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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다음 날인 26일 연세대학교 연구실에서 문정인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만났다. 그의 책상 위에는 회의록 전문이 펼쳐져 있었다. 사진은 지난 2월 인터뷰에서 문 교수 모습.
 국가정보원이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다음 날인 26일 연세대학교 연구실에서 문정인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만났다. 그의 책상 위에는 회의록 전문이 펼쳐져 있었다. 사진은 지난 2월 인터뷰에서 문 교수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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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다음 날인 26일 연세대학교 연구실에서 만난 문정인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책상 위에는 회의록 전문이 펼쳐져 있었다. 전날까진 국정원이 작성한 발췌록만 공개돼 있었는데, 이날 아침 언론을 통해 전문이 공개되자마자 샅샅이 검토한 듯 보였다.

'대북 포용정책의 전도사'로 불리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대북 정책과 대외 정책에 많은 조언을 했고,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대통령의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다녀온 문 교수다. 그런 발언은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혹여라도 새누리당의 주장처럼 'NLL포기 발언', '굴종 발언'이 없었는지 공개된 회의록을 들여다보는 게 당연하다.

문 교수는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었다"며 "기본적으로는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건가'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새누리당이 이걸 들고 나와서 얻는 게 뭔가', '국가 전체가 얻을 건 무엇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간신문을 펼쳐 보이며 "왜곡도 이런 왜곡이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거의 똑같이 <노 "NLL 바꿔야…김 위원장님하고 인식 같아>라는 제목을 단 머릿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평화수역은 NLL 남쪽으로 설정한다'는 제안에 동의한 것처럼 쓴 건 분명한 왜곡보도라는 것이다.

문 교수는 "2007년 11월, 김장수 당시 국방부장관이 평양에서 열린 남북국방장관회담에 가기 전에 대통령에게 브리핑을 하고 'NLL 중심으로 등거리 또는 등면적을 (서로) 양보하자'는 안을 들고 갔다. 하지만 김일철 당시 북 인민무력부장이 'NLL 이남과 자기들이 설정한 해상 경계선 사이에만 평화협력지대를 논의할 수 있다'고 해서 판이 깨졌다"며 "만약 <조선일보>가 쓴 대로,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 말을 수용해 'NLL 이남을 평화수역으로 만들자'는 데에 동의했다면, 김장수 장관이 회담장에 가서 그런 자세를 보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10·4 남북공동선언이나 그 후속조치 합의사항을 보면 북쪽 주장은 거의 없고 우리 주장이 반영되어 있다"면서 "모든 정상회담에는 과정이 있고, 결과가 있지만 결과가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상기 사퇴하고, 공개 결정 당사자 처벌해야"

"NLL 포기 발언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보고'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하면서 "내 말이 조금이라도 과장됐다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던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에 대해 문 교수는 "그럼 사퇴해야지"라고 했다.

'BDA 제재는 미국의 실책', '작계 5029를 막았다' 등 노 대통령 발언을 '반미 발언'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문 교수는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큰 틀을 만들려고 하는데 대화 상대방에게 그 정도 공감대는 표시를 해줘야 대화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과거 군사정권의 이후락, 장세동, 박철언이 김일성을 만났을 때 어땠을까?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실제로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은 회고록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에게 보낸 친서에 "주석님께서는 광복 후 오늘날까지 40년에 걸쳐 조국과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모든 충정을 바쳐 이 땅의 평화 정착을 위해 애쓰신 데 대해, 이념과 체제를 떠나 한민족의 동지적 차원에서 경의를 표해 마지 않는다"고 썼고, 김 주석의 친서를 받고는 "그 하나하나가 자신의 생각과 거의 동일하다"고 말했다고 기록했다.

문 교수는 "(회의록) 전문을 보게 되면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수준이 어땠는지 보여준다. 서로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제기하는 문제들이 하나하나 이전엔 없던 아이디어들이고 남북 정상이 그 문제들을 심사숙고하는 그런 장면들이 아닌가"라면서 "그런 대통령을 비굴한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얘기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교수의 비판은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전격적으로 감행한 국정원에 대해선 가차 없었다. 도무지 민주국가의 정보기관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찍이 국가정보연구회를 만들어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가능케 한 '정보기관 전문가'로, 노무현 정부 시절엔 국정원장 후보로도 유력하게 거론된 바 있다.

