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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7일 오후 1시 40분]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찾아온다. 지난 주말, 불쾌지수 높은 무더위가 삼성전자를 덮쳤다. 2011년 봄부터 벌여온 삼성전자와 애플의 글로벌 특허전쟁은 벌써 세 번째 장마를 통과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국제무역위원회(InternationalTrade Commission; ITC, 미국 무역위원회)가 내린 애플 제품에 대한 수입 금지 명령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현지시각 8월 3일). ITC는 지난 6월 4일에 3G 이동통신 기술을 사용하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구형 일부 모델에 대해서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미국 내 수입 금지 명령을 내렸다.

 애플 아이폰5
애플 아이폰5 ⓒ 김시연

미국은 생산기지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큰 소비 시장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전량 중국에서 생산되어 미국으로 수입되므로 ITC의 결정은 애플과 싸우고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대단히 큰 성과였다.

수입 금지 명령의 대상이 된 애플의 제품들은 비록 주력 모델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저가 시장과 교육 시장에서는 의미가 있었다. 애플에게는 아픔이었고, 삼성전자에게는 기쁨이었다. 하지만 유효기간이 너무 짧았다. 아픔과 기쁨이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뒤바뀌는데 정확히 60일이 소요되었다.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마치 협상 테이블의 의자를 치워버리는 것과 같아서 협상이 급한 삼성전자에게 더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9개 나라에서 지루하게 진행 중인 이 특허분쟁은 규모가 지나치게 크고 소모적이다. 삼성전자가 2010년 구글의 안드로이드 동맹군의 헬멧을 쓰고 갤럭시 스마트폰을 출시했을 때, 이미 자신의 최대 고객인 애플과의 소송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런 운명을 작심하고 동맹군의 일원이 되기를 결심한 삼성전자의 비즈니스 전략은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몇 해가 되지 않아서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 동맹군의 맹주가 됐을 뿐만 아니라, 출하량 기준으로 애플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된 것이다. 물론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했다. 그 대가가 바로 지금의 특허분쟁이다.

만일 특허가 비즈니스보다 중요하다면 삼성전자는 불퇴전의 자세로 이 특허소송에 지속하는 게 바람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특허보다 비즈니스가 더 중요하다면 과연 어떨까? 비유해서 말하자면 애플은 '명사'이고 삼성전자는 '동사'이다.

애플은 남다른 '고유한' 세계에서 경쟁을 해왔다. 그것이 그들의 미덕이고 전략이고 또한 단점이며 짐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몇 년간 저 거대한 규모의 덩치가 어떻게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격동기의 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지를 압도적으로 보여줬다. 그게 삼성전자의 강점이며 전략이고 또한 약점이자 부작용이다. '명사'를 닦달할 게 아니라 '동사'에 어울리게 출구전략을 좀 더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삼성전자에 어울리지 않을까?

애국주의의 덫에 빠진 대한민국 언론

무릇 송사의 입구는 요란하지만 출구는 조용한 법. 요란한 언론은 도움이 되지는 못할 성 싶다. 연합뉴스는 '25년 만의 미 대통령 거부권, 보호무역주의에 삼성 당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연합뉴스는 거부권을 행사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출처가 불분명 한국내 업계 관계자의 진술을 인용하면서 특별한 근거도 없이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웠다.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에 관한 8월 5일자 주요 조간신문의 사설 제목은 이렇다.

'보호무역 성향 드러낸 오바마의 거부권 행사'(경향신문), '이게 노골적 보호무역주의가 아니고 무엇인가'(중앙일보), '유감스런 미국의 애플 수입금지거부권 행사'(한겨레신문),'애플 편 든 오바마, 자유무역 외칠 자격 있나'(동아일보), '오바마 대통령은 보호무역주의자인가'(전자신문) 등이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언론사들도 대부분 비슷한 제목과 맥락으로 사설을 썼다.

어떻게 이렇게 하나같이 마치 동맹을 맺은 것처럼 같은 견해를 피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삼성전자라는 거대한 광고주의 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자발적인 애국심의 발로라고 나는 생각한다. 애국주의적인 관점에는 보수든 진보든 구별이 없으며, 제대로 된 분석과 통찰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언론의 현주소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지적소유권(지식재산권 혹은 지적재산권이라는 용어로 표현되곤 한다)을 강조하며, 자국의기준이 다른 나라에도 적용되기를 강권해 왔다. 그것은 미국의 가장 강한 자원이자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적소유권의 자국의 산업을 '이기적으로' 그리고 일관되게 보호하려는 보호무역주의의 일환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미 행정부가 자신의 일관된 정책으로 법원의 판결을 좌우하며, 사기업간의 분쟁에 일일이 간섭하여 승패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어떤 객관적인 근거도 없다. 세상에 실존하는 미 행정부를 봐야지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그리면서 비판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 내에서는 지나치게 권리자 중심의 자국의 지적소유권 제도를 정비하려는 일관된 시도가 있었다. 특허제도를 보완하려는 시도이다.

