매인조합(조합장 김태산)의 도움을 받아서 각 가정에 매월 2차례 돼지고기와 야채, 과일 등을 챙겨서 직원들이 직접 배달하고 있다.

행복 나눔 밥상에 선정된 21명은 조손가정, 기초수급대상자, 차상위계층인데 이들 청소년들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거르는 경우가 많다. 밥은 그냥 식량이 아니고 밥상은 그냥 식탁이 아니라 가족을 지켜주는 우리 민족의 오래된 힘인데 이들 청소년 가정에서는 그런 밥상이 사라졌다. 가족 간의 정과 소통이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추진했는데 어떤 가정에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과 음식을 나누는 것을 보고 가슴이 찡했다.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던 가족들이 삼겹살을 굽고, 야채를 씻고, 상을 차리면서 서로의 눈빛이 부드럽게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2월 성우제 소장이 거여동 일대 독거노인 가정에 사랑의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지난 2월 성우제 소장이 거여동 일대 독거노인 가정에 사랑의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 서울동부보호관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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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관찰행정의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직원들의 업무 피로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선진국에선 직원 한 명이 40명을 담당하는데 우리는 한 명이 120명~200명 가량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선 매년 발생하는 20만 명 정도의 보호관찰 대상자를 밀착 지도하고 보살펴서 사회로 복귀시키기란 구조적으로 어렵다. 현재의 수준에선 보호관찰 대상자에 대한 치료와 회복보다는 관리감독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재범율을 낮추는 등 보호관찰의 역할을 다하려면 적정한 수준으로 업무 강도를 낮춰야 한다."

- 성남 등의 지역 주민들이 보호관찰소 이전을 반대하고 있다.
"2008년 성범죄자 전자발찌 제도가 도입되고, 보호관찰소가 대상자들을 관리하면서부터 일부 주민들이 보호관찰소를 혐오 시설로 오해하고 있다. 성범죄자들을 교도소에 격리시키거나 안 보이는 곳으로 몰아넣으면 우리 사회가 안전할까? 그렇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그들을 낙인찍어서 격리시키거나 내몰면 더 위험해질 수 있다. 범죄자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고, 치료해야 할 대상이라는 사회공동책임의식이 필요하다.

선진국에선 보호관찰 제도를 확대하는 추세다. 그것은 교도소를 짓고, 격리시키는 것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보호관찰 대상자의 생활을 보장하면서 전문 상담과 심리치료 등을 통해 재범 가능성을 차단하거나 최소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호관찰 대상자들에게 장애인이나 취약계층, 농촌봉사를 명령하는 것은 봉사와 나눔을 통해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생명의 존귀함을 충전시키려는 사회변상적인 의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망과 증오보다는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책임이고, 시민들은 그들을 왕따시키며 돌을 던지기보다는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관용과 포용을 베푸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공동체정신이 조성된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안전해질 것이다."

성우제 소장은? 따듯하고 부드러운 리더십

성우제 서울동부보호관찰소장
 성우제 서울동부보호관찰소장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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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제 소장은 '정성'(精誠)이란 단어를 좋아하고 자주 사용한다. 정성이란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이다. 성 소장은 민지네 가족 살리기에 정성을 쏟고 있다. 보호관찰소의 빠듯한 예산으론 턱없이 부족하기에 사비를 보탰다.

크리스천(집사)으로서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하는 신앙인의 책임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6일, 집들이가 끝난 뒤에는 민지를 데리고 가서 필요한 선물을 사주었고, 찡찡 거리던 민지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성 소장과 담당 직원들, 솔루션위원회 구성원들의 손길에 민지와 아빠는 굳게 닫았던 마음 문을 열고 함께 출발했다. 성 소장의 민지네 살리기는 작고 미약하게 시작됐지만 위기 청소년을 살리는 좋은 사례가 되는 아름다운 결말을 기대한다.

보호관찰소 관계자는 "직원들이 소장님의 따듯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을 좋아하고 닮아간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성 소장의 현장에 찾아가는 보호관찰을 통해 한부모 및 조손가정과의 거리감이 친밀감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또한, 업무가 끝난 야간에도 아르바이트 중인 청소년들을 찾아가 격려하고, 가락동공판장에 새벽같이 찾아가 그곳에 취업한 청소년과 채용해준 사업주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청소년들의 일자리를 넓히는 등의 수고를 높이 평가했다. 

충남 예산이 고향인 성우제 소장은 96년 40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법무부 소년과 사무관으로 출발했다. 안양소년원장과 광주보호관찰소장, 대전소년원장과 법무부 소년과장을 거쳐 지난해 7월부터 서울동부보호관찰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태그:#서울동부보호관찰소, #성우제 소장, #위기청소년, #성매매, #전자발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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