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3년 6월 6일(이하 현지시각) : 영국 일간지 <가디언>, NSA(미 국가안보국)가 7년간 비밀리에 일반인 수백만 명의 통화기록 수집했다고 보도.

2013년 6월 7일 :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 1급 기밀문서 인용해 NSA가 '프리즘'이라는 프로그램 통해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9개 인터넷 회사 서버에서 일반인들의 인터넷 사용정보 무차별적으로 수집했다는 의혹 제기.

2013년 6월 8일 : <가디언>, NSA 첩보 데이터 분석도구인 '국경 없는 정보원' 관련 기밀문서 입수해 NSA가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전화·인터넷망 정보를 수집했는지 알 수 있는 '미국 첩보감시 세계지도' 공개.

2013년 6월 9일, 전 CIA(미 중앙정보국) 요원이자, NSA(미 국가안보국) 외부계약업체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우든(29)이 <가디언> 카메라 앞에 섰다. 그리고 말했다. 자신이 바로 언론에 국가기밀을 제보한 당사자라고.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정체를 숨길 이유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인터뷰 장소는 홍콩의 한 호텔. <가디언>은 그가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조직인 NSA의 자료를 언론에 넘겼다"면서 "대니얼 엘즈버그, 브래들리 매닝과 함께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내부 고발자(Whistle Blower)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쟁의 추악한 민낯 폭로한 엘즈버그·매닝

 대니얼 엘즈버그.
대니얼 엘즈버그. ⓒ http://www.ellsberg.net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인 1971년 6월, <뉴욕타임즈>는 미 국방부의 베트남전 1급 기밀 보고서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를 연재 보도했다. 이 문서는 미국이 베트남전 참전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통킹만 사건'이 사실은 조작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64년, 미국은 북베트남 어뢰정 3척이 '통킹만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미 구축함을 선제공격했다고 발표했고, 이를 계기로 베트남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한다. 

'펜타곤 페이퍼'를 언론에 제공한 사람은 하버드대 출신의 미 국방부 산하연구소 연구원 대니얼 엘즈버그(82). 이 보고서 작성팀의 일원이었던 엘즈버그는 추악한 전쟁의 민낯을 폭로하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7000쪽 분량의 기밀문서를 복사했다.

엘즈버그는 간첩·절도죄 등 12개 중범죄 혐의로 기소됐지만 연방대법원은 "헌법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것은 정부의 비밀을 파헤쳐 국민에게 알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정부기관의 비리나 비행을 폭로한 행위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며 1973년 최종무죄를 선고했다. 베트남전 지지자였던 엘즈버그는 이후 반전운동에 투신했다.

 브래들리 매닝.
브래들리 매닝. ⓒ CBS

2010년 4월, 한 편의 동영상이 세계를 뒤흔든다. 동영상의 제목은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 2007년 7월 바그다드에서 제작된 이 동영상에서 아파치 헬기를 탄 미군들은 비무장한 민간인들을 향해 총을 난사한다. 어린이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 과정에서 로이터 기자 2명도 목숨을 잃었다.

한 달 후인 5월, 브래들리 매닝(25) 일병이 체포된다. 이라크 전쟁 당시 정보 분석 업무를 담당했던 매닝은 72만 여건의 군사기밀과 외교문서를 미 비밀정보망 '시프르넷'에서 빼내 '위키리크스'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가운데는 미군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보고서와 국무부 외교전문 25만 여건도 포함되어있다. 미 정부 당국은 매닝을 간첩죄 등 22개 혐의로 기소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3년 6월 3일, 뚜렷한 이유 없이 연기를 거듭하던 매닝 일병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스노우든 리크스'가 시작되기 사흘 전이다. 지난 2월 열린 사전 심리에서 매닝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기소된 내용 가운데 일부 혐의에 대해 인정했다. 그는 법정에서 낭독한 35쪽 분량의 진술서를 통해 "우리는 전쟁의 목적과 임무를 망각한 채, 명령에 따라 인간 목표물을 체포하고 죽이는 데 몰두했다"면서 이러한 행태를 폭로해 "공개적인 토론"을 이끌어내려 했다고 밝혔다.

