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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8일간 터키를 다녀왔습니다. 약 3천km를 일주하는 동안의 터키 이야기를 몇 차례에 걸쳐 이곳에 남깁니다. <필자 주>

톈산산맥의 상공에서

3월 19일 10시 35분에 이륙한 우즈베키스탄항공 비행기는 7시간 30분을 날아 경유지인 타슈켄트 국제공항(Tashkent International Airport 한국과의 시차는 4시간 느림)에 내려앉았습니다.  

긴 비행시간에도 불구하고 눈 아래로 펼쳐지는 톈산산맥(天山山脈, 천산산맥)의 장대한 광경에 넋을 잃는 통에 시간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서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타슈켄트의 발치까지 해발고도 3600∼4000m로, 남북 400km, 동서 2500km의 길이에 걸쳐 펼쳐진 이 산맥의 눈 덮인 고봉들을 하늘에서 가로지르는 것은 신비롭고 경이로운 체험이었습니다.  

9,753m 상공에서 내려 본 거대한 톈산산맥의 연봉들
 9,753m 상공에서 내려 본 거대한 톈산산맥의 연봉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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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를 천산남로(天山南路)와 천산북로(天山北路)로 나누는 천산산맥. 만년설을 이고 있는 설산은 그 장엄함으로 경박한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그 눈을 녹인 물로 산 아래의 타클라마칸 사막에 오아시스를 만들어 뭇 생명에게 생명현상을 유지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천산남로도, 천산북로도 아닌 천산상공을 가로지르는 감동을 벅차게 맞았습니다. 거대한 설산연봉들로 이어진 준령들의 양지와 음지의 사면들이 때로는 씨줄의 모습으로, 간혹 날줄의 모습으로, 마침내는 직조된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9753m 상공에서 내려 본 거대한 산맥은 스스로 극대함과 위대함을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그 산 어느 자락에서 일상을 살고 있을 사람이라는 존재는 한낱 양탄자의 실오라기 하나로도 실존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강과 길은 달팽이가 기어간 흔적보다도 희미합니다. 분명 그 달팽이 흔적의 강변에 사람들은 마을을 만들고 도시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 속에서의 경쟁과 분노란? 그 속에서의 실패와 성공이란? 

하늘에서 내려본 천산산맥의 설산은 그 장엄함으로 경박한 사람을 겸손하게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본 천산산맥의 설산은 그 장엄함으로 경박한 사람을 겸손하게 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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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지만, 사람이라면 결국 오직 두 가지만 가능할 뿐입니다. 탄식하거나 감탄하거나!

인천으로부터 5246km.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국제공항에서 5시간의 환승 기다림 동안에도 9천8백 미터 상공에서 직조된 융단의 보풀 한 올로도 저의 실존을 증명할 길 없었던 그 톈산산맥의 아득함이 저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부서지기 쉬운 개인, 너무 힘이 센 정치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타슈켄트국제공항의 로비에는 무슬림 복장을 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인도에서 온 한 가족과 말을 섞었습니다. 25년째 파리에서 살고 있는 이 가족은 인도의 고향을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타슈켄트국제공항에서 만난 무슬림가족. 인도의 고향에 들렸다가 25년째 살고 있는 파리로 가는 길.
 타슈켄트국제공항에서 만난 무슬림가족. 인도의 고향에 들렸다가 25년째 살고 있는 파리로 가는 길.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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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산산맥의 서쪽 끝자락 오아시스에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의 이 국제공항은 규모가 작고 한산한 편이지만, 저와 같은 극동에서 오는 사람들 말고도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지에서 유럽으로 가는 사람들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공항입니다.   

