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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잃은 '군 의문사' 유족들이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 의문사 유족이 외치는 대 국회, 국민 호소대회'에서 아들의 영정을 들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흐느끼고 있다.
▲ "군대 간 아들 왜 죽었나요" 자식을 잃은 '군 의문사' 유족들이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 의문사 유족이 외치는 대 국회, 국민 호소대회'에서 아들의 영정을 들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흐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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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들이 지금 국군수도 병원 영안실에 있습니다. (사망한 지) 벌써 10년째고 올해도 네 번을 갔다 왔는데, 아직도 거기만 가면 숨통이 막힙니다. 그땐 조사만 하면 다 밝혀질 줄 알았는데, 그래서 아들이 다니던 대학교에서도 서명을 받았는데, 아직도 이렇게 냉동고에 보관 중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들을 10년 간 냉동고에 둔 채 살아야 하는 이 심정을 아십니까?"(고 강태기 상병의 모친 유기선씨)

10년이 지나도록 어머니의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육군 모 사단 운전병이던 고 강태기 상병은 지난 2003년 1월 군복무 중 사망했다. 헌병대는 약 2개월간의 조사를 마친 후 '자살'이라고 통보했지만 유족은 납득할 수 없었다.

사건 당시 강 상병의 여동생은 "죽기 전날에도 오빠는 전화로 가족들 안부를 물었고 훈련이 끝나 기분이 좋다고 했다"며 "부모님께 효도한다던 오빠가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호소문을 썼다. 유족은 '아들이 죽은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는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며 군 병원 냉동고에 10년이 넘게 시신을 보관 중이다.

24일 오전 10시, 군대에서 의문사로 아들을 잃은 유가족들이 국회의원회관에 모여 국회와 국민에게 호소하는 대회를 열었다. '저는 군대에 아들을 보낸 죄인입니다'란 주제로 진행된 이날 대회에는 '국군사상자 유가족연대', '병영인권연대'를 비롯해 관련 단체 회원과 유가족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120석인 회의실 자리가 모자라 따로 의자를 펴고 앉아야 할 정도였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군 의문사 유족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유족들은 각자 의문사한 아들의 영정 사진을 가지고 와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번 호소대회는 국회 국방위원회 유승민(새누리당) 위원장, 김광진·김재윤·진성준(민주당) 등 여야 의원이 함께 열었다.

행사는 고 김훈 중위의 부친 김척 예비역 중장, 고 이승원 일병의 모친 고정순씨 등 대표적인 피해 유족들의 증언과 호소가 이어졌다. 예정에 없던 백군기 민주당 의원과 김성찬 새누리당 의원 등 다수 국회의원들도 참여했다. 87년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씨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자식 잃은 아픔과 한을 지닌 부모 심정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그래도 오늘 야당 뿐 아니라 여당 국방 위원장도 같이 계시니까 상당히 기대해도 되겠다"고 말했다.

"죽은 아들을 병원에서 만나... 누가 죽으러 군대를 갑니까?"

지난 98년 사망한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중장이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 의문사 유족이 외치는 대 국회, 국민 호소대회'에서 "엄지손가락으로 권총 방아쇠를 당겨 자살했다는 군수사결과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며 항변하고 있다.
 지난 98년 사망한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중장이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 의문사 유족이 외치는 대 국회, 국민 호소대회'에서 "엄지손가락으로 권총 방아쇠를 당겨 자살했다는 군수사결과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며 항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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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이나 지금이나,15년간 국방부는 일체의 증거도 없이 자살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제 손으로 총을 쏴 자살했다고 하면서도 탄약 흔적이 손에 안 남을 수도 있다고 뻔뻔스레 주장합니다. 국회국방위 등 타 국가기관이 타살이라 인정했는데도 국방부는 왜 순직 처리하지 않을까요? 그건 당시 사건을 재수사하지 않고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국가가 나를 개죽음으로 몰아간다면 누가 충성을 다하겠습니까?"