문 교수는 "국정원장은 수집하고 분석한 비밀을 있는 그대로 대통령에 보고하는 게 역할이다.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지 하는 정책적 판단, 정치적인 판단은 대통령이 내리는 것"이라며 "그런데 국정원이 '회담내용의 진위 여부로 국론분열이 심화되고 국가안보에 심각한 악영향이 초래됨을 깊이 우려했다'면서 회의록을 공개한 건 국정원 스스로가 정치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대선개입을 한데 이어 이런 식으로 '정쟁을 막겠다'며 자의적으로 비밀을 재분류해 공개하고 더욱 정쟁을 심화시키는 국정원이 있을 필요가 있느냐"며 "이런 판단을 한 당사자에 대해선 법에 의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문정인 교수와의 일문일답 전문이다.

문 교수는 "(회의록이) 기본적으로는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건가'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새누리당이 이걸 들고 나와서 얻는 게 뭔가', '국가 전체가 얻을 건 무엇인가'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월 인터뷰 때 모습.
 문 교수는 "(회의록이) 기본적으로는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건가'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새누리당이 이걸 들고 나와서 얻는 게 뭔가', '국가 전체가 얻을 건 무엇인가'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월 인터뷰 때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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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이 공개됐다. 내용을 살펴보니 어떤가.
"자세히 읽어봤는데.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저(低)자세는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의 주장에)  왜곡된 억지주장 아닌가 하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기본적으로는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건가? 아무리 정치공세라고 해도 '이런 일이 국익에, 국민통합에 도움을 줄까?' 등 회의감이 많이 든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가기강과 도덕률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하는 자괴감도 든다. 국가의 비밀을 생산하고 지켜야 하는 국정원장이 '국정원의 명예" 운운하며 국가기밀을 까발리지 않나 이미 세상을 뜨신 망자에게 없는 죄를 만들어내어 부관참시하는 것, 이게 정치인의 도리인가. 이미 지난 대선 때 이건 가지고 득을 보았으면 그 정도에서 끝내야지 이렇게 까지 나올 필요가 있는가. 아무리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국정조사 물타기라고 하지만 이번 NLL 문제는 잘 못되어도 한창 잘 못되었다. 시정잡배도 이런 식으로 세상 살지는 않는다."

- 문 교수는 2004년 동북아시대위원장을 맡는 등 '대북 포용정책의 전도사'로 불려왔고, 대북 정책 구상에도 많이 참여했다. 노 대통령의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에 동행하기도 했다. 회의록을 보면서 '이건 내가 몰랐던 내용인데'라고 생각된 부분은 없었는지.
"드러난 내용 중에는 없었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과 수시로 토론했던 것들이다. 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오래 전부터 준비했고, 집권하자마자 '서해 5도 중심으로 군사적 충돌이 자꾸 일어나는데, 여기서 더는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희생되어선 안 되겠다'며 (NLL 문제에) 가장 먼저 신경 썼다. 또 NLL을 고수하는 것에서 한 단계 나아가 평화협력지대를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겠냐고 해서 당시 이종석 차장을 중심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연구를 많이 했다."

- 그렇게 미리 준비한 내용을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관철시켰다?.
"바로 그렇다. 10·4 남북공동선언이나 그 후속조치 합의사항을 보면 북쪽 주장은 거의 없고 우리 주장이 반영되어 있다. 이번에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모든 정상회담에는 과정이 있고, 결과가 있지만 결과가 제일 중요하다. 그건 공식합의문을, 또 후속으로 열린 총리급 회담에서 합의한 48개 합의사항을 봐야 한다. 협상할 때 (상대방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으름장을 놓으며 협박할 수도 있기에 (협상자들은) 과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결과다. 결과 면에서 2007년 정상회담을 비판 할 수 있을까? 예산이 많이 든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그것도 구체적으로 점검해 보면 다른 이야기다. 성공한 정상회담을 6년이나 지난 지금 와서 그것도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문제 삼아 물고 늘어지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전문 입수한 <조선> <중앙>, 왜곡도 이런 왜곡이 없다"

- 오늘 <조선일보> 1면 머릿기사가 <노 "괴물 NLL 바꿔야… 위원장님과 인식 같아">라고 나왔고, 그림 설명은 NLL 남쪽으로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기로 합의한 것처럼 나왔다.
"왜곡도 이런 왜곡이 있을 수가 없다. <조선일보> 1면에 실은 그림은 김정일 위원장이 제시한 안이다. '남쪽이 주장하는 NLL과 북쪽이 말하는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 사이에 있는 지역을 평화협력지대로 만들자'는 김정일 위원장의 제안에 노 대통령이 '동의한다'는 말도 안 썼다. '나도 아주 관심이 많은…'이라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2007년 10월 3일 오후에 열린 2차 회담에서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인 NLL, 거기에 서해 평화지대 만들어서 공동어로도 하자'고 했다. 최종적으로 10·4선언에는 김정일 위원장보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내용이 더 많이 들어갔다. 한강 하구 공동개발, 해주경제특구, 공동어로 등은 노 대통령이 먼저 말했고, 김 위원장은 그때그때 북한의 기본 입장을 전했다. (노 대통령은) 이걸 뒤집고 NLL을 사수한 가운데 서해평화협력지대 안을 내놨다.