1년째 타슈켄트에 주재원으로 와있는 가족과 얘기를 했습니다. 현재 타슈켄트에는 자영업자와 상사원, 선교사, 유학생 등 약 2500명 정도의 교민이 살고 있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분산정책에 따라 극동지역 거주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곳 중의 하나로 현재에도 가장 많은 고려인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한국정부에서는 고려인 이주 1세대 독거노인들을 위한 양로원 건립사업이 추진되어 2010년 3월 26일 '아리랑요양원(타슈켄트주 유코리치르칙구역 아흐마드야사위)'이라는 이름으로 개원되었습니다. 이 요양원은 2006년 양국 총리 합의를 통해 우즈베크 정부가 땅과 건물을 고려문화협회에 무상증여하고, 한국대사관의 주도로 외교부산하 재외동포재단이 건물을 짓고, 보건복지부산하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복지사 등 한국의 인력을 파견하여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려인 1세대. 이분들은 영문도 모른 채 연해주에서 열차에 태워졌고 중앙아시의 황량한 사막에 던져졌습니다. 긴 이동과정에서 '죽은 사람 반, 산 사람 반'이라고 그 1세대들은 증언합니다. 타슈켄트의 고려인들은 텐샨산맥의 눈 녹은 물처럼 역사의 대하를 따라 흐를 수밖에 없는 인생의 유전(流轉)을 명확하게 증언합니다.   

타슈켄트국제공항은 아시아와 인도 등지에서 유럽으로 가는 사람들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공항입니다.
 타슈켄트국제공항은 아시아와 인도 등지에서 유럽으로 가는 사람들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공항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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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싹 마른 흙 한 줌보다도 더 부서지기 쉬운 개인. 그 연약한 개인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인간은 종교를 만들고 정치체제를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그 종교가 전쟁의 불씨가 되고 정치는 여울에 휩쓸린 나뭇잎 한 장보다도 더 쉽게 개인을 휘둘렀습니다.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에게 한때 연약했던 우리의 국가가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국가의 구성원이었던 대한민국의 누구도 그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다행히 우즈베키스탄의 교민은 아리앙요양원이 고려인뿐만 아니라 교민들에게도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이 되고 있다, 고 했습니다.   

공항의 까칠한 두루마리 휴지

아내는 스마트폰 카카오톡의 가족 그룹채팅으로 타슈켄트 공항 도착을 알렸습니다. 둘째 딸 주리가 제일 먼저 답글을 달았습니다.

"내가 고2 때 갔던 데다~~~우즈벡" 

그리고 러시아 인사말 하나를 알려주었습니다. 

"스바시바'(Спасибо)가 감사합니다야. 엄마도 써 먹어봐!" 

주리에게 카톡이 왔다. "스바시바'(Спасибо)가 감사합니다야." 딸은 7년전의 우즈베키스탄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주리에게 카톡이 왔다. "스바시바'(Спасибо)가 감사합니다야." 딸은 7년전의 우즈베키스탄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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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는 7년 전 고등학교 2학년 때 '꿈과 사람속으로'라는 대한민국청소년해외봉사단의 일원으로 우즈베키스탄에 봉사를 위해 왔었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주리는 가족들을 위한 선물로 두루마리 휴지 두 롤을 사 가지고 왔습니다. 심이 없고 까칠한 질감의 그 휴지로 주리는 우리 가족에게 황량한 타슈켄트의 현실처럼 못살던 그때를 상기시켜주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공항의 화장실에서 주리가 가족 선물로 사 가지고 왔던, 여전히 심이 없고 까칠한 그 휴지를 만났습니다. 공항화장실에 놓인 그 휴지를 보면서 주리가 두루마리 휴지 두 롤로 가족을 일깨운 그 메시지를 다시 상기했습니다.

심이없으면서 까칠한 질감의 우즈베키스탄의 두루마리 화장지
 심이없으면서 까칠한 질감의 우즈베키스탄의 두루마리 화장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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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슈켄트를 다시 이륙한 것은 저녁 7시 5분. 어둠이 내리고 나서였습니다. 고층빌딩이 없는 타슈켄트는 은은한 화로속 숯불 같은 모습으로 어둠속에서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어둠이 깔리는 때에 다시 타슈켄트공항을 이륙했습니다. 이스탄불을 향해...
 어둠이 깔리는 때에 다시 타슈켄트공항을 이륙했습니다. 이스탄불을 향해...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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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앙아시아에서 한민족의 역사가 타의에 의해 아프게 시작한 그 과거의 기억이 예민한 신경을 얕게 자르며 지나는 메스의 통증으로 뇌를 스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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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터키, #톈산산맥, #천산산맥, #타슈켄트, #우즈베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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