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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우리 동네에는 '자야'라는 이름을 가진 애가 있었다. 성이 이씨이니 그 애 이름은 '이자야'인 셈이다. 철모를 때는 자야라는 이름이 아무렇지도 않았겠지만, 머리가 좀 굵어지니까 그 애는 자기 이름이 창피했다. 그래서 이름을 왜 이렇게 지었느냐고 엄마에게 원망을 했다. 그럴 때마다 자야엄마는 "그 놈의 술이 웬수지"하면서 딸의 화살을 피해갔다.

자야는 아들만 내리 넷을 낳은 뒤에 얻은 귀한 고명딸이었다. 그러니 그 애 부모님이 얼마나 자야를 예뻐했겠는가. 특히 자야네 아버지는 "우리 자야, 우리 자야"하면서 입에 딸 이름을 달고 살았다. 그 분은 약주를 좋아했는데, 술이라도 한 잔 한 날이면 '자야'를 부르면서 동네 어귀에 들어서곤 했다.

그 놈의 술이 웬수였다

예전에는 출생신고를 제 때에 하는 법이 드물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교통이 좋은 시절이 아니었으니 십 리 근방씩이나 떨어져 있는 면사무소에 한 번 가는 것도 큰일이었으리라. 그러니 출생신고가 늦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강화나들길 5코스는 고비고개를 넘어 외포리로 가는 길입니다. 고비고개는 나무꾼들이 넘나들던 길이었습니다.
 강화나들길 5코스는 고비고개를 넘어 외포리로 가는 길입니다. 고비고개는 나무꾼들이 넘나들던 길이었습니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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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야 아버지가 딸의 출생신고를 하러 면사무소에 갔다. 그런데 술을 좋아하는 이 양반이 그냥 갔을 리가 있겠는가. 오랜만에 기분 좋게 한 잔을 한 자야 아버지는 애 이름을 묻는 면서기에게 이리 말했단다. "자야구메.(자야입니다)" 면서기가 다시 한 번 물어봤지만, 역시 자야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야라는 말 뿐이었다.

그 면서기가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자야가 원 이름이 아니라 뒷글자라는 걸 알아채고 자야 앞에 글자가 무엇인지 물어보았으리라. 그러면 자야 아버지도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알아채고 '민자'라는 본이름을 다 말해줬을 텐데 면서기도 자야 아버지도 그만 그걸 빼먹고 말았으니, 우리 동네 민자는 자야가 되고 말았다.

자야가 자기 이름을 마땅찮아 했던 것처럼 나도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항렬자를 가운데에 넣고 끝 글자만 '숙'이라고 지었으니 나는 내 이름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 언니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언니는 자기 이름을 '승혜'라고 고쳐놓고 친구들에게 그리 불러달라고 했다. 언니가 지은 이름은 예쁘기는 했지만, 그리 부르면 왠지 언니 같지가 않았다.

예쁜 이름이 부러웠다

소녀 시절에 우리가 즐겨보던 책의 주인공들은 예쁘고 고상해 보이는 이름들을 갖고 있었다. 그 소녀들은 예쁜 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멋진 생활을 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생활을 부러워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고상해 보이는 이름으로 바꾸면 나도 그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멋지게 살 것 같아서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들길을 걷는 길손들의 발걸음이 가쁜해 보입니다.
 나들길을 걷는 길손들의 발걸음이 가쁜해 보입니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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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대구 어름의 사람들은 '으'와 '어'를 구별해서 발음하지 못한다. 나도 그 쪽 사람인지라 내 이름을 가르쳐줘야 할 자리가 있으면 속으로 걱정부터 든다. '승'자를 제대로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성'으로 듣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성 자가 아니라 '승리'할 때 '승'자라고 다시 한 번 일러줘야 비로소 "아, 성이 아니라 승이네요." 하면서 바로잡아 불러주곤 했다.

'아무개야'하고 부를 때는 내 이름도 꽤 정답고 괜찮은 것 같지만 '아무개씨'라고 높여 부를라치면 여간 거북한 게 아니다. '숙'이라는 글자는 마치 뱉듯이 터져 나오는 말이라 뒤에 '씨'를 붙일 경우에는 한 자 한 자 끊듯이 말해야 한다. 그게 늘 불만이었던 나는 좀 근사한 이름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강화나들길 5코스는 '고비고개 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내가면 사람들이 강화읍으로 일을 보러 갈 때 넘던 고개였다. 고비고개를 넘어 내가면으로 들어서면 분지처럼 낮고 평평한 곳에 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곳 어디에 성명학을 공부하는 분이 살고 있는데, 내게 이름을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한 적이 있었다. 그 분은 내 이름과 사주에 쇠 금(金)자가 많아 건강에 좋지 않다면서 불 화(火)자를 넣어서 부족한 부분을 상쇄하라고 권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이 정겹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이 정겹습니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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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아, 지켜봐다오

다른 것도 아니고 건강에 좋지 않다니 개명(改名)을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반백년 이상 불러온 내 이름을 바꿀 수는 없었다. 설혹 새로 바꾼다고 해도 많이 불릴 자리도 없다. 이름은 불러줘야 비로소 제 가치를 나타내는 것인데 불러 줄 일이 없는 이름은 바꾸나 마나가 아닐까. 그리고 이름을 바꾼 나는 내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름만 바꾼다고 운명이 달라지겠는가. 그보다는 생각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운명은 좋은 방향으로 바뀔 것 같다. 그렇지 않고 남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수동적인 태도로 살면 늘 열등감에 시달리게 되고 자존감 역시 부족하리라. 자신을 응원하지 않고 탓만 한다면 삶의 방향이 어찌 좋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아버지가 지어주신 내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맑고 고운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맑을 '숙' 자를 이름 끝에 붙여 주셨으니, 내 이름도 꽤 괜찮은 것 같다. 가슴 속에 정겨움이 돋아난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떠오르고 고향집으로 들어서는 골목길도 생각이 난다. 단발머리를 나풀대며 뛰놀던 동무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고비고개를 넘어가야겠다. 성명 풀이 앞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서볼 터이다. 내 이름으로 만들어가는 길이 좁은 길일지라도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가련다. 그러니 운명아, 그런 나를 지켜봐다오. 나는 내 이름으로 살아갈 테니 나를 응원해 다오.

덧붙이는 글 | 강화나들길 5코스는 '고비고개 넘는 길'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화읍에서 출발해서 내가면 외포리까지 가는 약 20.2킬로미터의 길입니다.
내가면 쪽의 사람들이 강화읍으로 넘어오던 옛길이기도 합니다.
두 곳의 저수지와 산림욕장 그리고 고인돌군(群)을 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며 고비고개를 넘으면 서해의 섬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태그:#강화나들길, #나들길, #강화나들길 5코스 , #고비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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