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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서울사회적경제아이디어대회(위키서울)와 함께 공동기획 '여럿이함께하는 펀딩42'를 시작합니다. 위키서울은 작년 가을부터 시민의 일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공개 모집했습니다. 이중 시민과 전문가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시민의제 42선'이 선정됐습니다. '시민의제 42선' 중 8개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합니다.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2012년 5월 영등포구 하자센터에서 열린 '달시장' 풍경 공연과 마을장터가 함께 어울러져 있다.
2012년 5월 영등포구 하자센터에서 열린 '달시장' 풍경공연과 마을장터가 함께 어울러져 있다. ⓒ 인재명

2013년 어느 따듯한 봄날, 한 마을에 마을장터가 열렸다. 청년들은 시장 한 구석에서 브라질 타악기 공연을 한다. 아이들은 타악기 소리에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친다. 유모차에 탄 아기도 꺄르르 웃는다. 대학생 오아무개씨는 타악기 리듬을 들으며 좌판에서 액세서리를 고른다. 대학생 때 미술동아리를 했던 회사원 양아무개씨가 만든 제품이다. 시장 한 편에서 안마사가 김아무개 할머니의 뭉친 어깨를 풀어준다. 공연팀을 빼고 모두 한 마을 사람들이다.

우리 마을에도 이런 문화적인 장터가 열리면 어떨까? 먼 친척보다 낫다는 이웃사촌들이 자기가 가진 것들을 공유하면 마을이 좀 더 풍성하고 흥미로운 곳이 되지 않을까?

2012년 봄부터 이런 형식의 동네장터를 기획하고 십여 차례 직접 연 사회적 기업이 있다. 바로 '방방곡곡 시장네트워크 방물단'(이하 방물단)이다. 지난 3월 2일,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이하 하자센터)에 있는 사무실에서 인재명씨(28)를 만나 그와 그의 팀이 기획한 동네장터에 대한 이야기와 길음동의 길음뉴타운 3단지에 새롭게 기획하는 '임대아파트와 함께하는 힐링장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시장에서 별 걸 다하네

인씨에게 받은 명함에는 이름보다 별명 '봄봄'이 더 크게 적혀 있다. 방물단 직원 네 명은 모두 별명으로 불린다. 불교미술작가였던 김영수(43)씨는 '명상맨', 정보람(27)씨는 '보람', 이호진(26)씨는 월리와 닮은 외모 때문에 '월리'다. 사무실 안의 소품도 아기자기하고 장난스럽다. 밝고 유쾌한 분위기다. 이들이 기획한 장터 분위기가 딱 그렇다.

시민이 바꾸는 세상
위키서울에서 선정된 '시민의제 42선'의 현실화를 위해선 일반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여럿이함께하는 펀딩'을 통해 모금된 금액은 시민의제 현실화에 마중물이 될 예정입니다. 위키서울(www.wikiseoul.com)에는 '삶터'를 주제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유관 아이디어
- 청년과 시민이 만드는 즐거운 마을시장
- 마음을 여는, 마을을 여는동네 프로젝트 <달려라 피아노>
- 청소년의 사연을 가사로한 스토리가 있는 음악! 솔깃
- 대학로 연극의 희망을! 소극단과 관객이 함께 만드는 새로운 연극 문화, 쇼닥터 프로그램
- 땡땡이공작의 키트 개발 프로젝트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 하자센터에서 열리는 '달시장'이 이들의 대표적인 마을장터다.

'달시장'은 사회적기업 쇼케이스, 아트마켓, 벼룩시장, 오가닉마켓 등 총 4개 구역으로 구분된다. 사회적 기업 쇼케이스는 영등포 지역 사회적 기업들의 판매부스다. 아트마켓은 공연, 작가들의 수공예품 판매, 컵받침 만들기 등의 문화예술 워크샵과 전시를 포함한다. 벼룩시장은 주민들 사이의 장터다. 마지막으로 오가닉 마켓은 텃밭채소 전용 판매부스다.

영등포구 문래동의 벼룩시장 '헬로우 문래동'도 방물단이 기획하는 장터다. 문래동은 한국의 대표적인 '자생적 예술촌'으로 불린다.

1960년대 문래동 일대에는 철공소 단지가 형성됐는데 2000년부터 철공소들이 지방으로 이전함에 따라 여러 건물이 비었다. 그러다가 2005년부터 공장 건물에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하나둘 생겨 2013년 현재 작업실이 100여 개가 넘었다.

'헬로우 문래동'은 문래동 예술가들과 시민들 교류의 장 역할을 한다. 인씨는 "이 장터를 통해 방물단과 문래동 예술가들의 교류가 깊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방물단과 예술가들은 서로 돕는다"며 "우리가 장을 열면 전시공간도 마련하는데, 여기서 문래동 작가들이 개인전을 열 수 있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물단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공연팀과도 협력해 마을장터를 기획한다. 방물단은 2012년 예술가와 공연팀 등과 함께 '팔도방물단'이라는 팀을 꾸렸다. 이 팀은 전주, 대전, 부산, 정읍 등을 돌며 곳곳에서 문화장터를 열었다. 여기서 방물단은 다양한 시도를 했다.

