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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 주최로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제5차 범국민대회에 수많은 촛불을 든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 주최로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제5차 범국민대회에 수많은 촛불을 든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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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경기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심판도 사람이라 스포츠에서 오심이 없을 수 없고, 그것으로 승패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경기가 끝난 이후에 오심이 밝혀진다고 모든 경기의 승패가 뒤집히는 것은 아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말이다. 심판이 선수, 팀과 짜고 의도적으로 편파 판정을 한 것이 아니라면 승패가 뒤집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실수가 아니라 선수 또는 팀이 사전에 또는 경기 중에 심판과 짜고 벌인 고의적인 오심이라면 승패는 번복되어야 하며, 결코 경기의 일부로 존중받아서는 안 된다. 진정한 스포츠맨십은 이런 승부조작에 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거부하고 싸우는 것이다. 실수에 의한 단순 오심이 아니라 사전에 기획된 승부조작은 스포츠에서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 중의 하나인 이탈리아 세리아A 2005/2006년 시즌 명문팀 유벤투스는 1위를 했지만 승부조작이 밝혀져 우승 자격을 박탈당하고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유벤투스 팀 단장이 자기 팀에게 우호적인 판정을 하는 심판을 경기에 내보내라고 심판 배정관에게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벤투스 단장은 영구제명됐고, 관련 심판들은 형사처벌과 함께 1년~5년 자격정지를 당했다.

지난 7월 나이지리아 축구리그 마지막 날 79:0, 67:0으로 '2경기 146골'이라는 믿을 수 없는 스코어가 나왔다. 두 팀은 승점이 같은 상태에서 마지막 경기의 골득실 차이로 상위리그 승격이 결정되는 상태였는데 실시간으로 상대 경기의 스코어를 확인하면서 무더기 골을 넣고, 넣게 해준 결과 이런 스코어가 나온 것이다. 이 경기 결과는 당연히 무효가 되었고, 이 축구팀의 선수와 구단 관계자는 영구제명의 철퇴를 맞았다.

유벤투스 단장의 심판 매수나 나이지리아 축구 리그의 승부조작을 두고, 이미 끝난 경기라고, 승부의 일부라고 받아들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선거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다.

단순오심이냐 승부조작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과정은 가장 공정해야 하고, 공정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승패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선거와 스포츠는 무척 닮아 있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스포츠도, 선거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이번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스포츠로 비유하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경기 중인 팀과 소속 선수이고, 선관위와 경찰, 검찰 등은 중립을 지키며 경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감시해야 하는 심판이라고 할 수 있다. 심판은 결코 경기에 직접 나서서는 안 된다. 국정원도 마찬가지다.

국정원 선거 개입 사태의 정체는 3가지 중 하나다. 첫 번째는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것처럼 정상적인 진행으로 이미 승부가 끝난 경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검찰 조사 결과 원세훈 국정원장의 지시로 국정원 직원들이 댓글을 달고 추천과 비추천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선거에 개입한 것이 드러나 기소된 것만으로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또 국정조사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작성한 댓글이 삭제되는 장면이 나오고, 경찰이 이를 은폐하는 장면이 CCTV 자료로 드러나 이 주장은 설 자리를 잃었다.

두 번째는, 국정원의 선거에 개입 시도는 있었지만 선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도 못했고 국정원이 후보나 캠프와 상의 없이 독자적으로 한 일이기 때문에 박근혜 후보나 새누리당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수나 팀 입장과는 전혀 관련 없으므로 스포츠로 치면 심판의 단순오심 정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단순오심이 아니라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된 승부조작이라는 것이다. 즉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정원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 측과 미리 짜고 선거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으며, 또 다른 심판인 경찰청까지 수사 결과를 조직적으로 은폐 조작함으로써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는 것으로 명백한 승부조작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반드시 국민 앞에 해명해야 할 두 가지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민보고 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을 공식 제안하고 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민보고 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을 공식 제안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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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경찰청의 부정선거 조직적 은폐 축소 논란이 단순 오심이냐, 아니면 조직적 승부조작이냐를 가늠하는 핵심적인 잣대는 새누리당 캠프, 특히 박근혜 후보와 국정원, 경찰청의 사전 기획 여부이다. 그 문제를 판단하기 위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반드시 해명해야 하는 두 장면이 있다.

먼저, 2012년 12월 14일 박근혜 캠프 총괄본부장이었던 김무성 의원의 부산 서면 연설 발언 현장에 박근혜 후보가 있었다. 당시 김무성 의원은 "최고의 관심을 받고 있는 노무현 김정일 간 대화록을 최초로 공개하겠다"고 밝히며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읽어내려갔다. 당시는 회의록 원문이나 발췌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다.

