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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갠 지갠 지갠 지갠"
"그덩 그덩 기 구기다궁"


7월 말 정오의 땡볕 속에서 꽹과리 소리가 매미소리를 치고 나온다. 뒤이어 들리는 장구 소리. 경북 청송에 폐교를 개조하여 만든 청송문화학교의 운동장 위에서 20여 명의 대학생들이 악기를 치고 있다. 중복 더위에 다들 까맣게 탔고, 정오의 태양에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운동장의 모래 열기보다 그들의 눈빛이 더 뜨겁다.

한양대학교 내의 풍물패 모임인 '애국한양 풍물패 연합'은 지난 7월 23일부터 30일까지 전수를 떠났다. 전수란 일주일간 합숙을 하며 악기를 배우는 프로그램인데 여름, 겨울 방학 때마다 진행한다. 여름에는 자체적으로 준비를 해 선배들에게 배우고 겨울에는 전북 임실에 있는 '필봉 농악 전수관'에 가서 사부님들에게 배운다.

"생활 공동체, 소리 공동체"

애국한양풍물패연합 여름전수 대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악기 연습을 하고 있다.
▲ 애국한양풍물패연합 여름전수 대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악기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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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달 전부터 선배들이 모여 전수 준비단을 꾸린다. 이번 전수의 목표와 기조를 정하고 일정을 짠다. 그리고 실무단, 프로그램단, 자료집 준비단, 강사단으로 나누어 새내기들과 함께 준비한다.

"굿은 서로가 이해하지 않고 자기 소리만 내려고 한다면 좋은 굿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니까요."

전수 대장 박형일군의 말이다. 여기서 굿이란 풍물 악기를 치는 것을 말한다.

아침 6시 반 기상, 밤 2시 취침... 24시간 악기 생각만

기상은 6시 반. 처음 일정은 소고수업이다. 일어나자마자 눈꼽도 떼지 못한 채 바로 소고를 집어 든다. 졸음 가득한 눈으로 소고 수업을 30여분 가량 진행하고 나서 아침을 먹는다. 밥은 담당 선배가 하지만 설거지는 조 별로 돌아가며 한다. 밥 먹기 전에는 조별로 재기발랄한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한다. 신체적으로 지치기 쉬운 일정 속에서 발랄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일주일간의 단체생활을 위해 나름의 규율이 있다. 벽에 등 기대지 않기, 수업시간에 휴대폰 사용 금지 등. 더불어 각 조별로 발냄새 금지, 조별 물품 장착하기 등의 재미있는 규율을 추가하기도 한다.

전수 준비단의 작품 곳곳에 직접 써온 걸개를 걸어놓아 분위기가 활기차다.
▲ 전수 준비단의 작품 곳곳에 직접 써온 걸개를 걸어놓아 분위기가 활기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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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3시간, 오후에 3시간 수업을 듣고 특별반으로 나뉘어서 소고, 설장구, 채상 등의 수업을 더 듣는다. 그러고도 1시간의 연습 시간을 가진 후에야 비로소 몸에서 악기를 떼어 놓을 수 있다. 해가 떠 있는 시간 대부분을 악기를 치며 보낸다. 해가 지고 나서는 민요 배우기, 인간 윷놀이, 교양 강연 등의 스스로 준비한 프로그램들을 더 하고나서야 하루 평가를 마치고 뒤풀이를 할 수 있다.

일주일간 함께 땀을 흘리며 지내다 보면 서로 정이 듬뿍 들고 친해지기 마련이다. 매일 밤 뒤풀이 때는 마치 낮에 체력을 충전시켜 놓았다가 밤에 다 불태우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활기차다.

하지만 다음 날을 위해 2시까지는 꼭 뒤풀이를 종료하고 취침을 한다. 전수대장은 곳곳에 숨어 잠을 안자는 올빼미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임무이다. 못 다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지 풀 숲에 숨어 소곤거리는 여자아이들부터 방에 누워서 자지 않고 떠드는 남자 아이들, 뒤풀이 시간 조금만 더 늘려달라는 선배들까지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그 중 경계대상 1호는 어둠을 즐기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청춘 올빼미들이다.

치열한 장구 경쟁... 보이지 않는 신경전

전체판굿 일주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전체판굿이 진행 중이다.
▲ 전체판굿 일주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전체판굿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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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의 마지막은 '전체판굿'이다. 모두가 치배(악기를 치는 사람)가 되어 판굿(일정한 순서를 가지고 악기를 치는 것)을 한다. 새내기가 가장 하고 싶은 악기 1위는 장구이다. 일주일동안 장구를 배웠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고 '치배뽑기'란 시험을 거쳐 선발된다. 실제로 실력보다는 일주일간의 전수 생활을 모범적으로 하고 열정이 큰 친구들이 우선 순위로 뽑힌다.

전체판굿 날은 장에서 닭을 사와 큰 솥에 닭죽을 끓여 다같이 나눠 먹는다. 전과 막걸리는 필수다. 풍물 소리를 듣고 마을 주민들도 삼삼오오 모여든다. 달빛 아래서 타오르는 불 주변을 돌며 악기를 치다 보면 일주일간 힘들었던 일들이 싹 사라진다. 간혹 서운하거나 감정이 상했던 사이가 있더라도 서로 얼굴에 타고 남은 재를 묻혀가며 도망다니다 보면 어느새 웃는 얼굴이 된다.

 전체판굿은 늦은 시간까지 진행된다.
 전체판굿은 늦은 시간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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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에서 풍물패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어요. 새내기 받는 것도 점점 힘들어지고요. 하지만 풍물에 관심이 없이 들어왔더라도 이렇게 치다 보면 어느새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풍물의 매력은 공동체와 사람이니까요."

스펙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와 사람이 더...

 전체판굿으로 일주일의 대미를 장식한다.
 전체판굿으로 일주일의 대미를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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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과 취업의 난 속에서 요즘 대학생들은 방학때 더 바쁘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열 일 제쳐두고 일주일 간 힘든 규율을 지키며 단체 생활을 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그만한 고민과 가치가 담겨 있을 것이다. 공동체와 사람을 중시하며 전통 문화를 배워나가는 대학생들의 모습에서 '건강한 청춘'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풍물#한양대#애풍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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