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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 버려진 아이(1950. 8. 8.).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1950.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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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준기 동생, 아무튼 고마워요."
"아니야요. 내레 더 고맙디요. 긴데 간밤에 어드러케 사과서리 가자는 말을 했수?"
"그건 믿음이에요. 준기 동생이 임은동 야전병원에 전입해왔을 때 어쩐지 앞으로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그건 여자만이 느끼는 어떤 육감이랄까 영감이지요. 어느 날 수술이 끝난 뒤 밤새 의료 기구를 소독하고 닦는 준기 동생의 그 성실한 모습에도 어쩐지 믿음이 갔고요."

"내레 순희 누이를 처음 봤을 때 기저 숨이 꽉 막히는 듯 햇디요. 거 뒤 다시보니까 서울깍쟁이로 센 너자(여자)로 새겨뎄디(새겨졌지). 긴데 이리케 항께(함께) 부대를 도망할 둘(줄)은…. 아무튼 나를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구해 줘 고맙습네다."
"내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낙동강을 건너게 해줘 고마워요."
"남자는 첫 너자를 평생 닞디(잊지) 못한다는데 … 아마 내레 순희 누이를 죽도록 닞디 못할 거야요. 이 살 냄새와 톡감(촉감)도…."

순희는 땀에 젖은 준기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며 말했다.

"고마워요. 나를 잊지 마세요."
"기러믄요(그러면요). 오늘 이 순간을 평생 간직하가시오. 기런데, 우리 각자 집까지 무사히 도착할까요?"
"쉽지 않을 거야요. 하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줄곧 가면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갈 테지요."
"내레 학업두 마치구, 직당(직장)두 얻구, 다시 순희 누이를 만나 한 평생 항께(함께) 살구 싶구만요."

"나도 그날을 기다릴 게요."
"하지만 그날이 쉬이 돌아오디는 않을 거야요."
"그럴 거예요. 그래서 조금 전 이런 생각이 문득 들데요."
"무슨?"

"예서 서울도 먼 데, 평안도 영변까지는 더 먼 곳이잖아요. 그리고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도 모르고요."
"기래서?"
"우리가 북으로 도망가다가 뜻밖에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는 매우 힘들 거라는."
"기래서?"

약속

"다행히 각자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고, 전쟁이 끝나 통일이 되어 서울과 평안도 영변 간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었으면…."
"……."
"하지만 세상사 우리 맘대로는 되지는 않겠지요."
"기러믄요."

"이건 어디까지나 만일이에요. 우리가 집으로 가는 도중에 국방군이나 인민군에게 붙들려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된다면, … 그때를 대비해서 우리 다시 만날 약속을 미리 정해둬요."
"어드러케(어떻게)?"
"잠시 전 내가 생각한 건데, 만일 우리가 서울로 가는 길에 헤어진다면…. 나는 이 전쟁이 끝난 다음 해마다 8월 15일 낮 12시, 서울 덕수궁 정문 대한문에서 준기 동생을 기다리겠어요."
"우리가 거기서 다시 만나자는 말이야요?"

"네, 그래요. 무슨 소설 같은 이야기지요."
"기거 참 괜찮은 생각이야요. 해마다 8월 15일 낮 12시에 만나자는 말은, 그날이 조국해방기념일로 날짜두 외우기도 돟구(좋고) 시간두 정오라 기억하기가 돟구만요. 기런데, 내레 서울 덕수궁 대한문은 가 본 적이 없는데."
"덕수궁은 서울 한복판 시청 앞에 있어요. 남대문과도 아주 가까워요."
"기래요. 기렇다면 아, 서울 남대문 앞 김 서방 집두 찾는다는데, 덕수궁 대한문이야 식은 죽 먹기터럼 쉽게 찾을 수 있갓네요(있겠네요)"

"그럼요. 대한문은 서울 역에서도 그렇게 멀지 않아요."
"알가시오. 기렇게 만나자면 통일이 되거나 아니면 내레 남녘에 남아야겠수다."
"왜, 싫으세요?"
"기게 아니라 내레 우리 오마니한테 꼭 살아 돌아간다구 약속했기 때문이야요."
"그렇다면 나보다 어머니와 한 약속이 더 중요하지요. 그럼 우리 통일이 된 다음, 8월 15일 날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만나요."

피난민 행렬(1950. 7. 29.)
 피난민 행렬(1950.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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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

"우리 생전에 통일이 되디 않으면?"
"아무렴, 그 전에야 되겠지요."
"하지만 호호 늙어 만나는 것은 싫습네다."
"그럼 어떻게 해요."

"아무튼 이 전쟁이 끝난 뒤 8월 15일 날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만납세다. 내레 기때두 남북이 38선으로 가로 맥헸으면(막혔으면) 우리 고향 텅턴(청천)강 매생이(쪽배)를 타구서라두 내려와 그날은 대한문 앞에 꼭 나타나가시오."
"정말?"
"기럼, 사나이 약속입네다."
"고마워요. 그럼, 우리 이 자리에서 약속해요."
"알가시오, 순희 누이."

그들은 왼손 새끼손가락을 걸고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긴 입맞춤을 했다.

"긴데 누이의 살 냄새와 감톡(감촉)이 아주 죽여주누만요."
"나도 동생의 단단한 가슴팍과 땀 냄새가… 준기 동생, 날 잊지 마오."
"내레 하고픈 말이야요."

순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속곳을 찾고는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비단주머니를 꺼냈다.

"준기 동생, 이거 가져요."
"머야요?"
"내가 입대하는 날 우리 어머니가 전차정류장까지 따라오셔서 주신 쌍 금가락지 중 하나예요."
"머이? 내레 거걸 왜?"
"아무소리 말고 받아요. 동생이 날 구해줬는데 그 무엇인들 아깝겠어요. … 동생이 영변까지 가자면 나보다 더 필요할 거요."
"일없습네다. 누이가 곁에 있잖수."

"두 말 말고 받아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사람의 앞날이에요. … 동생, 나중에 더 좋은 것 사주면 되잖소."
"알가시오.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말하라요."
"그럼요."

순희는 늘 차고 다니던 구급대에서 실과 바늘을 꺼내더니 준기 바지의 주머니를 뒤집고는 금가락지를 바지주머니에 실로 꿰맸다.

"역시 순희 누이야요. 매사 철저합네다."
"그럼요. 이렇게 꿰매야 산길을 가도 떨어뜨리지 않아요."

준기는 방문을 가린 돗자리를 걷고 밖을 내다보았다.

"아직도 해가 디려면 한참 남아시우."
"우리 한 잠 더 자요."

두 사람이 마주 보며 나란히 누웠다. 준기가 순희의 팔을 벴다. 순희가 준기를 보듬으며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

"동생, 자요?"
"……."

그새 준기는 코를 골았다. 순희는 준기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는 바로 눕힌 뒤 그 옆에 누워 눈을 감았다.

400여 구의 시신 가운데 아들을 찾는 어느 아버지(함흥 덕산 광산, 1950. 11. 14.).
 400여 구의 시신 가운데 아들을 찾는 어느 아버지(함흥 덕산 광산, 1950.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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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3차에 걸쳐 일일이 검색하여 수집한 것들과 답사 길에 직접 촬영하거나 수집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태그:#<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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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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