김무성 의원은 토씨까지 똑같이 회의록을 읽었는데, 나중에 기자들이 추궁하자 "왜 똑같은지 모르겠다"고 말도 안 되는 해명을 했다. 당시 현장에는 박근혜 후보가 함께하고 있었고 김무성 의원은 박근혜 선거캠프의 총괄본부장이었다. 이런 중요한 유세를 하는데 박근혜 후보와 상의 없이 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박근혜 후보와 상의 없이 유세 발언을 했더라도 그것이 비밀자료라는 것을 박근혜 후보도 몰랐을 리가 없다. 당시에는 아직 회의록이 공개되지 않았고, (국가기록원에 그 회의록이 없었으므로) 회의록의 출처는 국정원일 수밖에 없다. 국정원과 박근혜 캠프의 사전 공조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극히 낮은 가능성이지만 출처가 국정원이 아니라면, 당시에는 정상회담록이 존재했는데 이후에 없어진 것이 된다. 이는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과 관련하여 당시 캠프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회의록을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 이걸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다면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 선거캠프, 국정원이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한 승부조작이라는 혐의를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두 번째, 대선 마지막 TV토론회가 끝난 직후인 12월 16일 오후 11시 서울경찰청은 예정에 없던 긴급회견을 통하여 국정원 여직원의 선거 관련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중간수사 보고를 했다. 일요일 밤 11시에 경찰청이 보도자료를 낸 것도 유례 없는 일이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새누리당 캠프다. 수사 결과가 발표되지도 않았고, 언제 수사가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이미 새누리당 선거 캠프에서는 이를 알고 있었다. 경찰청 발표 이전에 이미 김무성 총괄본부장이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달지 않았다'는 경찰 발표 내용을 알고 있었고, 박선규 캠프 대변인 역시 수사결과 발표가 일요일 당일에 있을 것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경찰청과 사전 조율을 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이다.

박근혜 후보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후보는 TV토론회에서 "이번에 국정원 여직원 사태에서 발생한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해서 (문재인 후보가) 한 마디도 말씀도 없으시고, 사과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실제로 그 여직원이 댓글을 달았느냐? 그것도 하나 증거가 없다고 나왔지만"이라고 발언했다.

아직 경찰청의 수사 결과 발표가 있기 전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과거형으로 "증거가 없다고 나왔다"라고 발언했다. 박근혜 캠프 측에서 경찰청에 미리 가이드라인을 제공했거나, 경찰청이 사전에 새누리당 측에 알려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발언이다.

승부조작 논란 잠재울 주체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이 두 가지 부분에 대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해명하지 못한다면, 또는 새누리당이 국정원을 통하여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미리 받아보았고, 경찰청을 통하여 미리 조작·은폐된 수사 결과를 받아보았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대선 불복이나 무효 논란을 막을 수 없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장외투쟁이 대선 불복으로 비칠까 전전긍긍하여 마지못해 촛불집회에 결합하는 모양새인데, 오히려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대선 불복을 선언해주기를 바라는 이상한 양상이다. 한편에서는 이번 선거는 총체적 부정이므로 대선무효이고, 대통령이 하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경찰청의 수사결과 은폐·조작 CCTV가 공개되면서 그런 목소리는 더 커졌다. 이런 목소리가 확산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런 목소리를 힘으로 누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를 잠재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루 빨리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국정조사를 통하여 진실을 밝히는 데 앞장서면 이런 논란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하루 빨리 국정원 대선 개입 국정조사를 정상화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국정조사는 증인 문제를 두고 최대 고비를 맞았다. 민주당은 원세훈 국정원장, 김용판 경찰청장과 함께 박근혜 선본의 핵심간부였던 김무성 총괄본부장과 권영세 상황실장의 출석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원세훈 원장과 김용판 청장에 대해 강제동행 명령을 보장해달라는 민주당의 주장에 새누리당이 난색을 표하면서 기로에 놓였다.

5공 청문회에 핵심 당사자인 전두환, 노태우가 나오지 않았다면 그건 5공 청문회라 할 수 없다. 국정원 대선 개입 청문회에 이 사건의 핵심 당사자들인 원세훈, 김용판, 김무성, 권영세가 나오지 않는 것 역시 제대로 된 청문회라고 할 수 없다.

이들의 출석이 반드시 보장되고 국정조사는 정상화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것이 우선이고, 대선 불복 논란은 그 다음이다. 현재 김한길 대표나 문재인 의원을 비롯하여 민주당의 누구도 공식적으로 대선 불복 또는 선거 무효를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후 상황에 따라 대선 무효 주장으로까지 비화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스포츠에서도 단순오심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승부조작은 용납될 수 없다. 선거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심판 역할을 해야 할 국정원과 경찰청이 선거 후보와 캠프와 미리 짜고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명백한 선거 개입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은 대선 불복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말싸움을 할 때가 아니라 오심이냐 승부조작이냐 진실을 먼저 밝혀야 할 때이다. 진실을 밝히는 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대선 불복이니 선거 무효니 하는 더 큰 논란을 막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의 국정조사 정상화 결단이 요구된다.


태그:#박근혜, #대선, #승부조작, #국정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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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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