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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3월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 참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3월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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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훤히 보이는 세수결손을 방치할 경우…"

지난달 29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실을 찾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추경 편성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빗나간 경제성장 전망치에 대해 유감을 나타냈다. 어법은 완곡했지만 조 수석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조 수석은 "작년도 예산 심의 당시에 금년도 경제상황 악화 전망으로 예상되었어야 할 세입감소가 예산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발생하는 세수결손이 12조원"이라고 지적했다.  "눈에 훤히 보이는", "경제상황 악화 전망으로 예상되었어야 할"이라고 한 조 수석의 언급에서는 이전 정부의 실책을 부각하겠다는 의도가 선명했다.

청와대는 이를 근거로 최대 20조원에 이르는 '슈퍼 추경' 편성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전 정부에서 강조돼 오던 균형재정에서 벗어나 재정건전성을 희생하더라도 확대 재정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본격적인 MB 흔적 지우기 나선 박근혜 정부

4대강 사업 전면 재조사, 공공기관장 교체 등으로 이명박 정부와 선긋기에 나선 박근혜 정부가 경제 정책 분야에서도 'MB 흔적 지우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새 정부의 'MB 정부와의 차별화' 배경에는 빨간불이 켜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자리 잡고 있다. 새 정부 출범 한 달 만에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인사 참사'로 불리는 인사 실패와 '불통' 논란으로 40%대로 떨어졌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 조사(3월 25~29일,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0%p) 결과,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45.0%에 그쳤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41%까지 추락한 경우도 있었다. 특히 리얼미터 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비록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새누리당(47.1%)에도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의 위기의식은 깊다. 국정 수행 지지율이 추가로 하락할 경우 집권 초기부터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당·청 관계와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국정 운영 동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청와대는 결국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를 통한 정책 드라이이브를 국면 돌파 카드로 선택했다.

'MB정부 흔적 지우기'가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경제정책 분야다. 추경 편성은 물론 부동산 정책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핵심 기조는 부정됐다.

천덕꾸러기 된 보금자리주택... "국토부 업무 반 줄어들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서승환 장관, 박근혜 정부의 첫 부동산 종합대책 발표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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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발표된 박근혜 정부의 첫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보금자리주택 사업 축소 및 임대 전환이다. 수도권 주변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를 해제해 주변 시세보다 싸게 아파트를 분양하는 보금자리주택 사업은 주택 가격 안정을 가져온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 브랜드로 손꼽혔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이 사업은 주택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왜곡하는 주범으로 낙인찍혔다. 보금자리주택 당첨을 기다리는 수요자들이 대거 전·월세 임대 시장으로 몰리면서 전세값 폭등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1일 기자들과 만나 보금자리주택 축소 배경에 대해 "주택 (구입) 수요가 줄면서 임대시장으로 가버렸다. (주택시장 정상화) 물꼬는 거기서 터야한다고 생각했다"며 "보금자리주택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국토교통부의 핵심 사업이 보금자리주택이었는데 국토부 업무의 반이 줄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MB정부의 균형재정정책도 사실상 폐기됐다. 박근혜 정부는 추경을 포함한 대규모 경기 부양책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적극적 확장재정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명박 정부가 너무나 낙관적인 경제전망(4.0% 성장)에 근거해 올해 세입예산안을 짰는데 성장률 전망이 3.0%로 하락하면서 추경을 하지 않으면 재정 지출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3.0%에서 2.3%로 다시 낮췄다.

조원동 경제수석은 "성장률 하락으로 6조원 정도의 세입 감소가 예상되고 세외 수입에서도 6조원의 결손이 불가피해 금년도 세입에서 총 12조원까지 세수 결손이 발생될 수 있다"며 "눈에 훤히 보이는 세수결손을 방치할 경우 금년 하반기에는 한국판 재정절벽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수석은 전임 정부의 어긋난 경제 전망에 대해서 진한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세수결손은 작년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도 많은 지적이 있었다"며 "(전망치 오차는) 어느 정부라도 안고갈 수 있는 수준이 있는데 그 수준을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상황을 잘 파악해서 (경제성장) 전망을 했더라면 예산을 편성할 때 재정정책이 다른 모습일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인위적 주택 수요 진작, 재정건전성 후퇴... 정책 차별화 부작용 우려

박근혜 정부가 전 정부와 차별화를 통해 본격적인 정책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비판이 없지는 않다. 부동산 정책만 하더라도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보편적 주거복지와 상충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주택시장 정상화'라는 명목 하에 추진되는 각종 규제완화를 통한 수요 진작 및 공급 제한 정책은 집값 상승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수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부동산 문제는 근본적으로 집값이 무주택 서민이 구매하기 턱 없이 비싼 값에 있다"며 "5년간 행복주택 20만호 건설 공약도 올해는 1만호만 건설하기로 하는 등 박 대통령의 공약인 주거복지 정책이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20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추경도 정치 쟁점으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는 추경 규모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재원 조달 방법으로 증세보다는 전액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 야당에서는 추경과 함께 소득세·법인세율 인상 등 증세 문제를 함께 제기할 계획이어서 여야 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변재일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박근혜 정부가 경제성장률 전망을 2.3%로 하향 조정한 것은 (경제성장 목표를) 낮게 제시하고 초과 달성했다고 하거나 국채 발행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추경 편성의 근거인 GDP(경제성장율) 추계 2.3%가 적정한지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예결위 야당 간사인 최재성 민주당 의원도 "박근혜 정부는 처음부터 가계부를 잘못 써서 재정 건전성을 포기했다"며 "국채 발행해 추경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 부자감세로 인해 정부 곳간이 비어있는 게 근본 원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국채 발행하겠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여야의 입장이 갈리면서 정책 미세 조정을 놓고 여야 간 치열한 줄다리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정책의 시행의 효과는 단기간에 나타나기는 힘들다는 점도 지지율 반등이 시급한 박근혜 정부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쉽지 않은 정국 반전... 사정 카드 꺼낼까

이에 따라 정책 차별화와 더불어 이전 정부에 대한 사정 여부도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역대 정권들은 집권 초기 구 여권 인사들에 대한 강력한 사정 드라이브를 통해 차별화를 시도해 왔다. 가장 손쉽고 가시적으로 이전 정부와 차별화를 이룰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미 시민단체 참여연대와 YTN 노조는 내곡동 사저 비리와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과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발했다. 또 이명박 정부의 실세였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검찰수사, 4대강 사업 의혹에 대한 공정위 조사와 검찰 수사 등도 진행되고 있다.

현재 청와대는 "단기적인 깜짝쇼는 없다"(핵심 관계자)며 인위적인 사정 국면 조성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국정 과제 챙기기 등 정책 행보만으로 국정 동력 확보가 여의치 않을 경우 '사정 드라이브'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태그:#박근혜,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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