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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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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공공부문부터 '반듯한 시간제 공무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어 민간부문에서도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발표가 이어져 '시간제 공무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런데 정작 공직사회 내부 상황은 다르다. 중앙정부는 총액인건비제를 통해 공무원 정원을 통제하고 있어 시간제 공무원보다 더 열악한 각종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있다. 더구나 민간위탁 확대로 인해 공공서비스의 질까지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나빠지면 공공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높아진다. 때문에 공공부문의 재정을 늘리고 인력을 확충해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안정되고 고용률도 높아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반대였다. 경제 위기 때마다 공공부문의 인력과 재정을 감축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로인해 1997년 대비 현재 일반행정공무원이 4만 6870명 감축됐고, 15년 동안 줄어든 일반행정 공무원 대신 각종 비정규직이 늘었다.

선진국은 우리와 근무여건이 다르다

정부가 비교하는 네덜란드나 독일 같은 나라에 시간제 공무원이 많은 이유는 분명하다. 전일제 공무원과 시간제 공무원의 처우가 다르지 않다. 인사나 복지 근무여건 등에 차별이 크지 않다. 전일제 공무원 또한 법정근로시간 이외 초과근무나 연장근로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시간제 공무원에 대한 반발이 적다. 또 생애주기에 맞춰 시간제와 전일제를 순환할 수 있다.

또 선진국들의 시간제 일자리는 탄탄한 사회적 대타협과 튼튼한 사회보장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는 노동조합 가입률이 낮고 사회보장이 빈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식의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한다면, 그 피해는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넘어가게 될 것이다.

국가공무원법에 의해 이미 근무하고 있는 시간제 계약직 공무원의 처우만 보더라도 시간제 공무원의 처우를 짐작 할 수 있다. 시간제 계약직 공무원은 고용이 불안정하고 보수나 인사 등 모든 부분에서 현재 무기계약직보다 못하다. 이처럼 공직사회 존재하고 있는 단기근로자, 기간제근무자, 무기계약직, 시간제 계약직 등 다양한 직종 간의 차별을 해결하지 않고 단순하게 선진국 사례를 모방해 만든 '정규직 시간제 공무원'은 결코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없다.

시간제가 양질의 일자리인지, 노동자들과 합의가 먼저 

먼저,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가 양질의 일자리인가를 검증해야 한다. 시간제 일자리가 양질의 일자리라고 확인된다 하더라도 노동자들과 토론과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법과 제도를 먼저 정비하지 않고 언론을 통해 일방통행식으로 진행한 시간제 공무원의 확대는 공직사회에 또 하나의 비정규직을 양산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은 정부가 나서서 공공부문의 노동자 법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을 준수할 수 있게 하면 가능하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늘어나는 일자리를 나눠서 청년실업을 해소하고 공직사회의 노동조건을 완화시킬 수 있다. 또 민간부문의 법정근로 시간 준수 여부도 관리 감독을 강화해 장시간 근로나 야간근로를 줄여 나가야만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할 수 있고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해고나 실직이 사회적 살인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대한 대책 없이 시간제 일자리만 확대하는 것은 노동자에게만 고통을 분담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파견법과 비정규직법을 악용하여 과도한 이윤 추구만 계속하는 기업들에게 정당한 징수를 하지 않고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 또한 노동자들에게만 고통을 분담하라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최선의 길은 비정규직 정규직화이고, 사회보장을 강화하는 첫걸음은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다.

업무과다로 자살하는 공무원들... 노동조건 완화도 필수다

현재 공직사회의 화두는 공무원들의 자살에 있다. 올해 들어 한 달에 1명씩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업무과다를 이유로 자살하고 있다. 또 교육청공무원, 법원공무원 등 공직사회 전반에서 과중한 업무 때문에 공무원들이 목숨을 끊고 있다. 아울러 각종 질병으로 휴직하는 공무원도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공무원들의 노동 강도가 심각하게 높아지고 있고, 병들어 가고 있는데도 정부는 전일제 공무원들의 노동조건 완화를 위한 대책은 외면하고 있다. 대신 대통령의 공약을 지키려고 질낮은 일자리만 늘리겠다며 새로운 정책만 쏟아내고 있다. 이는 공직사회를 파탄 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진국형 '정규직 시간제 공무원'이 먼저가 아니다. OECD국가에 비해 형편없이 적은 공무원 수를 늘리는 게 우선이다. 정규직 공무원 수를 OECD국가의 평균 정도 선까지 충원하고 나서 시간제 공무원을 말해도 늦지 않다.

공직사회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 없이, 공무원노동자들과 논의조차 하지 않은 채 이런 정책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시간제 공무원 확대추진 방안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올바른 방안은 늘어나는 업무량에 따라 적극적인 인원 충원이 가능하도록 총액인건비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또 공공부문이 양질의 일자리를 나누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고쳐나가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윤선문 기자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정책실장입니다.



#시간제 일자리#박근혜 정부#전국공무원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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