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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가니 포터들과 롯지 샤우지(주인 아주머니)가 저를 보고 웃고 있습니다. 사람도 아니라는 눈치입니다. 물론 롯지 샤우지야 기쁨의 웃음이겠지요. 오랜만에 호구(?) 하나 만나 그동안 재고로 남아있던 맥주를 모두 처분하였으니 말입니다.

과유불급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무엇이든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 보다 못한 것"인데... 지인과의 만남의 기쁨과 산을 내려간다는 해방감이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일을 저지르고 난 뒤에야 후회하는 어리석음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지! 

촘롱 가는 이정표 계곡 건너 촘롱이 보임
▲ 이정표 촘롱 가는 이정표 계곡 건너 촘롱이 보임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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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출발합니다. 몸 상태와는 관계없이 시간이 되면 출발하는 것이 트레킹입니다. 오늘은 촘롱(2170m)을 거쳐 지누단다(1780m)까지 갈 것입니다. 숙박한 시누와(2360m)에서 계곡 아래쪽에 있는 지누단다는 한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계곡을 타고 걷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계단으로 된 촘롱을 거쳐 가지만 거리와 난이도에서 편안한 트레킹 될 것 같습니다.

시누와에서 만난 공부하는 오누이
▲ 공부하는 아이들 시누와에서 만난 공부하는 오누이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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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와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던 중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오누이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야외에서 변변한 책상도 없이 보기에도 위태해 보이는 자세로 열심히 책을 읽고, 쓰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옆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네요. 히말라야 2300m 오지에서 아이의 인생을 변화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교육인 것을 아이의 엄마는 깨달은 것이겠지요.

6000개 계단을 오르는 의미

누군가는 촘롱 지역의 계단이 모두 6000개라고 합니다. 사실, 확인을 할 수 없으니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산 능선에 자리 잡은 마을은 끝없는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계곡을 거쳐 촘롱으로 오릅니다. 이제 계단도 두렵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한 걸음씩 내 딛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니 말입니다.

촘롱을 오르는 길
▲ 계단 촘롱을 오르는 길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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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도 굴절 없이 평탄한 길만 있다면 무미건조해 질 것입니다. 오르막은 느린 걸음으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고 내리막은 어렵고 힘든 시기에 대한 보상이기에 즐거움이 배가될 것입니다. 산이나 인생이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될 것이기에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자신의 보폭만큼 한 걸음씩 걷기만 하면 되겠지요.

안나푸르나의 대한민국

촘롱은 안나푸르나 지역의 대한민국입니다. '김치찌개', '라면', '백숙'등 우리나라 음식을 주문할 수 있습니다. 라면을 주문하면 김치가 서비스로 나오는 것이 우리나라 분식집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많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인생의 전환점에서 히말라야를 걸으면서 많이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밝을 것 같습니다.

촘롱의 모습
▲ 한글 음식 메뉴 촘롱의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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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롱을 떠나면서
▲ 안나푸르나 촘롱을 떠나면서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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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지누단다(1780m)에 도착합니다. 지누단다에는 온천이 있습니다. 저는 온천을 포기하고 숙소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물론 철학적 사색보다는 숙취가 깨지 않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있습니다. 전망 좋은 롯지는 오늘 아침 출발한 시누와 뿐만 아니라 우리라 걸어 온 안나푸르나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고소로 고생한 MBC에서의 일이 꿈처럼 스쳐갑니다.

이제 트레킹 마지막 날입니다. 원점회귀하는 코스인지라 처음 출발한 나야풀에서 트레킹을 끝내야 하지만 개발 덕분에 쿠디까지 지프차가 다니고 있습니다. 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를 걷는 것은 보기가 좋지 않을 것 같아 쿠디에서 지프차를 이용해 여행자들의 안식처 포카라로 갈 예정입니다. 

포카라까지 우리를 데려갈 지프차
▲ 세상으로 가는 지프차 포카라까지 우리를 데려갈 지프차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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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뉴브리지를 통해 쿠디까지 계곡을 따라 걷습니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 모습이 제 고향 덕유산 자락처럼 느껴집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의 혜택 중 하나는 사계절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포인세티아, 장미 등이 설산을 배경으로 도도한 자세를 뽐내고 있습니다. 불과 이틀 전, 진눈개비로 고생을 하였는데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설산을 품은 장미
▲ 장미 설산을 품은 장미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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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디에 있는 현수교를 건너는 것으로 8박 9일 간의 트레킹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트레킹을 끝내며
▲ 건배 트레킹을 끝내며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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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ABC 트레킹은 오랜 만에 일행과 함께하였습니다. 함께한 트레킹이었지만 "함께 또 따로"가 이번 여행의 콘셉트였습니다. 자신의 보폭에 따라 산을 걸었으며 대부분 잠자리는 1인 1실이었습니다. 산은 낮에 걷지만 느낌은 밤에 오는 것 같습니다. 혼자 보내는 밤 시간을 통해 두고 온 세상에 대한 그리움과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이 주는 교훈

지식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지만 지혜는 사색과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서 입에 맞지 않은 음식과 불편한 잠자리에서 우리는 지식이 아닌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번 트레킹에서 우리가 걷는 걸음을 통해, 롯지의 불편한 침상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는 삶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히말라야를 걸으면서 범할 수 있는 어리석음 중 하나는 히말라야 자락에 사는 사람들을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풍요한 나라에서 온 우리를 보고 행복한 사람이라 느끼지는 않을까요? 행복과 불행이란 자연환경이나 물질적 풍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만족할 때 오는 것은 아닐까요?

짐을 지고 가는 네팔 사람들
▲ 포터 짐을 지고 가는 네팔 사람들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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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담바라는 천년에 한 번 꽂이 피고, 백일홍은 일 년에 백 일 동안 꽃을 피우지만 대부분의 꽃들은 일 년에 5일 쯤 꽃이 핀다고 합니다. 그러면 꽃의 시간은 일 년 중 겨우 5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의 평균 수명을 70년으로 생각한다면 우리 생애에서 꽃을 피울 시간은 단 일 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 년의 시간동안 우리는 무엇을 통해 우리만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태그:#히말라야,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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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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