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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준 작가
김봉준 작가 ⓒ 유혜준

"(군포시민들의) 소망글을 보니 다 시인이었다.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 누구나 시인이 된다. 시심을 다 자기 안에 갖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고 할 때 누구나 다 시인이 된다. 시민들 마음에서 시심을 발견한 게 반가웠다. 시심으로 그린 그림이다."

19일부터 군포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김봉준 작가와 함께 하는 나의 소망 마을의 꿈' <마울아리랑 展>이 열리고 있다. 김 작가는 우리나라 민중예술의 대표적인 작가로 현재 강원도 문막에서 '오랜미래신화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에는 강원민족예술인상을 수상했다.

19일, 전시장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김 작가는 이번 <마울아리랑 展>과 관련, 박찬응 군포문화재단 예술진흥본부장이 있기에 가능한 전시였다고 강조했다. 박 본부장이 이번 전시회를 기획, 유치했기 때문이다.

"마을의 가치, 미학적 가치 드러내고 싶었다"

- 이번 전시회는 어떤 내용인가?
"이번 전시회는 아주 특별하다. 조각과 회화, 판화를 '마울아리랑'이라는 주제로 모아서 전시회를 하게 된 것이 상당한 의미가 있다."

"산골에서 조용히 사는, 살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활동을 해왔다. 상업화와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예전처럼 민중예술 시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시를 하자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거의 잊혀진 작가처럼 되어 있었다. 나 혼자 산골에 있으면서 조그만 미술관(오랜미래신화미술관)을 차려놓고 직거래를 했다. 농산물 직거래 하듯이. 예술가로 자립적인 생존을 해야 하니까. 자기 목소리를 내려면 그게 기본이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살아왔다."

김 작가는 지난 93년, 강원도 문막으로 내려가 살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화박물관 '오랜미래신화미술관'을 열었다. '신화'는 그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 그는 세계신화순례를 다녀온 뒤 <신화순례>를 책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그는 '거의 잊혀진 작가'가 되었다고 표현했지만, 몇 년 전부터 전시회를 열기 시작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조각과 회화, 판화를 한꺼번에 한자리에 모아서 전시를 하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회는 김 작가의 판화와 회화, 조각 작품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될 것이다.  

- <마울아리랑> 의미는 무엇인가?
"마울아리랑은 내 안에 있는 정체성과 마을공동체를 의미한다. 요즘 시민이나 이국, 국가, 세계성을 얘기하는데 중간에 빠진 게 있다 마을공동체, 동네다. 이게 근대적인 성숙이 안 된 상태에서 식민지와 전쟁을 통해서 무너졌다. 그 마을이 이제 와서 관심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마을의 가치, 미학적 가치를 드러내고 싶었다."

"마을은 에코 커뮤니티에 가까운 생명공동체"

 김봉준 작가
김봉준 작가 ⓒ 유혜준

김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마을의 개념에 대해서 "소셜 커뮤니티가 아닌 에코 커뮤니티에 가까운 생명공동체"라고 설명했다.

"'마리'를 생명으로 해석하고, '울'을 울타리로 하는 개념으로 '마울'은 합성어로 생명공동체를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마을은 생명공동체의 마을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커뮤니티가 되어야 한다."

- 생명공동체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갈 수 있는지?
"우선 나 자신이 들어갈 수 있다. 몸이 자연이다. 사람들은 몸이 자연이라는 것을 자꾸 잊는다. 인간은 백년도 못 가서 죽는다. '나'라고 하는 개별성이 인간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나무에도 있고, 동물에게도 있고, 물이나 공기에도 있다. 개별성의 유기적 연대에서 마을이라는 게 생성되는 것이다. 가족이 생기고, 이웃이 생기고, 마을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개별성 연대를 자꾸 잊는다.

이 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가치는 개별성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다. 개별성을 놓치고 있다. 개개인들이 아파하고 상처받고 있고 개별성 속에 전체의 아픔이 녹아 있는데 자꾸 국민, 시민을 얘기하면서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는 것이다."

김 작가는 "생태주의는 생물학적이고 통계 수리학적으로만 접근해서 문제고, 전통주의에는 우리 식의 생태적 사고가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 안에만 가둬놓는 프레임이 있다"면서 "국가주의적 프레임과 생태적 프레임을 걷어내고 새로운 개별성의 연대 개념인 생명공동체의 마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붓그림으로 소망이 담긴 사람의 얼굴을 표현했다. 얼굴을 그리면서 어떤 느낌이었는지?
"(군포시민들의) 소망글을 보니 다 시인이었다.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 누구나 시인이 된다. 시심을 다 자기 안에 갖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고 할 때 누구나 다 시인이 된다. 시민들 마음에서 시심을 발견한 게 반가웠다. 시심으로 그린 그림이다. 시적으로 단순화시켜서 그렸다."

김 작가의 붓그림은 따뜻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게 만든다. 가벼운 듯하면서도 묵직한 먹의 농담이 깃든 붓그림은 무한한 친근감을 가지고 다가온다.

"제가 작업한 얼굴들은 실용성, 예술성, 기록성, 기념성을 같이 갖추고 있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게 많다."

"두 달 동안 99명 얼굴 그려"

 김봉준 작가
김봉준 작가 ⓒ 유혜준

김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시서화(詩書畵)라고 표현하면서 한글 시서화(詩書畵)의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붓그림과 관련, 김 작가는 그 전통의 뿌리는 고구려 벽화까지 이어진다고 말한다. 고구려 벽화의 전통이 엣날 민화, 불화, 풍속화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에게 이러한 맥이 계승된 것은 그가 70년대에 봉원사 만봉스님에게서 전수를 받아 가능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 한 사람을 그리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지?
"시간으로 얘기할 수 없다. 폭발적으로 그릴 때는 하룻밤 새에 여섯, 일곱 점도 그렸다."

김 작가는 이번 전시회 때문에 두 달 동안 99명의 얼굴을 그리는 작업을 했다면서 시일이 촉박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 얼굴을 그릴 때 그리기 어려운 사람은 없는지?
"어려운 사람은 없었다. 다만 사진을 받아서 그리는데 '뽀삽'을 많이 한 사진을 주면 그리기 어렵다."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린 것이냐는 질문에 김 작가는 사진을 보고 그릴 때도 있고, 실물을 그릴 때도 있다고 말했다. 99명의 사람을 모두 다 앉혀 놓고 그릴 수 없을 테니, 사진을 보고 작업하는 건 당연하리라.

"사진을 보고 그릴 때도 있고 실물을 보고 그릴 때도 있다. 그 자리에서 다 그리지 않는다. 스케치를 하고 집에 가서 좌정한 뒤 정리한다. 옛날 우리 풍속화와 인물화는 서양의 이젤화와 다르다. (바닥에) 내려놓고 그린다. 이건 자기 심상이 반영된다는 거다. 그냥 피사체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심상으로 다시 끌어오는 거다. 글씨 쓰는 자세와 똑같다. 서화동류(書畵同類)라고 하는데 서와 화가 기본적으로 같은 정신이다. 붓도 같은 붓이다."

김 작가가 얼굴 붓그림을 그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작가는 페이스북을 통해서 '님얼붓그림'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얼굴 소망전'은 지난 2011년에 안양에서도 한 차례 열린 바 있다.

<마울아리랑 展>은 오는 24일까지 군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며, 25일과 26일에는 '서울시민청 활짝라운지'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봉준#마울아리랑#붓그림#오랜미래신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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