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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10일 국회 본회의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10일 국회 본회의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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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되 불구속 기소한다. - 55일을 수사해온 검찰의 결론이다.

국가정보원의 정치·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은 11일 관심을 모아온 원세훈(62) 전 국정원장에 대해 공직선거법(85조 1항)과 국정원직원법(9조) 위반 혐의를 모두 적용해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 또 김용판(55)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해서도 공직선거법 위반과 형법상 직권남용, 경찰공무원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이날 오후 4시 비공식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방침을 밝혔다. 그는 "수사 결과 밝혀진 범죄 혐의 내용과 촉박한 공소시효 만료를 감안해 불구속 기소하기로 결론을 내린 것"이라며 "결정이 늦어진 이유는 선거법 성립 여부에 대한 증거 판단 및 법리가 어려운 사건이어서 보강조사가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지연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수사 막판 원 전 원장의 처리를 놓고 약 2주간 계속된 지지부진한 혼란이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검찰 수사는 마지막 절차인 공식적인 결과 발표만 남게 됐다. 이 차장은 "나머지 전직 국정원 직원들의 기밀 누설 사건, 여직원 감금 사건 등에 대해서는 수사 결과 발표 시에 일괄해 설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내상

이번 결론은 표면적으로 보면 원 전 원장의 신병 처리를 놓고 이견을 보여온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검찰 측이 '정치적 절충'을 한 모양새다. 당초 수사팀을 비롯한 검찰은 원 전 원장을 국정원직원법뿐 아니라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황 장관이 승낙하지 않아 지리한 갈등 상태가 계속돼왔다. 결국 정치적으로 민감한 선거법 부분을 황 장관이, 국민 법감정으로 상징적인 구속 부분을 검찰이 각각 '양보'한 결론이 내려졌다. 김 전 청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검찰의 내상이 크다. 당초 검찰은 '철저히 수사 결과 증거에 따라' 처리한다는 원칙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그래서 구속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으면서도, 결국 굴절됐다. ▲ 수사 결과물이 아닌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결론으로 보여진다는 점 ▲ 민감한 개별 사건에 대해 장관의 서면이 아닌 비공식 수사지휘라는 선례를 만든 점 ▲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내부 매뉴얼에 어긋난 점 등 앞으로 두고두고 검찰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이번 수사가 채동욱 검찰총장 취임 이후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은 더욱 크다.

정권 임기 초반 법무장관과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양상으로 번지는 것이 검찰로서는 부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한 석간 신문에서 수사팀장인 윤석열 부장검사가 황 장관에게 정면으로 치받는 듯한 발언이 보도되자, 검찰은 오후 2시 공식적으로 이 보도를 전면 부인했다. 그리고 오후 4시경 급하게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의 신병 처리 방침을 비공식 발표했다. 이 또한 정치적으로 비친다.

당장 민주당의 첫 논평은 "타협의 정치는 여의도에서 할 일"이라는 것이었다. 민주당은 "두 명(원세훈, 김용판)에 대한 불구속 결정이 검찰 독자적 판단이 아니라 사실상 법무부장관의 수사 지휘권에 따른 타협의 산물이라면, 법과 원칙의 수사를 공언한 채동욱 검찰총장이 정권 눈치 보던 과거의 정치 검찰과 무엇이 다른지 심히 의심 가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공식 발표에 쏠린 눈

임박한 공소시효(19일)를 무기로 일종의 시간끌기 작전을 펼치는 듯했던 황 장관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면 2005년 강정구 교수 사태 때와 같이 누군가는, 또는 여럿이 옷을 벗어야 하는 상황까지 갈 상황이었다.

그러나 불구속이라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것은 현 정권으로는 상당한 부담이다. "국정원이 만든 정권", "경찰이 만든 정권"이라는 반대파의 주장이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르면 금주 중 공식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고 했다. 핵심 인물 2명에 대한 법리적 결론은 이미 내려졌고, 이제 국민의 눈과 귀는 그 과정에 쏠리고 있다. 검찰이 얼마나 열심히, 철저히 수사를 했는지. 그래서 국정원과 경찰의 어떤 비밀스런 행태를 밝혀냈는지. 왜 선거법 적용과 구속을 고집했고, 최종 결론인 불구속이 적합한지. 이게 최선이었는지. 검찰은 이미 국민을 설득할 수 있도록 소상히 밝히겠다고 말한 바 있다.


태그:#원세훈, #김용판, #국정원,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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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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