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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
▲ 책겉그림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
ⓒ 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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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물의 행성이지 않나? 지구 표면의 70퍼센트가 바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구(地球)라고 할 게 아니라 '수구'(水球)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다만 사람들이 바다 위에 사는 게 아니라 땅 위에 살고 있으니 지구라고 표기하는 것일 테다.

생각할수록 이기적이다. 인간중심주의, 유럽중심주의, 뭐 그런 승자정복의 문명들 말이다. 비단 그런 문명 같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내가 발을 내딛고 사는 목포만 해도 그렇다. 목포와 무안을 통합하고, 또 신안까지 하나로 연결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신안에는 섬들이 참 많다. 다들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이다. 바다가 감싸고 있는 섬들이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대지가 사람들을 낳고 품듯이 바다가 섬 사람들을 낳고 품는 것처럼 말이다. 어디 그런 섬들이 신안에 있는 섬들 뿐이겠는가? 국내의 2689개 섬들도 마찬가지일터다.

강제윤 시인의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는 그렇게 섬을 품고, 섬사람들의 애환을 품고, 심지어 섬에 사는 가축들을 보듬어 안은 '여행기록시'다. 길가의 풀과 나무와 들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바람이 전하는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시 이야기다. 빠르게 질주하는 속도의 노예이기보다 목적지 없이 해찰을 부리며 걷는 '여행화보집'이기도 하다.

우리는 걷기 위해 자주 섬으로 가야 한다.
이 나라에서 자동차의 위협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길은 섬길이다.
카페리가 다니지 않는 먼 섬일수록 섬길은 걷기의 천국이다.
외지인들이 섬으로 차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섬에게도, 섬을 찾은 사람들 자신에게도...

중략

섬에서는 자동차에 대한 기억을 철저하게 잊어야 한다.
한 번도 땅에서 발 떼어본 적 없는 것처럼 걸어라.
호흡조차도 발로 하라.
어느 순간 섬은, 대지는 온 몸을 열고 그대를 받아들일 것이다.

이 책에 담긴 '한 번도 땅에서 발 떼어본 적 없는 것처럼'이란 시다.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섬이야말로 생각의 지평을 열 수 있는 노다지와 같다는 셈이다. 섬에 있는 오솔길, 흙길들이 실은 그렇게 '사유의 확장' 기능을 되찾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온 몸을 열고 받아들이는 섬의 품으로 우리도 그렇게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가파도, 바다와 정면으로 마주선 섬 집들의 방어막은 돌담이다.
돌담은 언뜻 성곽처럼 단단해 보이지만 다가가면 허술하다.
구멍투성이 허점 많은 전선.

어떻게 저 혼자 서 있기도 버거운 돌담이
강력한 바람 군단을 막아내며 견뎌온 것일까?
바람의 군사들이 신호음을 내며 구멍을 빠져나간다.

중략

바람과 싸우지 않고 섬을 지켜온 돌담의 전략
돌담은 바람의 방어막이 아니라 바람의 통로다.
섬사람들은 바람을 거스르고 살 수 없어
바람의 샛길을 내주고 바람과 함께 살아간다.

'바람의 통로'라는 시다. 가파도 돌담 사이를 두 꼬맹이 녀석이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모습이 이 시의 화보로 들어 있다. 한 녀석은 운동화를 신었고, 다른 한 녀석은 노란 장화를 신고 그 사이를 지나간다. 비바람이 얼마나 거칠고 심한지 우산이 휘어 있다.

녀석들의 모습을 보노라니, 어릴 적 비바람을 맞서며 우산을 앞으로 기울였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어쩌다 바람이 역풍으로 다가오면 우산이 휙 날리고 만다. 힘이 없을 경우엔 저 만치 우산이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시인은 그 비바람을 '강력한 바람 군단'으로 표기한다. 섬과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과 싸우지 않고 보낼 전략을 키워왔다고 한다. 돌담의 전략이 바로 그것이란다. 바람에게 샛길을 내주고 바람과 함께 사는 섬과 섬 사람들의 지혜 말이다.

어쩌면 지금 한창 무르익고 있는 남북실무자회담 속에 그런 전략이 숨어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서로가 티격태격 자기 주장만 드세게 몰아부친다면 그저 튕겨나갈 뿐이다. 숭숭 뚫린 저 구멍처럼 서로에게 빠져나갈 구멍도 내 주면서 대화에 임해야 하지 않을까?

그대는 어떤가? 그대 삶에 뭔가 막히고 뒤틀리고 꼬인 게 없는가?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시인의 섬마을 여행기를 따라 생각의 지평을 더 활짝 넓혔으면 한다. 아름다운 화보집 같은 예쁜 사진들이 이 책 속에 촘촘히 박혀 있으니, 그 속에서 그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환히 열리는 그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지 않을까?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 - 강제윤 시인의 풍경과 마음

강제윤 지음, 호미(2013)


#강제윤 시인의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섬의 지혜#강력한 바람 군단#남북실무자회담#바람의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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