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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선수 정대세. 사진은 2009년 당시 북한 축구대표팀의 정대세가 한국과의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 경기에서 조원희의 수비를 피해 드리블하고 있는 모습.
 프로축구선수 정대세. 사진은 2009년 당시 북한 축구대표팀의 정대세가 한국과의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 경기에서 조원희의 수비를 피해 드리블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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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영 일각에서 프로축구선수 정대세(수원 삼성)를 퇴출 대상으로 조준하고 있다. K리그 올스타 투표 선두에 있던 정씨를 끌어내리는 데에 그치지 않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하는 계획까지 진행중이다.

트위터에서 "(북한)공작원 기질이 강하다"면서 정씨를 국보법 위반으로 고발할 것을 주장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4일 기사를 통해 미디어워치가 소속된 인터넷미디어협회가 금주 내로 정씨를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움직임은 '일간베스트'(일베)를 중심으로 이미 가시화됐다. 일베에선 5월 29일부터 6월 9일까지 K리그 올스타전 출전 선수를 뽑는 누리꾼 투표에서 정씨가 뽑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넘쳐났다. 이들이 어떤 움직임을 취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투표 초기에 공격수 부문에서 1위를 달리던 정씨는 이들의 바람대로 4일 현재 3위로 밀려났다.

이들이 정씨를 향해 '국보법 고발'과 '올스타투표 저지'에 나선 까닭은 지난 2010년 남아프리카 월드컵 북한의 국가대표 선수로 뛸 당시 한 해외언론과의 인터뷰 발언 때문이다. 문제의 발언은 정씨가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해 "우선은, 존경하고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북한 주민) 모두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지금은 여러 말이 있지만, 어찌됐든 저는 그(김정일)를 믿고 따르고 싶다"고 한 내용이다.

일베 회원들과 변 대표가 정씨를 국가보안법 위반이라 주장하고 있는 것은 정씨가 한국 국적을 가진 국민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북한의 김 위원장을 찬양한 데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북한 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정씨의 모습을 부각시키며 '열혈 종북주의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부친 따라 한국 국적 취득, 모친은 '조선적'... 재일동포 '경계인의 삶'

정씨가 한국 국적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씨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3세이기도 하다. 정씨가 한국 국적을 갖게 된 것은 한국 국적을 가진 부친을 따라서다. 한국 국적법이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기에 국적법상으로도 문제가 없다. 

그런데 좀 특이한 것은 정씨의 모친의 국적이다. '조선적(朝鮮籍)'인데, 일제강점기 하에서 일본은 조선인에게 일본 국적을 부여했다. 그러나 일본은 2차대전 패망 뒤인 1947년 외국인등록령으로 재일동포들의 일본국적을 박탈하고 재일동포들의 국적을 '조선'으로 표시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뤄지면서 조선적을 가진 이들은 한국 국적으로 바꾸는 게 가능해졌다. 그러나 조선적을 그대로 유지한 이들도 많았다. 북한 국적을 선택하고 싶지만 일본의 수교가 이뤄지지 않아 그렇게 하지 못한 이들도 있고, 분단된 조국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에서 조선적을 유지한 이들도 많다.

정씨의 자서전 등에 따르면 모친은 정씨를 조선학교에 보낼 것을 고집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씨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조총련계 조선학교를 나왔다. 조선적을 고집한 모친 밑에서 조선학교만 다녔지만 한국 국적을 가진, 그야 말로 '경계인'의 삶이었던 것.

정씨가 지난 2007년 북한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친의 조선적과 정씨의 조선학교 이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축구연맹은 국가대표팀 선수 자격으로 '해당 국가의 여권 소유'를 본다. 한국 국적이지만 북한 여권을 가지면 북한 국가대표 자격으로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여권만 가지면 되기 때문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외국에서 보면 정대세는 남한의 국적을 갖고 북한의 여권을 가진 '이중국적자'이지만, 남북은 공식적으로 서로룰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정씨가 남한 국적이든, 북한 여권을 가졌든 문제 삼지 않는다.

북한 깃발 단 북한 대표에게 김정일 욕하란 얘긴가

그런 정씨가 한국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는데, 과거 발언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주장들이 이어지면서 '종북 축구선수'로 낙인찍히고 국보법 위반 고발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

국가보안법 자체가 존폐의 논란이 있지만 특히 7조 찬양고무죄는 실제로 국가안보 위협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들까지 구속하는 데 오·남용된 사례가 많은 조항이다. 실제 고발이 이뤄지면, 정씨 기소 여부는 사법당국이 국보법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에 출전한 북한 국가대표 선수가 인터뷰에서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아야 한다는 게 정씨를 종북으로 모는 이들의 논리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지 않으려면 북한 깃발을 가슴에 단 상태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욕하기라도 했어야 한다는 얘기인가.

남한과 북한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자이니치일 뿐"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정대세 선수에게 법적 처벌을 운운하며 남한 또는 북한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의 근거가 바로 국가보안법이란 게 드러난다. 퇴출해야 할 것은 정대세 선수인가, 아니면 국가보안법인가.


태그:#정대세, #국가보안법, #조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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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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