이는 그해 11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국방장관회담 당시 김장수 당시 국방부장관의 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김 장관은 'NLL 중심으로 등거리 또는 등면적을 (서로) 양보하자'는 안을 들고 갔지만 김일철 당시 북 인민무력부장이 'NLL 이남과 자기들이 설정한 해상 경계선 사이에만 평화협력지대를 논의할 수 있다'고 주장해서 판이 깨졌다. 이게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 <조선>이 쓴 대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 말을 그대로 수용해  'NLL 이남을 평화수역으로 만들자'는 데에 동의했다면, 김장수 장관이 회담장에 가서 그런 자세를 보일 수 없다. 그래서 김 전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은  NLL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발언했던 것 아닌가. <조선> 보도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 노무현 대통령은 NLL을 수 차례 언급하면서 '내가 북한 당신네들 논리에 심정적으로는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는 NLL을 건드리고선 평화수역을 조성하긴 어렵다'고 얘기한다.
"이 점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녹취록을 자세히 보면 NLL 문제가 남북문제에 있어서 제일 큰 문제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위원장하고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NLL은 바꿔야 합니다' 라고 발언했다. 핵심은 그 다음 문장에 있다. '그래서 우리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안보·군사 지도 위에 평화·경제지도를 크게 덮어서 그려 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노 대통령이 평소 주장해온 서해평화협력지대에 대한 구체적 제안을 한다. NLL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중심으로 평화협력지대로 만들자는 것인데, '이렇게까지 사실을 왜곡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글을 못 읽는가?"

- 노무현 대통령이 '포괄적 해결방안'을 언급한 것도 'NLL을 다시 그리자'가 아니라,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선언해놓고 상세한 문제는 앞으로 협의해 나가자'는 뜻으로 보인다.
"그게 핵심이다.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별도 합의 전까지는 NLL을 유지한다'고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NLL에 손을 댄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기능·성격을 바꾸겠다고 했고, 우리는 자연스레 'NLL을 중심으로 등거리냐 등면적이냐'를 고민했던 것이다. 평화수역으로 정하고, 경찰이 순찰하고 그러면 군사적 충돌이 나올 수 있겠나. 노무현 대통령은 이 정상회담에서 NLL 자체는 그대로 둔 상태에서, 이렇게 하자고 여러 번 강조했다."

"BDA제재로 9·19 합의 좌초하고 핵실험 강행... 반미 아니라 팩트"

- 회의록에 보면 정상회담에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남북 선수단을 기차로 보내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상당히 의견 접근이 됐는데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실무 쪽에서 어렵다고 했다. 원래 우리가 단일 선수단 구성하고, 공동응원단을 꾸리자고 제안했는데 북이 수락하지 않아서 10·4공동선언에는 '남북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처음으로 이용하여 참가하기로 하였다'고 됐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여러 차례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남쪽은 선수도 많고 기량이 좋지 않으냐, 단일 선수단을 꾸리면 우리 젊은이들이 불리하다,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일정 인원을 서로 할당하자는 제안에는 '왜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일을 하려고 하냐'고 하더라."

