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난이 위안이 된 부자와의 저녁식사. 경칩날 포근한 날씨는 개구리를 동면에서 깨어나게 했고 산전수전 다 겪은 부자는 저를 부자의 환상에서 깨어나게 했습니다.
 가난이 위안이 된 부자와의 저녁식사. 경칩날 포근한 날씨는 개구리를 동면에서 깨어나게 했고 산전수전 다 겪은 부자는 저를 부자의 환상에서 깨어나게 했습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어제 저녁, 공적인 자리에서 지인이 세션의 막간에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참 행복한 사람이오."  

저는 이 느닷없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지만, 공적인 행사 중이라 궁금증을 억눌렀습니다. 드디어 행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 분이 다시 말했습니다. 

"저녁 먹었나요? 내가 밥 사지요." 

우리는 늦은 저녁식사를 하기위해 인근 밥집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저도 저녁식사를 하기 전이었지만, 제가 더 고픈 것은 배가 아니라 제게 불쑥 말했던 그 말의 이유였습니다. 자리에 앉자 다시 물었습니다. 

- 왜 밥을 사겠다고 했나?
"첫째, 내가 저녁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 내가 최근 짭짤한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 이 식당으로 온 이유가 있나?
"24시간 영업을 하지. 그래서 늦은 시간에 서둘러 숟가락을 놓지 않아도 돼. 그리고 그제 이집 주인을 만났는데 한 달에 수억 매출이 오른다네. 그래서 '이 불경기에 돈 벌어 좋겠다'고하니 '1, 2억이 돈인가?'라는 대답이 돌아왔어. 대답이 멋지지 않나?" 

- 어떤 이유로 나를 행복한 사람으로 단정했나?
"당신은 가난하니까." 

- 가난한 사람은 행복한가?
"당신은 부자가 되어보지 않아서 몰라. 부자가 얼마나 괴로운지……." 

- 부자가 괴롭다?
"예컨대, 내 친구 부자들은 명절이면 모두 사라져. 고향에 더 이상 가지 않아. 한 친구는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고향에 미리 1천만 원씩을 내려 보냈어. 그런데 한 해는 내려 보내지 못했어. 그런데 일가친척들이 그를 욕하기 시작했어. 또 다른 친구는 내게 돈을 3억 9천를 빌려주었어. 나는 다행히 기사회생해서 그 돈을 되갚을 수 있었지. 그런데 그 친구가 빌려준, 회수가 어려운,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하더라도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야. 그러니 내가 모르는 건은 얼마나 많겠어?

또 한 친구는 동창회를 가지 않아. 동창회 회장과 이사 자리는 돈 있는 사람들의 몫이거든. 부자가 돈을 내놓지 않으면 동창들에게도 손가락질 받아. 단지 2만 원 회비내고 동창회 참석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돈 있는 사람은 알지." 

- 당신도 부자로 살았지 않나? 당신의 경우도 부자가 괴로움이었나?"
"큰 부자였을 때 부모에게 월 몇 백만 원씩 용돈을 드렸지. 만약 한 달이라도 거르면 부모뿐만 아니라 형제들도 서운해 해. 그런데 도곡동 타워팰리스 두 채와 분당 파크뷰 한 채를 한 번에 날렸어. 타워팰리스 작은 평수도 월 1천만 원 월세가 나오던 거였지. 그리고도 수십 억 빚을 졌어. 시간이 흘러 다시 은행의 이자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어. 부모에게 용돈을 드렸어. 부모와 형제들이 무지 고마워하면서 그 돈을 되돌려주었어. 어려울 테니 너나 쓰라고……." 

- 부자로 살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예컨대 부자가 돼 보지 않았던 당신에게 하나님이 특별히 보우하사 수백억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해 봐. 당신 같은 사람은 머지않아 다시 가난해져. 왜? 착하거든. 착하면서 부자가 되기도 힘들지만, 부자로 살기는 더욱 어려워.

예컨대 당신에게 돈이 있다는 것을 아는 친구가 와서 자신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해. '야, 친구야. 너도 좋아한 내 아들이 지금 미국대학에서 3학년을 다니고 있어. 등록금이 없어서 귀국시켜야할 형편이야. 등록금 한번만 대 줄 수 없어? 5천만 원이면 돼….'라고 말해봐. 당신 참을 수 있겠어. 그리고 또 다른 친구가 왔어. '너와 가든 파티하던 그 집, 1억이 모자라서 경매에 올라가게 생겼어. 1억 때문에 30억을 날릴 판이야. 단지 1억 때문에….' 그럼 당신 그 친구를 어떻게 빈손으로 돌려보낼 거야? 부자에게는 그런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매일 줄을 서. 하지만 선하지 않은 부자는 당신같은 고민을 안 해. 친구의 궁지도 더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야. 그러니 이렇게 얘기하겠지.

'그래, 내가 불을 꺼주지. 1억에 대해 년 20%의 이자만 받지. 친구니까. 그리고 네 집 내 앞으로 근저당설정하면 네 통장으로 바로 넣어줄께.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착한 당신은 죽어도 그렇게 못해. 그러니 머지않아 그 돈 다 날릴 수밖에."

자리에 함께했던 분이 그 말을 받았습니다.

"나는 빌려주는 대신 그냥 주었어. 빌려달라는 돈의 10%로만. 그리고 말했지. '지금 내 형편이 이것밖에 안 돼. 하지만 그 돈을 되갚지 않아도 돼.' 그리고 그 사람이 좀 비참한 느낌이 들까봐 쇠고기 열 근을 사서 함께 보냈지. '힘들테니 가족들과 고기라도 한 번 같이 먹어. 그리고 다시 힘을 내'라는 메시지와 함께." 

다시 과거 큰 부자였고, 지금은 부자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 그래, 부자가 아닌, 아니 작은 부자로 사는 지금이 행복한가?
"물론이지. 나는 글을 쓰서 매월 50만 원 정도를 벌어. 예전에 사업으로 돈을 세는 것조차 귀찮을 만큼 돈을 벌 때보다도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 지 모르겠어. 일단, 내게 돈 빌리러 오는 사람이 없어. 그리고 나의 혁신과 창의적인 일로 들어오는 그 돈이 임대수익의 수십 분의 일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수십 배 행복해."

- 그리고 한 가지 의문…. 당신에게 회수가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담보나 조건 없이 돈을 빌려주었던 그 사람은 여전히 부자이잖아. 그러니 착한 부자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하하…. 최근 나도 그것이 의문이야."  

- 그 의문은 당신도 조금씩 착해지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까?
"그럴까? 하지만 난 착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어."  

- 오늘밤, 밥값도 벌써 당신이 내고 오지 않았나?
"……."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부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의 다양한 풍경에 관심있는 여행자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