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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9월 16일 오후 삼성에버랜드 기숙사 앞에서 삼성노조와 삼성일반노조 조합원이 홍보물을 배포하려 하자 직원과 용역이 막아서고 있다.
 지난 2011년 9월 16일 오후 삼성에버랜드 기숙사 앞에서 삼성노조와 삼성일반노조 조합원이 홍보물을 배포하려 하자 직원과 용역이 막아서고 있다.
ⓒ 삼성일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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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9월 16일 오후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에버랜드 기숙사 앞. 두 명의 여성을 포함한 7명의 사람들이 용역 50여 명, 회사직원 10여 명 등의 상대편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들은 삼성노조(삼성에버랜드 노동자들이 설립한 노조이나 회사 측에서 미리 '에버랜드노조'를 설립하면서 사용하는 명칭) 간부들과 삼성일반노조,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유족 등이었다. 이들은 두 달 전인 그 해 7월 13일 설립된 삼성노조의 홍보물을 배포하려고 현장에 왔다.

홍보하러 온 여성 중 한 명은 남편이 삼성반도체에 근무하다 지난 2005년 백혈병으로 사망하자 혼자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정애정씨. 그는 남편이 사망할 당시 발병 이유를 모르다 지난 2007년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고 황유미씨가 사망하면서 삼성 백혈병 문제가 공론화되자 억울한 심정에 활동가로 나섰다.

정애정씨는 이날 대치 과정에서 여성들에게 심한 욕설을 내뱉고 밀착하는 삼성에버랜드 관리자 행동의 증거를 잡기 위해 그의 어깨를 10초 가량 잡았다는 이유로 2013년 7월 4일 2심인 수원지법으로부터 30만 원 벌금에 2년 선고유예를 받았다.

앞서 정씨에게 이같은 행위를 한 삼성에버랜드 직원 이아무개씨는 1심에서 벌금 50만 원을 선고 받고 유죄를 인정받은 바 있다.

정애정씨와 당시 참석한 삼성일반노조에 따르면, 당시 정씨는 거의 성추행에 가까운 행위를 당해 그날 이씨를 바로 고소했다. 하지만 이씨는 고소 당한지 한 달 후 정씨를 상해 등 혐의로 맞고소했다.

1심 법원은 정씨에게는 무죄, 삼성에버랜드 직원에게는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검찰은 공소장을 상해에서 폭행으로 바꿔 항소, 지난 4일 항소심에서 법원은 정씨의 죄를 인정하고 벌금 30만 원 선고유예를 판결했다.

정씨는 "정말 억울하고 어이없는 판결"이라며 "이런 판결이 관례가 되면 앞으로 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하는 여성들이 어떻게 대처하란 말이냐"고 항변했다. 정애정씨와 인터뷰는 6일 전화로 진행됐다.

"당시 수치심과 모욕감, 참을 수 없었다"

지난 2011년 9월 16일 오후 삼성에버랜드 기숙사 앞에서 모욕을 당한 삼성반도체 유족 정애정씨가 자신에게 모욕을 준 삼성 측 직원들을 촬영하고 있다.
 지난 2011년 9월 16일 오후 삼성에버랜드 기숙사 앞에서 모욕을 당한 삼성반도체 유족 정애정씨가 자신에게 모욕을 준 삼성 측 직원들을 촬영하고 있다.
ⓒ 삼성일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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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1년 9월 16일 용인 삼성에버랜드 기숙사에는 왜 갔었나.
"그날 삼성노동조합으로부터 '에버랜드 노동자들에게 노조를 선전하는 홍보물 배포를 하는데 와서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고 삼성일반노조와 함께 현장에 갔다. 미리 알았는지 기숙사 앞에는 수십 명의 건장한 삼성 용역경비들과 인사과, 총무과 직원들이 서로 손을 잡고 울타리를 만들어 막고 있었다.

모두 합해야 7명인 삼성노조원들과 삼성일반노조원들은 이처럼 용역이 막아서는 통에 기숙사에 접근을 못했다. 나는 카메라로 삼성 측이 삼성노조원들의 홍보물을 강제로 뺏는 모습들을 찍고 있었다. 그때 삼성측 남자직원들이 내가 사진을 못 찍게 다가왔다."

- 몇 명이나 왔고 어떻게 행동했나.
"5명 가량되었다. 문제는 삼성 측 남자직원들이 내 몸에 바짝 몸을 밀착시켜서 막아서는 바람에 얼굴에 심하게 침이 튀었다. 심지어는 그들이 막는다고 펼쳐든 손이 내 가슴에 닿으며 수치심을 주었다. 나는 '좀 떨어져라, 여기는 여성 경비나 직원은 없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없다. 그러니까 나가면 되지 않냐'고 하면서 물러서는 나에게 더욱 몸을 밀착시켰다.

그러는 와중에 한 남자가(나중에 이아무개씨로 밝혀짐) 여성인 삼성일반노조 사무국장에게 '이 씨X년아. 저리가' 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 있던 나는 '왜 여자에게 쌍욕을 하냐?'고 묻자 '이 병신같은 X아. 너도 저리가. 이 씨X년아'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욕을 퍼부었다.

