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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슬픔 없는 이별이 어디 있으랴!〉
책겉그림〈슬픔 없는 이별이 어디 있으랴!〉 ⓒ 연세장례식장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죠.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집에서 전화가 왔다며 알려준 소식이 그것이었습니다. 부랴부랴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했던 나는 망연자실 했죠. 정말로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죠.

실은 그 전날에도 여느 때처럼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노름하고 집에 돌아왔었죠. 그 밤에도 어김없이 자고 있던 나를 깨우고선 벌을 세웠죠. 심지어 엄마와 싸우고, 엄마를 때리면서 말이죠.

그런 일을 겪는다는 게 정말로 죽기보다 싫었죠. 그래서 그랬던지 다음날 날이 밝았을 때 나는 엄마에게 "차라리 아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고 말했죠. 그러면 그런 일들이 되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했죠. 그런데 그 말을 하고 반나절이 채 못 되어 아버지가 죽었으니, 뭔가 쾅하고 닫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사시는 어머니에게 불만은 왜 또 그리 많은지 툭하면 다투셨고, 심지어는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폭행하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중학교 밖에 안 되었던 저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과 고통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을 생각했었습니다. 그 시절 아버지는 어머니 뿐아니라, 형과 저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모릅니다."(82쪽)

연세장례식장에서 펴낸 <슬픔 없는 이별이 어디 있으랴!>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 고백을 한 박승유씨도 실은 어린 시절의 내 모습과 흡사한 삶을 보냈던 것이죠. 사춘기 시절 집에 있기가 싫을 정도로 아버지로부터 온갖 구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모습은, 나의 옛 모습과 너무나도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도 정작 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망연자실했다고 하죠.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엉엉 소리 내서 울었다고 하는 모습 말이죠. 그 때문이었을까요? 지금도 그 미안함 때문에 아버지가 더 그립다고 하는 것 말이죠.

사실 이 책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보내면서 겪은 이야기들과 장례식장에 종사하는 이들이 겪은 일화를 엮어 놓은 것입니다. 무뚝뚝한 아버지였지만, 손주만큼은 많은 사랑을 보여주었다는 어느 아버지의 모습, 남편 없이 딸 둘을 키우며 고생만 하다가 쓰러진 가여운 어느 어머니의 모습, 고교시절에 사랑하는 할머니를 떠나보내야 했던 어느 손녀딸의 고백, 젊은 아내의 장례를 치러야 했던 젊은 남편의 모습 등 여러 사연들이 이 책에 담겨 있죠.

죽음이란 어느 날 어느 시에 죽는다고 예고하는 게 아니죠. 어느 날 밤에 비수처럼 맞이하는 게 '죽음'이 주는 의미죠. 자기 죽음을 아는 이가 있다면, 살아 있는 동안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효도할 것입니다. 먹는 것도 더 맘껏 먹을 수 있도록, 극진히 대접하려고 하겠죠. 그날과 그 시를 알 수 없는 까닭에 더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긴장과 실수, 걱정으로 가득했던 입관식은 끝났지만, 어르신에 대한 생각은 떨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가족의 성복제(成服祭)가 끝나자마자 빈소로 달려가 어르신을 찾았습니다. 어르신께서는 한쪽에서 약주를 드시고 계셔서, 우선 맏상주님께 조심스레 어르신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여쭤 봤습니다. 어르신께서는 농사일을 하시며, 동네에 상갓집이 생기면 입관을 봐주신다고 하셨습니다."(223쪽)

이른바 병원에서 입관식 일을 맡아서 하던 이은화님의 일화를 소개한 고백문입니다. 입관식을 하는데, 유족분들이 참관한 가운데 목욕도 깨끗이 해 드렸고, 수의도 잘 입혀드렸고, 고인과의 마지막 인사도 잘했는데, 장례방법이 탈관(脫棺)이라 고인분을 멧베로 감아서 묶어드리는 매질만이 남았을 때였다고 하죠. 그때 한 매질이 일직선이 아니라 S라인이 돼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 일에 관한 전문가였던 그 시골의 어르신은, 오히려 자신에게 고생했다며 격려해 주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도 크나큰 실수를 범했는데도, 어떻게 해서 그 어르신은 이은화씨를 격려해주었던 것일까요? 그분은 온 몸에 땀을 흘리며, 제 몸처럼 닦고 입히는 그 모든 순간순간에 그지없는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장례식장에 몸을 담고 있는 분들이 그런 마음과 자세로 섬긴다면, 누가 감히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책에는 어린 자식을 먼저 저 세상에 보낸 부모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죠. 너무나도 가슴 아픈 사연들이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아이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질지, 이 책을 읽어보지 않는 분들은 모를 것 같습니다.

가정의 달 5월이면, 사실 나는 아버지가 무척이나 그리워집니다. 죽도록 미웠던 아버지였지만, 그렇게도 밉던 아버지가 오래도록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를 지금도 가끔은 생각합니다.

그것은 몇 해 전에 나이든 아버지를 땅 속에 묻는 내 친구를 보면서 더욱 실감했습니다. 내 친구는 정말로 천수를 누린 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 내노라할만한 삶을 산 건 아니었죠. 그저 촌부로서의 생을 마감할 뿐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아버지를 보면서 느낀 게 그것이었죠. 내 아버지가 그토록 못난 아버지였고, 술과 노름에 빠진 아버지였을망정 오래도록 함께 살아 있었더라면 내 삶에 어느 정도 버팀목이 되어 주지 않았을까하고 말입니다.

만약, 그대의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좀 더 살갑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중에 후회할 일 없이 말이죠.


#연세장례식장#〈슬픔 없는 이별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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