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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에 잠이 깨었지만, 난방이 되지 않는 숙소에서 침낭의 온기를 떨치고 일어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한참을 침낭에서 뒤척이다 여명이 터 올 무렵에야 로지 옥상에 올랐습니다. 멀리 마나슬루(8156m)가 아침 햇살에 보석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하늘은 덧없이 맑았으며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오늘부터 트레킹이 시작되기에 묘한 떨림과 기대감이 사람을 긴장시킵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시작... 나야폴까지 끝낼 생각

저는 안나푸르나 산군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네팔 나야풀에서 트레킹을 끝낼 생각입니다. 거리는 대략 250km이고, 날짜는 15일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트레킹의 백미는 해발 5146m의 '쏘롱라'를 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히말라야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넘을 수 없기에 무사히 '쏘롱라'를 넘을 수 있도록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오늘 목적지는 샹게(1100m)입니다. 마르샹디강을 중심으로 좌측 뉴 웨이(신작로)와 오른쪽 올드 웨이(트레커를 위한 트레일)가 있습니다. 저는 오른쪽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불부레 마을을 지나니 아름다운 폭포가 저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가이드에게 폭포의 이름을 물었지만 이름이 없다고 말합니다. 히말라야에서는 해발 6000m 이하인 산과 대부분 폭포는 이름이 없다고 합니다.

계곡 건너 거대한 폭포 모습
▲ 폭포 계곡 건너 거대한 폭포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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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사물이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 구분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나의 이름'을 가진 이는 저 혼자입니다. 부모가 저에게 주신 이름은 히말라야 6000m 산 보다 높고, 수많은 아름다운 폭포보다 고귀하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이렇게 높고 고귀한 이름이기에 이름을 주신 분의 바람과 염원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나디(Ngadi, 930m)를 지나기까지 트레일(걷는 길)은 평탄합니다. 마을을 지나고 논길을 걸으면서 네팔리들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톱으로 거대한 나무를 자르는 모습, 추수가 끝난 논에서 염소 몰이를 하는 모습 그리고 "나마스테" 하며 인사하는 촌부 모습까지 모두 정겹습니다. 부지런하게 일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카트만두 도롯가에서 무기력하게 해바라기를 하는 사람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나디에서 나무 켜는 모습
▲ 나무켜는 사람들 나디에서 나무 켜는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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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볼거리
▲ 염소떼 모습 또 하나의 볼거리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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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를 지나자 저 멀리 바훈단다(1310m)가 보입니다. 네팔 말로 '단다'는 언덕을 의미합니다. 바훈단다는 이제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됨을 의미하겠지요. 바훈단다 주위에는 수없이 많은 다랑논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손바닥 크기의 논들이 가파른 언덕 주위에 까마득하게 걸려 있습니다. 손 한 뼘 정도의 논들이 위태로워 보입니다. 산비탈을 가득 채운 논들을 보니,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끝없는 다랑이논 모습
▲ 다랑이논 끝없는 다랑이논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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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인 치링은 이번 트레킹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경험 부족인 그는 다른 포터에 비해 많은 짐이 아님에도 무척 힘들어합니다. 쿰부 히말라야 출신인 치링은 카트만두에서 전문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에베레스트가 있는 쿰부에서 카트만두로 유학을 한 것으로 보아 시골에서 부유하게 자란 것 같습니다. 이번 트레킹이 끝나면 한국어 공부를 하여 산업 연수생으로 한국에 가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나마스테"... 울림 또한 아름답습니다

바훈단다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어 마을 사람들과 트레커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독일에서 온 엔지니어인 프란츠(Franz)를 만났습니다.

