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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월드오브탱크' 홈페이지에 한 이용자가 올린 문제 닉네임들.
▲ 한 이용자가 신고한 게임 닉네임 지난 1월 '월드오브탱크' 홈페이지에 한 이용자가 올린 문제 닉네임들.
ⓒ 월드오브탱크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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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역사관을 가진 일부 누리꾼들이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인터넷을 오염시키고 있다. 특히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역사적 사실까지 호도하고 있어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월드 오브 탱크'는 러시아의 게임회사 워게이밍넷이 제작한 PvP(플레이어 대 플레이어) 중심의 팀 기반 멀티플레이어 온라인 탱크 전투 게임이다. 지난 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이 게임 홈페이지에서는 이용자의 닉네임 때문에 한바탕 분란이 벌어졌다.

일부 이용자들이 '광주로 가는 방향', '광주말살', '꼬마전땅크', '폭동진압용땅크', '홍어잡이전땅크' 등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특정지역을 비하하는 닉네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게이머들은 게임 중에도 수시로 채팅창에 '광주 폭도를 진압했다'거나 '내가 계엄군이다'라는 등의 글을 올려 다른 이용자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이용자들이 워게이밍넷에 대책을 세워 줄 것을 요구하자, 회사는 문제를 일으킨 게이머들의 이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닉네임 때문에 이용제한 제재를 받은 일부 게이머들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회사 측을 성토했다.

온라인게임 '월드오브탱크'의 한 이용자는 게임회사측의 아이디 사용 제한조치가 '표현의 자유'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 '광주폭동'도 표현의 자유 온라인게임 '월드오브탱크'의 한 이용자는 게임회사측의 아이디 사용 제한조치가 '표현의 자유'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 월드오브탱크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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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용자는 게시판에 "광주, 전두환, 홍어가 왜 제재 받아야 하느냐"며 "'5·18 광주폭동'이라는 문장도 대법원에서 표현의 자유라고 인정했는데 무조건 자기 보기 싫으면 신고 차단이냐?"는 항의글을 올리기도 했다.

지만원씨 무죄판결 이후 극우세력 '표현의 자유' 앞세워 5·18 폄하 극성

이 이용자가 언급한 대법원 판결은 지난 1월 15일,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사자 명예훼손)으로 기소되었던 극우논객 지만원씨가 무죄판결을 받은 일을 말한다. 지씨는 2008년 1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5·18은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는 1980년 판결에 동의한다", "북한의 특수군이 파견돼 조직적인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됐다"는 등의 글을 올렸다. 대법원은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고 5·18에 대한 법적 평가는 지씨의 주장으로 전복되지 않는다고 무죄 선고의 이유를 밝혔다.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 이른바 일베 홈페이지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 이른바 일베 홈페이지
ⓒ 일간베스트 저장소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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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5.18은 민주화운동이 맞지만 지씨의 비방 행위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아 명예훼손죄가 성립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 판결 이후 주로 극우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하하고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글들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런 현상은 가뜩이나 정규교육 과정에서 근현대사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인식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미 역사적 사실로 정립된 나치의 만행을 두둔하거나 홀로코스트(나치의 유태인 대량학살)를 부인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제시하며 좌우익 극단을 규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홀로코스트' 부정·축소 주장 처벌하는 유럽

실제 독일과 프랑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스위스 등 유럽 16개 국가들은 홀로코스트에 찬성하거나 정당화하는 언행은 물론 이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는 주장도 범죄행위로 보고 처벌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의 게소법(Gayssot Law)이다. 이 법은 2차대전 이후 나치 전범들을 처벌하기 위해 열렸던 뉘른베르크 국제 전범재판이 정의했던 '반인도범죄를 부인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과 그 동맹국이 자행한 잔혹행위와 잔혹행위 혐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공개적 발언, 출판, 방송, 인터넷 유포, 판매자까지 처벌 대상이다.

5차례나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극우 정치인 장 마리 르펜은 1987년 "(나치 강제수용소의) 가스실은 2차대전 역사에서 극히 사소한 부분"이라고 말했다가 120만프랑(약 20만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르펜은 10년 후 독일에서 열린 한 출판기념회에서 '사소한'부분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고 "1000여 페이지의 2차대전에 관한 책에서 가스실은 15줄 정도 된다는 뜻"이라고 망언을 되풀이했다가 투옥과 함께 법원 판결문의 12개 신문 게재비용 20만프랑(약 5만달러)을 부담하라는 명령을 받기도 했다.

2006년 2월 오스트리아 법원도 홀로코스트를 부인한 혐의로 기소된 영국 역사학자 데이비드 어빙에 대해 3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어빙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유태인 수는 과장됐고 사망자 대부분은 독가스가 아닌 질병으로 죽었다고 주장해왔다.

이처럼 유럽 국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나치 주장 동조자들을 처벌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역사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권리의 남용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5·18 왜곡 핵심은 민주화 운동 부정하는 것으로 모아져"

지난 15일 전남대학교에서는 5·18기념재단이 주최한 '역사 왜곡 시도와 대응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왜곡된 기원과 쟁점, 비슷한 사례인 나치의 유대인 대량학살 부인에 대한 외국 대응방식을 비교해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오승용 전남대 5·18 연구교수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 왜곡이 복잡하고 위험하고 난해한 상황이라고 정리했다. 오 교수는 "왜곡된 정보가 지금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극우세력의 헛소리로만 무시해버릴 수 없어 복잡하고 위험한 문제"라며 "이를 해결하는 것도 단기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보수세력이 문민정부 수립 이후 이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보수 역사를 재평가하는 '뉴라이트'운동을 전개해왔으며, 5·18도 이를 통해 재평가되기 시작했다"며 "핵심은 5·18의 민주화 운동 성격을 부정하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홀로코스트 부인-자유로운 표현에서 인도에 반한 범죄, 전쟁범죄까지"라는 주제로 유럽 사례를 소개했다.

이 교수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지만원씨의 언동과 관련, "지씨가 프랑스, 오스트리아에서 '다른 제노사이드(학살)'를 부정하는 경우에는 증오의 고취를 규제하는 선동죄로 규제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매체 발달로 증오적 언동 규제 필요성 커져

이 교수는 "국제적으로 홀로코스트 부인과 증오·차별을 사주하는 '증오적 표현'을 동일한 맥락에서 취급하는 국가가 많다"면서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증오적 언동의 규제 필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 경우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아니라 선동죄 유형으로 취급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밝혔다.

또 이 교수는 정치적 극단주의를 중립적으로 규제하지 못하는 우리 법체제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그는 "독일은 좌·우 극단을 동시에 규제하는 법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방어적 민주주의'라고 한다"며 "우리나라는 좌파 세력을 규제하는 광범위한 법제를 가지고 있으나 우익, 극우를 규제하는 것은 법체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수는 "역사 부인자들이 보수정권의 든든한 벗임을 감안한다면 앞으로도 이를 규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 부인에 대한 처벌이 만들어진다면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현실을 감안할 때 특정한 역사관을 처벌하기보다 공통의 인식지평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일정한 유형의 차별적 언동, 증오적 언동에 대해서는 경중을 가려서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태그:#광주민주화운동, #일베, #월드오브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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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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