한편으로는 '선발명주의' 기반의 특허제도를 '신청인우선' 기반의 특허제도로 개혁하였으며, 이는 의료보험시스템에 대한 개혁만큼이나 역사적인 일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특허남용으로부터 혁신 시스템을 보호하려는 시도였다. 오바마 정부에 참여한 전문가들과 열성적인 지지자 그룹은 특허제도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팀 오라일리 등의 공저인 <OpenGovernment>(열린정부만들기·에이콘출판사)를 통해서 그들의 시각과 관점을 엿볼 수 있다). 큰 의미로 보자면 그런 컨센서스가 이번 거부권 사태의 맥락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 아래에서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토의할 사항이 많다.

그러나 '보호무역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모든 토론은 사라지고 만다. 긍정적인 분석과 전망조차 어떤 자리도 차지할 수 없다. 그만큼 보호무역주의라는 담론은 감정적이다. 그 정도로 유용하지도 못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보호무역주의의 발로가 아니다.

잘못된 번짓수 앞에서 성내는 일은 그만했으면 싶다. 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특허남용에 대한 잘 준비된 정치적 견제이며, 특허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한 미행정부의 일관되고 공식적인 조치로 이해하는 것, 그러니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무래도 현명해 보인다. 특허제도가 특허괴물(Patent Troll)에 의해 악용되며 또한 혁신의 방해물로 작용되고 있다는 현실 진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허제도의 흠과 결은 우리가 익히 아는 것이다. 이런 흠결과 악용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미 행정부의 잘 짜인 각본

미국 무역대표부의 마이클 프로먼(Michale B. G.Froman)이 서명한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의 공식적인 문서(서한)를 살펴보자. 내용의 대부분이 표준필수특허(Standard Essential Patents; SEPs)에 관한 것이다. 표준필수특허가 쟁점이 될 때 무역위원회에서 수입금지결정을 함에 있어서 여러 가지 쟁점과 문제의식에 기반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 경제의 경쟁질서와 소비자의 이익을 위해서 ITC 결정을 승인하지 않았다. 그 구체적인 이유를 볼 것 같으면 마치 작심하고 쓴 듯한 기분이 든다. 거부권 서한은 어디까지나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라이선스를 부여할 의무(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FRAND)를 전제로 표준특허권자(이 사건에서는 삼성전자)가 특허권자의 지위를 주장할 수 있다는 원칙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반대로 그 기술을 이용하는 상대방(이 사건에서는 애플)은 FRAND 라이선스협상을 위해서 건설적으로 거절할 권한이 있음을 천명하였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표준특허침해 관련한 ITC의 판정에 있어서 보다 엄격한 심사 가이드를 제시하였다.

이번 서한은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잘 짜인 각본이 있다. 거부권의 잘 정리된 이론적 근거는 IT C가 삼성전자에 손을 들어준 날로부터 4일 후에 공표된 미국 법무부와 미국 특허청의 가이드라인에 기초한다. 그리고 이는 또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미국 백악관의 '특허행사와 미국 혁신'이라는 공문서에 기재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백악관의 공문서는 특히 소위 특허괴물들의 공세에 따른 미국특허제도와 혁신시스템의 위험성을 진단하고 있다. 

또한 미국 연방 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FTC)가 구글이 모토로라 모빌리티의 표준특허를 사용하여 경쟁자를 판매금지 시킬 수 없음을 선언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즉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특허제도를 악용하려는 행위를 개선함으로써 미국의 특허제도와 혁신시스템을 보호하려는 미 행정부의 일관된 입장에 기초한다.

왜 하필 삼성전자인가?

물론, 그런데 "왜 하필 삼성전자인가?"라고 질문할 수 있겠다. 사실 세계 톱 기업끼리의 거대한 충돌에서 표준특허가 이슈가 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유래 없는 대규모 소송이 벌어졌고, 또한 수입금지(ITC 행정소송)와 판매금지가처분(미국법원) 소송의무기로 표준특허가 사용됐기 때문에 크게 이슈가 되었다고 봄이 합리적이다.

즉, 이번의 일련의 경과과정은 표준특허에 대한 보다 분명한 가이드라인이 만드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1년 전에 삼성전자는 민사법원의 1심 소송에서 애플에게 졌다. 이에 대해서 나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관련기사 : '애플 완승'은 애국심 탓? '삼성 관점' 벗어야 보인다).