"나마스테"
"나마스테"

'나마스테'는 "내 안에 있는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인사드립니다"라는 의미의 네팔과 인도 인사말입니다. 3300만의 신이 존재하는 네팔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신을 가슴 깊이 모시고 사는 것 같습니다. 두 손을 합장하며 고개를 약간 숙여 나누는 이 인사말은 네팔 트레킹에서 자주 들을 수 있으며, 울림 또한 아름답습니다. 네팔리도, 트레커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 인사말로 서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어디서 왔어?"
"독일, 너는?"
"난 한국, 몇 번이나 네팔 트레킹 했어?"
"난, 2001년 이후 매년 휴가 때 마다 와… 너는?"
"난, 다섯 번째, 이곳에 오는 이유가 뭐야?"
"……."

그는 가이드나 포터 없이 2001년 이후 매년 휴가 때마다 히말라야를 찾는다고 합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도 3번째라고 합니다. 그에게 히말라야를 찾는 이유를 묻자 "So good!"이라고 짧게 말합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해마다 이곳을 찾게 할까요?

힘들게 오른 바훈단다의 쉼터
▲ 바훈단다 쉼터 힘들게 오른 바훈단다의 쉼터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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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라운딩에서 10여일을 함께한 친구
▲ 독일 친구 프란츠(Franz) 안나푸르나 라운딩에서 10여일을 함께한 친구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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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두 시간을 걸어 게무에 도착하자 계곡 건너편에 아름다운 3단 폭포가 보입니다. 길이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몇 년 전 요세미티에서 본 폭포보다 더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인 것 같습니다. 게무의 로지에서 오렌지와 찌아(밀크티)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로지 옆 정원에는 싱싱한 오렌지가 달려 있습니다.

트레킹 중에는 자주 휴식을 취하며 차를 마셔야 합니다. 트레커들이 차를 주문하면 가이드나 포터에게는 무료나 저렴한 가격으로 차가 제공됩니다. 대부분 가이드나 포터는 아침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아침에는 찌아라는 우유가 들어 있는 차 한 잔으로 식사를 대신합니다. 그후 이른 점심과 저녁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로지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은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트레커의 조그마한 배려가 가이드나 포터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것이 진정 'Win Win'이겠지요. 트레커 또한 앞만 보고 걷는 것보다는 가끔 휴식을 취하며 여유를 갖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요.

게무에서 계곡으로 30분 정도 내려와 현수교를 건너 샹게(1100m)에 도착하였습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레일에는 수많은 현수교가 있습니다. 짧게는 수십 미터에서 길게는 백 미터가 넘는 것까지 천차만별입니다. 현수교 아래는 빙하가 녹아 흐르는 강줄기는 회색빛을 발합니다. 현수교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생명선이자 소통입니다.

샹게로 건너는 현수교 모습
▲ 현수교 샹게로 건너는 현수교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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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다, 깨끗하다'의 의미

오늘 목적지는 샹게였습니다. 천장 없는 지붕, 삐걱대는 바닥, 사용한 것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매트리스와 밖이 한눈에 보이는 벽은 저를 심란하게 하였습니다. 가이드와 상의하니 다음 마을까지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숙박을 포기하고 다음 마을인 자갓(1300m)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자갓까지 가는 길에는 도로공사 구간이 있습니다. 포클레인 같은 기계도 보이지만. 땅을 파고 바위에 구멍을 내고 흙을 운반하는 것은 모두 사람입니다. 수없이 많은 네팔리들이 바위에 매달려 열악한 도구로 거대한 바위를 쪼아내는 모습이 애처롭습니다.

힘들게 자갓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을 어귀에 자리 잡은 숙소는 무척 깨끗하였으며, 주변에는 아름다운 계곡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첫날부터 무리한 것 같습니다. "더럽다, 깨끗하다"라는 주관적인 판단 때문에 9시간 이상 걸었습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속도전이 아니기에 천천히 걸으면서 사물과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힘들게 도착한 자갓의 숙소 모습
▲ 숙소 힘들게 도착한 자갓의 숙소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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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몸과 달리 잠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이제 겨우 하루를 걸었음에도 세상 일들이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저 혼자 외딴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헤드 랜턴을 켜고 책을 읽어도, 책은 허공에 혼자 떠 있습니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끊임없이 창문을 타고 방 안으로 들어옵니다. 외롭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태그:#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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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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