- '한반도 서쪽에는 공동어로구역을, 동쪽에는 DMZ 평화생태공원을 조성하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은 박근혜 대통령의 구상과도 비슷해 보인다.
"DMZ를 어떻게 평화지대로 활용하냐는 문제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후 계속 이야기가 나오던 것이다. 노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NLL을 고려했기에 NLL 동쪽 연평도까지 공동어로수역으로 하면 인천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남북 운신의 폭이 넓은 연평도 서쪽으로 공동어로수역을 만들고, 좁은 곳에는 해주경제특구를 만들자, 또 한강 하구 공동개발하고 DMZ에 평화생태공원하면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평화생태공원은 10·4공동선언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 노무현 대통령이 'BDA제재는 미국의 실책'이라고 한 부분을 두고도 논란이다.
"그건 (노 대통령 말이) 당연한 얘기다. 이 문제는 2005년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을 채택한 다음날, 미국 재무성이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를 '북 불법자금을 돈세탁하는 곳'이라며 블랙리스트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북한 입장에선 '아니 9·19 공동성명에선 적대적 대북 정책 포기하고 우리를 인정한다고 했는데, 하루 만에 이렇게 나오면 적대적 행위랑 다를 게 뭐냐'였던 것이다. 그래서 (BDA에) 있는 자금을 빼내려고 했는데, 미국 은행보안법에 따르면 미 재무부가 블랙리스트로 분류한 은행은 다른 미국은행과 거래할 수 없다. 단 중앙연방은행은 가능하다. 결국 BDA에서 뉴욕연방준비은행으로, 거기서 러시아연방준비은행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극동은행까지 간 다음에 북으로 (돈이) 넘어갔다.

이 문제로 한국과 미국이 엄청 갈등을 겪었다. 노 대통령은 (미국의 결정에)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끝내 미국이 나중에 한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의 압력에 못 이겨 (묶여있던) 돈을 풀어줬다. 그러니까 미국의 실책이다. 국무부하고 재무성이 서로 정책을 조율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후 북한이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BDA 문제 해결에) 가속이 붙었다. 제가 볼 때 (BDA가 미국의 실책이라는 노 대통령의 표현은) 하나의 객관적 사실을 말한 것이다."

- 또 노 대통령 발언을 문제삼는 부분이, 미국이 '작계 5029'를 수립하려는 걸 막았다고 김정일 위원장에게 설명한 부분이다. 
"2004년 11월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주한미군 사령부에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날 경우 대량살상무기 소재를 통제·확보하라'고 압력을 넣으면서 이미 만들어 놓은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화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6자회담이 돌아가는데 (북에 급변사태가 일어났다고) 군사력을 투입해 대량살상무기를 통제한다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고,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면이 있다'는 게 기본입장이라 작전계획화 중지지침을 내렸다. 북한이 당장 망하거나 급변사태가 일어날 것도 아닌데, 이걸 전제로 군사적 개입을 계획하는 일을 노무현 대통령 성격에 수용하겠는가?

보수성향 사람에게 북한은 적이고, 미국은 동맹이니 북한이란 적 앞에서 동맹에 대한 비판적 이야기를 꺼내는 걸 '신의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보수 쪽 생각이다. 노 대통령 생각은 '동맹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는 도구여도, 여기에서 더 나아가 남북협력을 활성화해서 평화 통일을 이루고 영구평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락, 장세동, 박철언은 김일성 만나 예우 안했을까?"

- 일부 언론은 노 대통령이 '제국주의 역사가 사실, 세계 인민들에게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패권적 야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한 발언을 갖고도 '반미 발언'이라고 문제 삼고 있다.
"그게 사실 아닌가. 없는 대량살상무기를 없앤다고 일으킨 이라크전쟁도 그런 면에서 잘못됐다고 비판받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큰 틀을 만들려고 하는데 대화 상대방에게 그 정도 공감대는 표시를 해줘야 대화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과거 군사정권의 이후락, 장세동, 박철언이 김일성을 만났을 때 어땠을까? 마찬가지다. 상대에 대해 예우를 갖춰주고 역지사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그렇게 협상이 잘 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게 동양적인 가치이기도 하고."

- 서상기 정보위원장이 회의록을 열람하고 나서 "처음부터 끝까지 비굴과 굴종의 단어가 난무했다"며 "대화 내용 중에 (노 전 대통령이) '보고'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 회의록에 없다. 대신, 회담 도중 김정일 위원장 지시로 김계관 북한 외무성 1부상이 6자회담 결과를 보고했고,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이 "그렇게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부분이 있다. 서상기 위원장이 착각한 듯하다.
"그렇게 된 걸로 보인다. 그런데 서상기 의원은 '내 말이 조금이라도 과장됐다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다. 그럼 사퇴해야지. 처음엔 'NLL 포기 발언'이 있다고 하다가 뒤에 '굴욕'을 더 강조하고 나설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했다. 대선 때 이 문제 제기하고 나선 정문헌 의원도 정치생명 걸었으니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에서 재미를 봤으면 그걸로 끝내야지.

