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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가 익기 시작한다. 완전히 익진 않았지만, 요 정도가 새콤달콤한 맛을 동시에 맛보기엔 딱 좋다.
▲ 앵두 앵두가 익기 시작한다. 완전히 익진 않았지만, 요 정도가 새콤달콤한 맛을 동시에 맛보기엔 딱 좋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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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더위가 찾아온 듯 덥다. 뜨거운 햇살 때문인지 뜰에 있는 앵두나무에 열린 열매들은 어제와 또 다른 붉은빛을 띤다. 조금 더 익으면 새콤달콤하겠지만, 새콤한 맛이 더 좋으니 약간 설익은 것들을 따서 입에 털어 넣는다. 새콤한 맛이 좋다.

꽃을 본 적도 없는데 뽕나무에도 오디가 검게 익었다. 하나 둘 따서 손에 올려놓으니 손에 금방 보랏빛 물이 든다. 오디는 새콤한 맛 없이 달다. 온전히 익은 것들만 땄기 때문일 터.

앵두와 오디를 따서 몸에 모시니 몸이 옛 추억을 기억해낸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앵두나무가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주머니들이 붉게 익은 앵두를 좌판에 벌려놓고 팔곤 했다. 그 붉은빛의 유혹, 붉은빛은 식감을 자극한다고 한다. 정육점마다 붉은빛이 도는 조명장치들을 해 놓은 까닭이다. 앵두를 살 돈은 없는 대신 앵두나무가 있는 집을 생각해 냈다.

앵두나무의 가지는 담장 밖으로 나와 있었지만, 지나다니는 행인들이 익은 앵두를 보는 족족 따먹어서인지 빨간 앵두는 없었다. 장독대 근처의 뒤뜰로 가니 잘 익은 앵두가 다닥다닥 가지마다 붙어있었다. 그러나 우리 집 앵두가 아니었기에 군침만 흘리며 바라보았다. 그 나이에 그것 몇 알 따먹는 것조차도 큰 죄로 생각할 정도로 우리 집안은 엄격했다. 그냥, 발걸음을 돌리고 나오는데 할머니 한 분이 헛기침을 하시며 나를 불러세웠다. 너무 놀라 발이 얼어붙은 줄 알았다.

"앵두 따 먹으러 왔냐?"
"안 따 먹었는데요…."
"그려, 내가 지켜봤는데 정말 안 따먹었더라."
"……"
"자, 여기 양재기 하나 줄 테니 따가지고 가서 먹어라."

따스했던 추억의 단편이다. 그 추억의 끝에 '꽃이 진자리에 남은 선물'을 떠올렸다. 판화가 이철수의 말이기도 하지만, 많은 시인이 '꽃이 진자리의 열매'에 대해 노래를 했다. 그리하여, 꽃이 진다고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다. 꽃도 때가 되면 지는 것, 져야 열매가 맺히고, 떨어지는 꽃이 있어야 남은 꽃들이 실한 열매를 맺으리라는 것, 그런 것들이다.

오디는 완전히 익은 것이 제맛이다. 달콤하지만, 스치기만 해도 보랏빛 물이 든다.
▲ 오디 오디는 완전히 익은 것이 제맛이다. 달콤하지만, 스치기만 해도 보랏빛 물이 든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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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도 진 꽃들이 남긴 열매들을 먹고 살아간다. 떨어진 그 자리라고 다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니다. 아직 떨어질 때가 아닌데 비바람에 꽃이 떨어지면, 그 자리엔 상처만 남는다. 그 상처도 넉넉히 이겨내는 것이 나무요, 꽃이지만, 떨어짐을 강요당한 꽃에는 아픔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러하지 않은가? 그들 덕분에 열매를 취하면서도, 그들을 꺾어버리고, 아프다는 소리조차도 못하게 하는 그런 현실이 아닌가? 그들이 맺은 열매를 누가 먹어버렸는가? 자기들끼리 먹기 위해 여기저기 숨겨둔 이들은 누구인가?

단 한 번 열매도 맺어본 일이 없는 것들이, 단 한 번 제대로 꽃핀 적도 없는 것들이 열매란 열매는 죄다 독점하는 현실이 아니런가? 그러나 나는 꽃이 피고 지는 일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이런 반성을 하게 된다.

오만가지 세상사를 잠시 접어두고 앵두와 오디의 맛에 집중하기로 했다. 앵두는 달콤하면서 새콤한데 과육과 비교하면 씨앗이 너무 크다. 오디는 달콤한 맛이 깊은데 너무 물러서 조금만 스치면 어디건 보라색 물이 든다. 오디를 먹고 혀를 거울에 비추어 보니 보랏빛이다. 그저 몇 번 바라보았을 뿐인데, 내가 따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어쩌면, 이것을 이들도 고마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수입 버찌에 입맛이 들린 이들은 앵두를 따 먹지도 않으며, 오디 역시도 번거롭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국한된 이야기겠지만, 몇 해 동안 앵두나 오디가 열려도 누구 하나 따먹질 않는다. 앵두나 오디에 대한 추억이 없는 이들일 것이라 짐작된다. 앵두와 오디가 익어가는 계절에 잘 익은 앵두나 오디를 보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맛나게 따먹는 이들을 만나고 싶다.


태그:#앵두,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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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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