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빠, 학교 가기 싫은데, 학교 안 가면 안 돼?"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가 며칠 전 불쑥 꺼낸 말이다. 여태껏 유치원에 보내면서는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얘기다. 가기 싫다고 말하기는커녕, 유치원과 친구들이 좋아 간만의 가족여행조차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던 아이다.

초등학교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가 꽤나 힘든 모양인데,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유치원에 보낸 첫날부터 선생님은 물론 반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던 터라 조금은 놀라웠다. 엄마와 함께 안아주고 다독여서 학교를 보냈는데, 굳이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등교 시간이 한 시간 이상 빨라졌고, 가방도 무거워진데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족히 배는 더 늘어났으니 힘들고 지칠 수밖에. 퇴근 후 마주하면 아빠보다 더 피곤한 얼굴로 축 처져 있기 일쑨데, 요즘 들어 저녁을 먹기도 전에 잠드는 날도 종종 있다.

엊그제는 갑자기 유치원 선생님이 보고 싶다길래 퇴근 후 아이를 데리고 유치원을 찾았다. 딸아이는 마치 외가에라도 온 듯 이내 얼굴이 편안해졌다. 선생님께 아이가 요즘 많이 힘들어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얼마 전 한 아이도 찾아와 와락 품에 안겨 내내 엉엉 울다갔다고 위로해주었다.

그러면서 자립심을 길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 부모의 손길이 더 필요한 때이니만큼 많이 안아주고, 칭찬해주고, 학교생활에 대해 자주 물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조언해주었다. 특히 입학 후 3월 한 달은 첫 단추를 꿰는 중요한 시기로, 여러모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 유치원으로 돌아가고 싶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딸아이에게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는지 '처음으로' 물어보았다. 맞벌이인 까닭에 방과 후 일과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만 신경이 곤두서 있었을 뿐, 정작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선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고작 담임선생님의 성함 정도만 알고 있는, 무심한 부모였던 거다.

그런데 대답을 들으니 딸아이가 받는 스트레스가 십분 이해됐다. 입학 후 며칠 동안은 종일 교실에서 '조용히 하는' 연습을 한 모양이다. 담임선생님의 구호에 따라 동시에 책상에 머리를 숙인 채 엎드리고 있다가, 또 다른 구호에 박수를 두 번 치고 다시 허리를 펴고 앉는 동작을 계속 반복 연습했다고 한다.

단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 아이들인데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은 생각에 담임선생님이 가엾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영문도 모르는 아이들이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싶다. 불과 한두 달 전만 해도 하루 종일 종이접기도 하고, 동화구연도 듣고, 노래도 부르고, 마당에 나가 뛰어 놀던 아이들인데.

더욱이 수업시간 내내 책만 읽는 것이 싫다고도 했다. 종례 시간 선생님이 당부한 내용을 적은 알림장엔 지금껏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길조심', '차조심'이라는 글과 함께 '책을 가져오라'고 적혀 있다. 매일 다른 책으로. 처음엔 한 권만 가져오라 하시더니 며칠 전부터는 두 권씩 챙겨오라고 말씀하셨단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들은 대개 그림책으로, 표지가 두꺼워 제법 무게가 나가는 것들이 많다. 필통과 알림장, 방과 후 수업 교재, 그리고 실내화에다 책 두 권까지 챙겨 넣으니 가방이 꽤 묵직하다. 제 몸만 한 가방을 메고 걸어 학교에 가는 모습이 부모로서 대견스러우면서도 솔직히 안쓰럽다.

물론, 그 책들은 당연히 수업 중 아이들 개개인의 독서 습관 지도를 위해 활용될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딸아이의 얘기는 전혀 달랐다. 선생님이 가져온 책을 꺼내 읽으라고만 할 뿐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다 읽었다고 하면 다시 읽으라고 하고, 두 번 다 읽었다고 하면 다시 자세히 읽으라고 하신단다.

그동안 선생님은 책상 위에 서류뭉치를 쌓아놓고 '호글'만 쳐다보며 일만 하신다고 했다. 아직 컴퓨터에 대해서 잘 모르는 딸아이는 '(아래 아)한글'을 '호글'이라고 부른다. 그러다 교실이 소란스러워지면, '연습'한 대로 아이들 모두를 책상 위에 엎드리도록 한다는 것이다. 곧, 아이의 요즘 일과란 게 등교해서 조용히 앉아 종일 책 읽다 급식소에서 점심 먹고 귀가하는 게 전부다.