어찌됐든 회의록은 공개가 됐고, 전문을 보게 되면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수준이 어땠는지 보여준다. 서로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제기하는 문제들이 하나하나 이전엔 없던 아이디어들이고 남북 정상이 그 문제들을 심사숙고하는 그런 장면들이 아닌가. 그런 대통령을 비굴한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가. "

"비밀을 정쟁에 이용한 당사자 법으로 처벌해야"

- 학생들에게 국가정보론을 가르치고 계신다. 회의록을 공개한 국정원의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전통적으로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말한 것은 1급 비밀로 분류되고 영구보존한다. 첫째, 국정원이 왜 그 내용을 2급 비밀로 분류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정상회담 당시 배석했던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분명히 1급 비밀로 분류했다'고 했다. 김 원장 말이 맞다면 1급이 2급으로 바뀐 것이다. 국정원장이 비밀을 재분류할 수는 있다. 그런데 어떤 절차를 통해 2급 비밀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했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게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는 회의록 원본의 사본이라면 대통령기록물법에 준하게 다뤄야 하는데, 그걸 갑자기, 그것도 3시간 만에 일반문서로 전환했다는데 이게 이해가 안 된다.

둘째는, 국정원의 존재 이유가 뭔가. 국정원은 다른 나라의 비밀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우리의 비밀은 새어나가는 걸 막고 지키는 게 국정원의 생명과도 같은 것 아닌가. 그런데 이번엔 우리의 비밀을 까발렸다. 공개 하루 전까지 2급 비밀이었고, 내용 공개는 그 전에 하던 것처럼 열람만으로도 충분한 것 아니었는가. 그걸 그렇게 만천하에 공개한 것은 국정원이 비밀정보기관으로서의 존재이유 자체를 망각한 것이다. 이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셋째, 국정원장은 수집하고 분석한 비밀을 있는 그대로 대통령에 보고하는 게 역할이다.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지 하는 정책적 판단, 정치적인 판단은 대통령이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은 회의록을 공개하면서 '회담내용의 진위 여부로 국론분열이 심화되고 국가안보에 심각한 악영향이 초래됨을 깊이 우려했다'고 했다. 국정원 스스로가 정치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선개입을 한데 이어 이런 식으로 '정쟁을 막겠다'며 자의적으로 비밀을 재분류해 공개하고 더욱 정쟁을 심화시키는 국정원이 있을 필요가 있는가. 이런 판단을 한 당사자에 대해선 법에 의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대선 개입에 이어서 국정원이 정변 비슷한 일을 한 거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이 선거법을 위반한 데 이어서 이번 회의록 공개 행위에 대해서도 국정원법 등 법률 위반 여부에 대한 검토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본다."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에 치명타, 파우스트의 거래"

- 이번 회의록 공개로 북한이 남한을 신뢰할 수 있을까란 문제도 제기된다.
"남북이 대화하기는 상당히 힘들어졌다. 회의록에 보면 북한 내부적으로도 상당히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언급들이 나온다. '북미관계가 좋아지면 군부가 있을 자리가 없게 되고 노 대통령이 군부의 안보중심 사고 방식을 언급하자 김 위원장이 군부를 '완고한 2급 보수'라고 지칭하는 부분이 나온다. 북한이 아무리 김정일 유일체제였다고 해도 이런 표현을 한 게 알려지면 북한 최고지도부에게도 상당히 민감한 문제다. 또 김 위원장이 중국의 동북3성을 언급하면서 '동북4성 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한 부분도 나오는데 이 부분은 향후 북·중 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모든 외교에는 상대방이 있다. 그래서 정상 간 회담내용은 상대방을 생각해서 공개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조그마한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대한민국의 외교를 망치고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에 상당한 치명타를 가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의 거래'와도 같은 것이다.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 때문에 중장기적이고 대승적인 국가이익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다."

- 청와대는 그동안 '박근혜정부는 남북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않는다'고 누누이 이야기해왔지만 결국 회의록 공개를 국내 정치에 크게 이용한 꼴이 됐다. 
"청와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 회의록 공개를 막았어야 하는데 막지 않았다. 국정원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직속기관이니 국정원이 잘못했다면 대통령이 잘못한 거다. 단순히 사과하고 끝날 게 아니라 새누리당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과 회의록을 공개한 국정원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언론이 왜곡보도한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 회의록에 분명히 드러나 있는 사실을 왜곡·허위보도한데 대해 노무현재단 등에서 언론중재를 요청하든지 필요한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해서 남북관계를 국내정쟁 꺼리로 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국정원도 더 이상 이런 일뿐 아니라 대선개입 못하도록 개혁해야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시민사회가 더 깨어서 지켜보고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태그:#문정인, #국정원, #회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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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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