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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나니 듣는 인사, 사람들의 질문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좋은 소식은 없어?"
"아기 소식은 없어?"
"임신 소식은 없어?"

그들이 묻는 소식의 공통분모는 내가 엄마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 하지만 내게는 하나 고민이 있었다.

'만약 아기가 태어났는데… 날 닮으면 어쩌지?'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엄마에게 간혹 들었던 말이 있다.

"너도 너 똑 닮은 자식 낳아서 한 번 키워봐."
"그럼 지금 내 맘 이해할 거다."
"진짜로 똑같은 자식 낳아서 한 번 키워봐."
"..."

엄마의 그 말을 처음들은 그때도 섬뜩했던 것은 그만큼 내가 나를 잘 알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난 나를 너무 사랑했다. 문제는 나만 너무 사랑했다는 거. 내게 큰 존재였던 가장 가까웠던 가족을 돌아보는 일도 내겐 버거울 만큼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나날들이 잦았고, 엄마는 가장 가까이 있고 싶은 딸이 자꾸만 멀어져가는 것 같아 내게 던진 서운함이 있었을 터. 엄마가 진심과 유머가 고루 섞인 감정을 던질 때마다 내 대답은...

"걱정 마. 결혼도 안하고 애도 안 낳을 거니까... 아, 난 엄마랑 평생 살겠다고~."

엄마가 될 나, '엄마'의 삶을 톺아봤습니다

직접 스케치한 임산부
 직접 스케치한 임산부
ⓒ 권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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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가 결의에 차서 받아쳤던 직구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결국 나는 결혼도 했고, 이제 곧 출산을 앞둔 임산부가 됐다.

나보다 조금 더 어린 나이에 '나'를 낳은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엄마 자신에 대해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본인 인생의 꽃을 피우기 위해 해야 할 고민을 모두 내게 쏟아부었을 것이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진 딸은 사춘기 때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았다. 그 딸이 고등학교에 막 입학하고 나서 '학교가 재미없다'고 몰래 무단결석도 했다. 무탈하게, 야무지게 잘 커가던 딸은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그래, 당연하다.'

사랑으로 키웠어도, 엇나가려고만 했던 사춘기 딸이 몹시 걱정되고 안타까웠던 엄마의 마음에는 딸에 대한 서운함도 어느 정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성인이 된 뒤 엄마와 나눈 대화 속 뿌리 깊은 곳에는 서운함의 자락이 일부 삐죽삐죽 나와 있었다. 그 뒤 엄마가 엄마로서 가졌을 여러 감정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런 감정들을 모두 수용하고, 열심히 노력했을 엄마는 지금도 다 큰 자식들을 위해 마음을 다해 애쓴다.

그렇지만 지금 엄마는, 사춘기 딸을 키울 때처럼 불안과 걱정을 안고 자식과 함께 하지는 않는다. 사춘기 때의 격정을 함께 겪고 난 뒤 엄마와 딸 사이에는 두툼한 뭔가가 생겼다. 엄마는 딸에 대한 걱정을 믿음으로 물리쳐 버렸다. 딸은 엄마가 자신을 향해 보여주는 사랑에 대한 믿음의 확신을 가졌다.

이렇게 시간 속 변화들에 대한 정리를 하고 보니, 똑같은 자식 낳아서 한 번 키워보라는 엄마의 말에 가졌던 고민은 말끔히 사라졌다.

'한 번 해보지 뭐.'

부모에게 받았던 사랑, 그대로 내 아이에게

엄마가 가졌을 감정들을 내가 엄마가 돼 또 겪을 수도 있다는 게 고민할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택했고, 내가 책임져야 하며, 그러므로 내가 겪어야만 했던 많은 일들을 경험한 내가 아닌가. 엄마가 돼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엄마가 던진 감정 유머에, 엄마가 된다는 자부심과 해볼 만하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셈이다.

이제 나도 엄마가 됐다. 뱃속 아이의 심장이 뛰는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나는 엄마였다. 내 엄마가 그랬듯이 사랑을 가득 담아 아이와 함께할 자신이 있다. 자식은 부모에게 배우고, 부모를 닮는다. 내가 내 부모에게 받았던 사랑을 그대로 내 아이에게 전승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 한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사회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가치라고 본다.

"엄마!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소중한 것을 가르쳐주셔서 고마워. 나 닮은 아이 낳아서 엄마처럼 잘 키울게!"


태그:#엄마, #출산, #임산부,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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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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