98년 2월 군의문사로 아들을 잃은 김척 예비역 중장은 "국방부는 (당시 사건이) 명백한 조작임을 알면서도 부정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아들도 그랬고 저 또한 군을 위해 평생을 충성한, 누구보다도 군을 사랑하는 사람인데 우리를 깎아내리려 한다"면서 "이제는 국정조사를 통해 당시 잘못을 낱낱이 밝히고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 끝나지 않은 '아버지의 전쟁'...김훈 중위 의문사 15년).

같은 해 총상을 입고 사망한 고 이승원 일병의 사례도 이어졌다. 이 일병의 모친 고정순 씨는 "아들이 일병으로 진급한 그날 아들이 사망했다고 연락이 왔다"며 눈물을 흘렸다. 고씨의 안타까운 사연은 사회자의 만류에도 불구, 예정된 시간을 넘어 10여 분간 계속됐다.

"죽은 아들을 병원에서 만났습니다. 아들 옷이 홀딱 벗겨져 있고 알몸으로 누워있는데 너무 억울하고 기가 막혀서 눈물도 안 나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임들에게 구타당하고 성추행 당하고 잠도 안 재웠답니다. 그런데도 국방부에선 자살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죽으러 군대에 갑니까. 또 군대에서 죽어서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희 가정은 이미 무너졌습니다. 부디 죽은 아들들을 욕되게 하지 마십시오."

고 이승원 일병의 어머니 고정순씨가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 의문사 유족이 외치는 대 국회, 국민 호소대회'에서 죽은 아들의 억울함을 호소한 뒤 단상을 내려서자 이 대회를 주관한 김광진 민주당 의원이 다가가 부축하고 있다.
 고 이승원 일병의 어머니 고정순씨가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 의문사 유족이 외치는 대 국회, 국민 호소대회'에서 죽은 아들의 억울함을 호소한 뒤 단상을 내려서자 이 대회를 주관한 김광진 민주당 의원이 다가가 부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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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에 선 피해 부모들의 발언이 이어지는 내내 자리에서는 "맞습니다", "힘내세요" 등 다른 유가족들의 공감과 응원이 이어졌다. 각자 품에 안은 영정사진을 쓰다듬는가 하면 아예 엉엉 울며 소리내어 통곡하는 부모도 있었다. 고 허원근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씨는 "(사체의 사인을 규명하는) 검시관 제도만 제대로 되어 있어도 많은 의문사를 해결할 뿐 아니라 앞으로 군대에 갈 자녀들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며 관련 제도의 정비를 국회의원들에게 촉구했다.

군사분계선에 있는 판문점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 사건은 당시 부대에 근무한 부대원들이 북한군 초소로 가서 술을 마시는 등의 문제행위를 했음이 밝혀지면서 크게 알려졌다. 유족과 국방부 간 긴 싸움 끝에 지난해 7월, 국방부가 원인불명 사망자도 순직 처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지만(관련기사: 군,'의문사' 김훈 중위 순직 인정키로) 자살인지 타살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장례 거부한 군인 시신 23구 보관 중... 15년 보관된 것도 있어

김광진 민주당 의원은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그는 "2013년 현재도 사흘에 한 명씩 군인이 죽어가고 있다"며 "징병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어떠한 죽음에도 국가가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진성준 의원 또한 "국회가 함께 여러분과 울 수 있다면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이라며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실컷 울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유족 대표로 대국민 호소문을 읽은 고 채희상 일병의 모친 박은의(61)씨 또한 아들이 11년째 군국병원 냉동고에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의문사한 아이들을 무조건 자살이라고 할 게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냐"며 "사망사고가 없을 수는 없지만, 유족들이 마음 아프지 않게 적어도 수사와 예우는 똑바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를 진행한 고상만 보좌관(김광진 의원실)은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다가오는 7월에서 '군 사망사고 명예회복' 문제와 관련한 행사를 계획 중"이라며 "국회의원 300여명 전부에게 공동주최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 보좌관에 따르면 2013년 5월 현재 전국의 군 병원에는 유가족이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장례를 거부한 군인 시신 23구가 보관 중이며, 최장 보관된 기간은 15년에 이른다.


태그:#군 의문사, #김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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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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