전북 정읍의  '마을시장에서'  젬베 워크샵 방물단이 기획하는 시장은 워크샵, 공연 등이 어우러진 일종의 대안문화행사다.
전북 정읍의 '마을시장에서' 젬베 워크샵방물단이 기획하는 시장은 워크샵, 공연 등이 어우러진 일종의 대안문화행사다. ⓒ 인재명

부천 '강남시장'에서 열린 풍물패 공연 인 씨는 “장터 자체도 재밌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구성된 풍물패와 지역주민 등 100여 명이 함께한 기차놀이가 감동적이었다”며 “수많은 지역주민들이 발휘하는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고 했다.
부천 '강남시장'에서 열린 풍물패 공연인 씨는 “장터 자체도 재밌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구성된 풍물패와 지역주민 등 100여 명이 함께한 기차놀이가 감동적이었다”며 “수많은 지역주민들이 발휘하는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고 했다. ⓒ 인재명

부천의 강남시장에서 연 마을장터는 인씨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인씨는 "장터 자체도 재밌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구성된 풍물패와 지역주민 등 100여 명이 함께한 기차놀이가 감동적이었다"며 "수많은 지역주민이 발휘하는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인씨는 장터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거래'에 큰 관심이 없어보였다. 오히려 마을사람들의 교류가 그의 진짜 목적인 듯했다. 그에게 장터를 여는 진짜 이유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마을에 문화예술 장터를 열면 이전에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만나 소통하는 장이 생긴다. 우리가 연 장터에서 만남이 시작되는 게 큰 보람이다. 주민과 주민, 작가와 주민이 만나게 됐다. 진짜 목표는 마을 공동체를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주민들 각자의 집에는 쓰지 않는 물건도 많고, 개인적 재능도 있다. 그런 걸 나눌 장이 있으면 서로 필요한 것도 얻고, 건강한 공동체가 생길 것 같다."

임대아파트의 힐링장터, 무너진 공동체 일으킬까

하지만 방물단이 기획한 지역시장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는 "저희는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모델을 원했지만 실제로는 단일성 이벤트로 끝나는 사례도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더욱 지역에 특화된 프로그램과 컨텐츠로 접근해야 한다"며 "올해 새로운 형태의 장터를 열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올해 5월 방물단은 길음동 임대아파트에 새롭게 지역장터를 열 계획이다. 그런데 왜 임대아파트일까?

"마을 만들기 사업도 먹고 살 만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공동체가 처한 문제는 보다 시급하고 위중하다. 공동체도 무너지고 개인도 무너졌다. 이들이 소통하고 서로 돌봐줄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방물단' 사무실에서 인재명씨(28) 굿펀딩에서 모금하고 있는 <임대아파트와 함께하는 힐링장터>에 1만원 이상 투자하면 인씨가 들고 있는 에코백을 준다.
'방물단' 사무실에서 인재명씨(28)굿펀딩에서 모금하고 있는 <임대아파트와 함께하는 힐링장터>에 1만원 이상 투자하면 인씨가 들고 있는 에코백을 준다. ⓒ 이규정
방물단의 '임대아파트와 함께하는 힐링장터'(이하 힐링장터) 프로젝트는 소셜펀드 '굿펀딩'을 통해 모금을 하고 있다. 3월 3일 현재 모금액은 78만 원으로 목표액 200만 원의 반도 채우지 못한 상태다.

모금액은 임대아파트 힐링장터의 운영비에 쓰인다. 인씨는 힐링장터 예산을 500만 원 정도로 보고 있다. 이 비용은 문화예술 워크숍의 강의비, 재료비와 홍보비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부담할 금액은 없다.

인씨는 "비용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맞춰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 비용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이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가 하는 문제다.

인씨는 "방물단은 특히 두 가지 가치를 지향한다"며 "첫째 지속가능한 모델, 둘째 사용자들의 필요에 맞춘 지역 장터"라고 강조했다.

두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난 1월부터 방물단 팀원들은 매주 1회 이상 길음동 임대아파트 노인정을 방문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다. 인씨는 "처음에는 이분들이 외부인에게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했고 오해도 했다"며 "물건 떼다가 파는 거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도 있었다"고 말했다. 방물단 팀원들은 지역 장터의 취지를 설명하며 "재미난 일들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주민들에게 설명했다. 

어떤 재미난 일들일까? 그는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함께 뭔가를 만드는 걸 하면 어떨까 싶다"며 문화예술 워크숍의 내용을 설명했다. 인씨는 "손바느질과 목공예로 작은 소품 만들기 워크숍을 1~2주일에 한 번 진행할 예정이다"며 "우리는 힐링장터에 이분들이 만든 소품들을 전시, 판매하는 공간도 마련할 생각이다"라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방문단은 현재 아이들을 위한 사업도 기획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아이들의 사랑방 격인 '아름드리 도서관'이 있다. 여기에서 공부하는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는 약 10명 정도다. 우리는 영등포아동복지센터와 함께 아이들을 위한 문화예술 워크숍도 진행할 예정이다. 구슬만들기, 그림그리기, 펜던트 만들기 등을 준비하고 있다."

'달시장' 한 켠에 마련된 '안마코너' 안마와 간단한 건강상담은 임대아파트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좋아할만한 프로그램이다.
'달시장' 한 켠에 마련된 '안마코너'안마와 간단한 건강상담은 임대아파트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좋아할만한 프로그램이다. ⓒ 인재명

방물단의 마을장터 내용은 아기자기하고 소박하지만 이들의 기획은 치밀하다. 5월에 열릴 장터를 위해 1월부터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했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니 말이다. 인씨가 전하는 장터 준비 과정과 신중한 프로그램 이야기에서는 마을장터에 대한 방문단의 애정이 깊게 느껴졌다.

봄봄, 명상맨, 월리, 보람 등이 만들어갈 '축제 같은 마을장터'. 5월, 임대아파트에서 울려퍼질 웃음소리가 기대된다.


#임대아파트#힐링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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