아이들은 책만 읽고 선생님은 서류와 씨름하는 '초등학교의 3월'

함양초등학교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그네를 타며 즐거워 하고 있다.
 함양초등학교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그네를 타며 즐거워 하고 있다.
ⓒ 함양군청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이건 비단 우리 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만의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세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다는 어떤 분은 새 학년이 시작되는 적어도 3월 한 달간은 아이들이 '방치'될 수밖에 없다며,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학년 초엔 선생님들이 잡무를 처리하느라 반 아이들을 일일이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거다.

환경이 바뀌는 중·고등학교의 1학년도 그렇지만, 특히 초등학교 1학년의 경우 담임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다. 교실에서 담임선생님이 아이들과 스킨십을 하며 늘 함께 있어줘야 할 이유다. 더욱이 학년 초인 3월은 아이들의 낯선 학교에 대한 인식이 사실상 결정되는 시기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생님들에게 3월은 연중 가장 바쁜 달이다. 과장된 표현일 테지만, 처리해야 할 1년 치 잡무 중 절반이 3월에 몰려 있다는 얘기마저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딸아이가 건넨 가정통신문만 벌써 십여 장이니 거의 하루에 한 장 꼴이다. 대개는 학부모들의 의견을 물어 수합하는 것들인데, 그걸 모아 통계를 내고 보고하는 게 모두 담임선생님의 몫일 테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개중에는 굳이 3월에 조사할 이유가 있을까 싶은 것들도 많다. 더욱이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면면이 우선 파악돼야 추진이 가능한 일들조차 있어 앞뒤가 맞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백 보 양보해서 아무리 시급하다고 해도, 학교라는 낯선 공간에 갓 입학한 아이들과 얘기 나누고 교감하는 일보다 중요할까.

비록 딸아이는 학교 가기 싫다고 말하지만, 결코 담임선생님을 탓할 수 없는 까닭이다. 선생님도 사람일진대, 일에 치이다 보면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는 것마저 귀찮아지는 법이다. 이것저것 보고하고 제출하라는 메신저 신호음이 종일 무시로 울려댄다면, 과연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겠는가.

현재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학교마다 방과 후 '돌봄 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그것은 그들에겐 아직 별도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학교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곧, 그들을 맡게 된 담임선생님들에겐 잡무를 대폭 줄이거나 적어도 학년 초만큼은 피할 수 있도록 유예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새 환경이 낯선 아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를 기대합니다 

딸아이는 입버릇처럼 담임선생님이 유치원 선생님 같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불과 1년 차이인데, 아이들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받는 중압감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수업시간 중에 갑자기 용변을 보고 우는 친구들도 여럿이라고 한다. 요즘 아이들의 나약함을 꾸짖기 전에, 학교와 선생님들이 먼저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주면 어떨까.

예컨대, 학교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선생님들, 그리고 또래 친구들을 미리 만나게 해주면 어떨까. 요즘 중·고등학교의 경우, 입학식 전 하루나 이틀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배정받은 새내기들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는 학교가 많다. 입학 전이라 정규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새내기들을 배려해 학교가 만든 '특별' 프로그램이다.

3년 동안 지내게 될 교정의 곳곳을 안내해주고, 수업과 평가는 어떻게 바뀌는지, 학교생활을 위해 지켜야 할 규칙 등을 소개하는 자리다. 무엇보다도 함께 공부할 선생님들과 선배들, 그리고 친구들을 입학 후 서먹해하지 않도록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오리엔테이션을 갖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하물며 '머리가 굵은' 중·고등학생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갖게 하는데, 초등학교에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 과정이 개설돼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취학 통지서에 적힌 면담 날짜에 부모와 함께 학교를 찾아가 미리 챙겨야 할 것 등 준비사항을 전달받는 것이 고작이다. 길어야 십여 분 정도면 끝나는 그 자리가, 말하자면 입학 전 유일한 오리엔테이션인 셈이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유치원을 갓 졸업한 아이들이 크게 낯설어 하지 않도록 초등학교 1학년의 교실 환경과 커리큘럼을 유치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도록 배려해볼 수는 없을까. 말하자면, 교실 환경을 유치원과 비슷하게 꾸미고, 돌봄 교실을 운영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융통성 있게 '과도기'적 교육과정을 고민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아빠, 오늘이 토요일이었으면 좋겠어."

일요일 밤 잠자리에 들면서 건넨 말이다. 그저 웃으면서 "아빠도 그래"라고 답했지만, 하루하루가 마냥 신나야 할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말답지 않아 적잖이 씁쓸했다.


태그:#초등학교 1학년, #잡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