스노우든, 치밀한 사전 준비-스스로 신원 공개

미 정보당국의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인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스노우든 역시 2003년 이라크전에 참전하기 위해 특수 훈련을 받았다. 그는 "사람들을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 군에 입대했지만, "우리를 훈련시킨 사람들은 누군가를 돕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랍인들을 죽이라고 부추기는 것처럼 보였다"고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훈련과정에서 다리 부상을 당해 제대한 후, CSI와 NSA에서 일한다.

또 한 명의 '세기의 내부고발자'로 이름을 올리게 될 스노우든의 행보는 이전의 내부고발자들과 다른 측면이 있다. 먼저, 그는 스스로 나서서 자신의 존재를 밝혔다. 엘즈버그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후 자진 출두했다. 매닝은 자신의 실수로 신원이 발각됐다. 그는 2010년 4월 동영상이 공개된 직후, 친구에게 외교문서 수십 만 건을 복사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스노우든이 FBI(미 연방수사국)가 자신을 찾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내부고발자라는 것을 밝힌 것은 이전에 정부의 비밀을 공개했던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다"고 보도했다.

2001년 미 정부가 도청프로그램에 수 억 달러를 낭비했다는 내용의 자료를 언론에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던 전 NSA 관료 토마스 드레이크는 "이것은 대단한 시민불복종 행동"이라고 스노우든을 평가했다. 대니얼 엘즈버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펜타곤 페이퍼를 포함해서, 미국인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폭로는 없었다"면서 "그는 그의 인생, 그의 자유를 그가 살고 있는 나라의 국익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폭로 과정에서 스노우든은 누구보다 치밀하게 사전 준비를 했다. 지난 5월 20일, 그가 공개하고자 하는 문서를 모두 입수한 스노우든은 직장에 병가를 내고 홍콩으로 날아갔다. 가족에게도, 하와이에서 함께 살고 있던 여자친구에게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홍콩을 택한 이유에 대해 "이곳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전통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고급 호텔을 빌린 그가 3주 동안 호텔방을 나간 것은 단 3번. 그마저도 잠시였다. 도청을 우려해 베개로 문틈을 막았고, 인터넷에 접속할 때는 빨간색 천을 뒤집어쓰고 혹시 있을지 모를 몰래카메라 촬영에 대비했다.

그는 언론사에 제공할 문서 역시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선별적으로 골랐다. 스노우든은 "나는 신중하게 모든 문서를 평가했고, 그 가운데 공공의 이익에 합법적으로 부합할 만한 것만 공개했다"면서 "공개하지 않은 문서 중에는 큰 파장을 미칠 만한 것도 있지만,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투명성'이 내 목적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보 대상 언론으로 영국 일간지 <가디언>,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를 동시에 선택한 것도 독특하다.

전직 영국 국내정보국(M15) 요원이자, 내부고발자인 애니 마숀은 스노우든이 브래들리 매닝의 비극적인 사례에서 교훈을 얻은 첫 번째 내부고발자라고 평가했다.

"그가 NSA가 미국인들, 그리고 전세계 사람들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를 폭로하는 방식은 매우 정교했다. 그가 미국을 떠나서, 홍콩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가디언>과 함께 작업을 한 것 역시 매우 잘 한 일이다. 나는 이것을 '내부고발자 2.0'이라고 부르겠다."

스노우든이 아직까지 홍콩에 머무르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은 홍콩과 1996년 맺은 범죄인 인도조약협정에 근거해 홍콩 당국에 스노우든의 본국 송환을 요청할 수 있지만, 정치범의 경우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스노우든이 '망명 희망국'으로 지목했던 아이슬란드는 "망명신청을 하려면 당사자가 아이슬란드 영토에 머물고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임스 클래퍼 미 DNI(국가정보국) 국장은 국가 기밀 유출자에 대한 수사를 법무부에 의뢰한 상황이다. 스노우든이 기소된다면, 1917년에 만들어진 '간첩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엘즈버그, 매닝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NSA#민간인 사찰#스노우든#에드워드 스노우든#내부고발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