더 문제는 그가 아예 내 몸에 몸을 바짝 들이밀었는데 거의 반뼘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조금만 내밀면 입이 닿을 정도였는데, 고의로 느껴질 정도로 내 얼굴에 침을 튀겨가며 모욕감을 줬다."

- 사실이라면 심각할 정도의 일인데, 어떻게 대처했나.
"진짜 입이 닿을 것 같아 카메라로 내 입을 막았다. 그러자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 엄지손가락을 자신의 입 속으로 넣고 깨무는 듯한 행동을 하며 침을 묻혔다. 정말이지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고소장에 그대로 썼고, 그가 벌금형을 받았다.

내 몸이 그 남자 몸에 닿자 수치감이 들어 '좀 떨어지라'고 외쳤지만 그는 오히려 기세등등해서 더욱 몸을 붙이고 침을 튀겨가며 계속 입에 담기 조차 힘든 욕을 이어갔다. 이어 경비들이 그를 빼돌리려 나를 막아섰다. 이름도 부서도 모르는 그 남자가 도망갈 우려가 있어 막아선 4~5명의 경비들 어깨 너머로 손을 뻗어 겨우 그의 어깨쪽 옷자락을 잡을수 있었다. 하지만 덩치큰 남자들이 내 손목 급소를 누르고 손목을 꺾어 옷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게 욕한 사람 데리고 오라'고 하자 한 남자직원이 손을 들어 올려 때리는 모습을 하면서 '에이 씨~' 하고 겁을 주기도 했다. 곧바로 신고해 그 자리에 출동한 경찰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그를 고소했다. 파출소에서 고소장을 쓰는데 그가 오히려 내가 자기 옷을 잡고 폭행을 했고 목에 상처도 있다고 허위진술을 했다."

- 사진 찍은 것이 있나, 증거가 없으면 덮으려고 할 수도 있는데···.
"당시 우리는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수적인 면에서 열세였지만, 그들이 유리한 것은 찍을 수 있었을 것이다. 키 큰 남자들이 막아서고 있는 상황에서 건장한 남자 4~5명 너머에 있는 그의 옷을 잡은 거라 간신히 옷 끝자락을 잡은 정도였는데, 내가 폭행을 해서 아프고 상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니 기가 막혔다. 오히려 옷을 놓게 하려고 내 손목을 꺾으며 힘으로 제압한 것은 삼성 측이다(정애정씨의 키는 157cm다).

그날 포곡파출소 경찰은 어떻게 해서든 합의를 시키려고 애를 썼는데, 우리 두 여성이 '진심으로 사과하면 용서하겠다'고 하자. 그는 경찰 앞에서 자기 입으로 잘못을 열거하며 '욕한 것 사실이다. 몸을 바짝 붙인 것 사실이다'고 실토했다.

또한 경찰이 '정애정씨가 폭행했다는 말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에이 여자가 옷 조금 잡은 걸로 뭘요…'라고 했다. 우리가 다시 '증거가 확실하니 고소하겠다'고 하자 그렇게 기세등등했던 이 남자가 ' 욕한 것 잘못했습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한 달 뒤 나를 상해 혐의로 고소했다."

- 법원은 그날 당했던 사실을 범법으로 인정했나.
"내가 고소한 후 그는 법원에서 죄가 인정돼 벌금 50만 원을 선고 받았다. 그는 당시 모욕 폭행죄로 고소당하자 한 달 뒤 '정애정씨가 옷깃을 잡아 2주의 상해를 입었다'며 고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옷을 잡은 것으로는 상해를 입혔다고 볼 수 없다'며 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검사는 상해에서 폭행으로 공소장을 변경해 항소했고 결국 2심 판사는 옷깃을 10초간 잡은 것을 폭행으로 간주, 유죄로 인정한 것이다."

- 지금 어떤 심정인가.
"수치심과 모욕감을 참을 수 없다. 대한민국이 왜 이렇나. 욕을 하고 위협하는 남자의 증거를 잡기 위해 옷을 10초간 잡았다고 폭행유죄라니. 그러면 여성들이 폭행 위기에 처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나는 이 문제를 국민들이 심판할 것이라고 본다."

한편 삼성일반노조는 6일 이 판결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2심 판결을 성토했다. 삼성일반노조는 "판사는 '옷깃을 굳이 잡지 않아도 사진촬영 등으로 신분을 알수 있었음에도 옷깃을 잡아 폭행을 행사했다'는 궁색한 이유로 유죄를 인정하고 선고유예 판결을 했다"며 "현행범에게 침을 뱉은 것도 아니고 때린 것도 아니고, 단지 도망가지 못하도록 10초간 옷깃을 잡은 것 뿐인데 어처구니 없는 판결"이라고 밝혔다.

이어 "가해자는 모욕 폭행죄로 벌금 50만 원이 나왔는데, 옷깃을 10초간 잡았다고 폭행으로 유죄를 인정한 재판부의 판결은 의도적"이라며 "더구나 삼성에버랜드 측은 이런 자를 2012년 초 보란 듯이 과장으로 승진시키는 부도덕한 인사를 했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2심 재판부의 판결은, 의도적으로 삼성에버랜드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억지 기획재판이 아닐 수 없다"며 "납득할 수 없는 궤변으로 꿰맞추기식 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태그:#삼성일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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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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