비록 1년이 흘렀지만 <오마이뉴스> 기사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분쟁을 이해하는 데 독자에게 여전히 미력의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 소송에서 FRAND 문제는 별다른 이슈가 되지 못했고(워낙 애플의 압도적 승소에 시선이 집중되었으므로), 배심원단은 삼성전자의 반독점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삼성전자에게는 유일한 위안거리였으나 이번 ITC 절차에서 표준특허의 사용이 사실상 봉쇄되었으므로 삼성전자에게는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애플을 상대로 꺼내든 주요 무기가 표준특허였고, 그게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어서 삼성전자가 자책할 수 있을지언정 누구를 탓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삼성전자는 지금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누누이 참고할 역사를 쓰고 있다. 표준특허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줄은 생각도하지 못한 것 같다. 그들은 비즈니스에서는 눈부신 성공을 거뒀지만, 특허소송에서는 실패하고 있다. 마치 1980년대 미국 시장에 처음 진출해서 맞닥뜨린 특허소송에서 참담한 실패를 경험했던 것처럼. 삼성전자는 당시 미국 기업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의 특허소송에서 당시기준으로 85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성장통이었다.

이번 소송은 삼성전자에게는 역사가 될 것이며, 아마도 장차의 특허 전략에 약이 될 터이다. 그러므로 애국심을 발동하여 함께 안타까워할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가릴 까닭은 없다. 삼성전자의 성패는, 애플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송사가 아니라 언제나 시장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자면, 이번 오바마 미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삼성전자에도 유용하게 작용한다. 삼성전자의 비즈니스 영역은 특히 특허괴물이 가장 많이 발호하는 영역이다. 또한 실제로 가장 많이 괴롭힘을 당하는 기업 중의 하나가 바로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현재 에릭슨과 인터디지털한테 표준특허로 피소를 당한 상태이기도 하다. 표준특허는 삼성전자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LG 전자도 마찬가지다. 특허 시스템을 이용한 지나친 송사가 어느 정도라도 억제된다면,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에게도 전혀 나쁘지 않다.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

제도의 개선은 어느 누구만의 몫이 아닌 것처럼, 국적을 따져서는 아니된다. 오늘날 글로벌 경제와 글로벌 비즈니스는 이미 국경을 넘어서 행해지고 있다. 한 나라 혹은 한 대륙의 정책은 때때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특허제도는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고 있으며, 미국의 정책과 판례가 국제적인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허제도에 대한 미국의 개선과 정책변화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보호무역주의라는 프리즘으로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바라보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고 어떤 것도 긍정적으로 분석할 수 없으며 단지 미 정부를 비난하는 일만 남게 될 뿐이다. 그렇지만 특허제도의개선이라는 앵글로 바라본다면 대책 마련과 정책의 수립이라는 실용적인 과제가 주어진다. 어느 쪽 길이 더 현명할까?

만일 보호무역주의라는 앵글이 아니라 특허제도의 개선과 변화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여러 가지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 눈에 들어온다. 우선 미국 백악관, 법무부, 특허청 등의 공식 문서를 분석하면서 미행정부의 특허정책의 변화를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지적소유권 제도에 관해서는 미국의 제도와 정책이 사실상의 표준으로 작동하고, 또한 미국 시장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유용한 연구가 아닐 수 없다.

표준특허의 허와 실에 대한 반성적 사고와 면밀한 분석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표준특허에 대한 이번 미 행정부의 입장은 앞으로도 확고해질 가능성이 농후하고, 이것이 곧 국제적인 통설로 퍼질 가능성이 크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특허제도와 경쟁법 사이의 관계를 좀 더 면밀히 연구할 필요가 있겠다. 기업의 경우 특허전략을 수립함에 있어서 표준특허와 특허괴물에 관한 미행정부의정책변화가 커다란 참고가 될 것 같다.

무엇보다 폭주하는 특허제도를 견제할 장치는 결국 '정치의 힘'일 것이다. 오늘날 글로벌 대기업들은 너무나 많은, 그리고 너무나 강력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그로 말미암아 특허가 혁신의 산물이 아니라 혁신 시스템을 위협하는 도구로 악용될 우려가 증가한다. 후발주자가 특허가 많겠는가 아니면 선행기업이 특허가 많겠는가? 대기업의 특허가 위협적일까 아니면 벤처기업의 특허가 더 위협적일까? 제조사의 특허가 더 중요한가 아니면 특허괴물의 특허가 더 중요한가?

특허제도는 법적으로는 반독점법의 강화로 견제할 수는 있겠으나, 제도 자체가 조약에 의해서 국제화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정치적인 견제 또한 무시할 수 없을 터이다. 향후 특허는 국제정치적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세심한 대비도 필요하겠다. 이와 같은 대책과 과제는 보호무역주의라고 표현하는 순간 자취를 감춘다. 감정은 시선을 가린다.


#삼성전자#애플#오바마#ITC#특허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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