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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판 상자에 볍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기계로 했는 데 요즘은 뿌립니다
 모판 상자에 볍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기계로 했는 데 요즘은 뿌립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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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허리에 자리한 '개성공단'이 언제 문을 닫을지 몰라 마음은 아프고 불안하지만, 먹어야 삽니다. 먹어야 대화하면서 평화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한 사람이 먹는 쌀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합니다. 지난 1월 31일 통계청은 '2012 양곡연도 양곡소비량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2012 양곡연도에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69.8㎏으로 전년보다 2.0% 줄었습니다. 30년 전인 1982년(156.2㎏) 절반도 안 됩니다. 그래도 아직 쌀은 우리 주식입니다.

밥 한 톨이 숟가락에 올라올 때까지 88번 손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미'(米)입니다. 옛날과 달리 트랙터로 논갈이하고, 이앙기로 모 심고, 콤바인으로 타작하지만 볍씨 담그기와 모판에 흙을 넣고, 볍씨를 뿌리는 일은 사람 손길이 가야 합니다. 토요일 모판 상자에 볍씨와 흙을 넣었습니다. 올해 벼농사가 시작됐다는 말입니다.

볍씨를 뿌린 위에 흙을 덮습니다.
 볍씨를 뿌린 위에 흙을 덮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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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로 볍씨와 흙을 넣는 것이 아니라 올해는 뿌리네요."
"이게 편하지. 일일이 손으로 돌리는 것보다 이게 낫지."
"볍씨 낭비가 심하잖아요."
"요즘 그런 것 신경 쓰나. 볍씨 조금 버린다고. 편안하고, 빨리 끝낼 수 있어."
"그런데 흙이 조금 질고 무르다."
"요즘 비가 워낙 많이 왔잖아요. 바닥이 비닐을 먼저 깔고 천막을 깔고 덮어야 했는데."
"오늘 밤과 월요일에도 비 온 데요. 비가 정말 많이 와요. 오늘은 손이 많아 쉽고 편안하네요."
"이런 일에는 손이 많으면 금방 끝나지."

농사를 지어보면 알겠지만, 정말 손 하나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농기계가 있지만, 사람 손길만큼 서로 평안하게 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이 품앗이로 시골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때가 더 사람냄새 났습니다.

볍씨 위에 흙을 뿌리고 있습니다.
 볍씨 위에 흙을 뿌리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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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는 농약을 단 한 번도 치지 않았습니다. 이전까지는 1번 정도는 쳤지만, 이번에는 아예 작정한 듯합니다. 올해도 농약을 치지 않기로 다짐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마음은 농약을 안 치겠다고 하지만 이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잎마름병, 도열병, 멸구 때문에 자식 같은 벼가 죽어가는 데 농약을 안 치고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올해도 농약 안 쳐야 할 건데."
"지난해는 안 쳤잖아. 눈 딱 감고 안 쳤지."
"농약을 안 치고 어떻게 농사를 짓노?"
"농약 안 치며 남아나는 것이 없는데."
"참 마음먹으면 괜찮아요."

어른들은 농약을 치지 않으면 먹을 게 없다고 하고, 동생은 안 쳐도 된다고 말입니다. 모두 '경험'입니다. 어른들은 농약을 안 치면 먹을 게 없다는 경험이고, 동생은 농약을 안 쳐도 먹을 게 많다는 '경험'입니다. 사실 지난해 농약을 안 쳤는데 농사를 지은 후 가장 많은 수확했습니다. 아내와 제수씨가 새참을 가져왔는데 막둥이도 따라왔습니다. 모판 상자를 옮기겠다고 나섰습니다.

우리집 막둥이도 모판상자를 옮깁니다. 이제 밥값합니다.
 우리집 막둥이도 모판상자를 옮깁니다. 이제 밥값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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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도 옮길래요?"
"막둥이가 옮긴다고? 그래 한번 해 봐야지."
"아빠 흙을 덮었는데 싹이 나와요?"
"응. 일주일 후에 보면 초록 빛깔 새싹이 올라온 것을 볼 수 있어."

"어떻게 흙을 뚫고 올라 올가요."
"놀랍지. 다음 주 토요일 막둥이가 볼 수 있을 거야. 생각보다 잘하네."
"아빠! 볍씨도 뿌리고 싶어요."
"볍씨? 응, 볍씨는 소독했기 때문에 나중에 손을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예."


막둥이와 아내 그리고 조카가 볍씨를 뿌립니다.
 막둥이와 아내 그리고 조카가 볍씨를 뿌립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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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하면 다 하고 싶은 막둥이, 올해는 드디어 모판 상자를 나르고, 볍씨를 뿌렸습니다. 자신이 먹을 밥값은 했습니다. 옛날에는 이맘때가 되면 '부지깽이'도 일어나서 일손을 도왔습니다. 막둥이가 부지깽이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흙을 고르기까지 했으니, 막둥이 올 가을 햅쌀 먹을 자격이 있습니다.

"아빠 나도 흙을 평평하게 고르고 싶어요."
"흙도 고른다?"
"응."
"와, 막둥이 올가을 햅쌀 먹을 자격 있네."
"오늘 재미있었어요."
"할머니, 큰 아빠, 삼촌이 정말 힘들게 농사짓는 것 알겠지."
"예."
"밥을 먹기 위해서는 많은 손길이 가야 해. 그러니 밥을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
"형아와 누나는 오늘 공부때문에 안 와서. 일 안 했어요."
"형아와 누나는 모레부터 시험이잖아. 어쩔 수 없지. 다음 주 토요일 모판상자를 모판에 넣을 때 오면 되겠네."


막둥이가 흙을 고르고 있습니다.
 막둥이가 흙을 고르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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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월요일부터 시험인 큰 아이와 둘째 아이는 공부한다며 집에 있었습니다. 저는 같이 가자고 했지만, 아내는 "다음 주 시험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라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정리됐습니다. 중간고사도 중요하지만, 이런 게 진짜 공부인데. 엄마와 아빠 생각이 이렇게 다른가 봅니다.

볍씨가 잘 자라 올벼농사도 풍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반도도 평화 풍년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태그:#모판, #벼농사, #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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