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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겉표지
책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겉표지 ⓒ 김병현

칼뱅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다. 개신교도가 아니라도 칼뱅이 종교개혁을 통해 개신교 신학의 기틀을 완성하고 강력한 신정정치시대를 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칼뱅이 남긴 역사 속의 커다란 발자취는 근대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세르베투스는? 카스텔리오는?

로마 가톨릭에 맞서 관용을 주장했던 칼뱅은 제네바에서 막상 자신이 권력을 손에 쥐자 변해갔다. 평소 자신이 구상하던 강력한 개혁을 실행에 옮겼다. 모든 이들의 자유를 박탈하고 통제했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일들은 그들을 위한 일이라 여겼다. 교리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이며,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했다. 칼뱅의 의지에 따라 부지런히 움직여주는 종교국 경찰들. 시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종교국 경찰관들에게 칼뱅의 의지대로 생활하고 있는지를 검열당했다. 도시는 오히려 활기를 잃었고 생각은 병들어 갔다.

이런 견지에서 종교개혁은 종교의 비관용성에 항거해 일어난 것이었지만, 그 개혁의 내용은 또한 가장 비관용적인 탄압과 전쟁을 통해 달성된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 시대적 삶에 역설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25년간 정신적 독재를 펼치면서 칼뱅은 사람들에게서 가차 없이 모든 개인적 자유를 빼앗는 것이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이 경건한 폭군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친 온갖 요구들을 하면서 자신은 오직 사람들에게 참되게 살라고,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의지와 뜻에 따라서 살라고 요구했을 뿐이라고 믿었다. (63쪽)

화형의 불길이 정신까지 태울 수는 없다

그렇게 광신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사내가 학자의 양심으로 칼뱅에게 맞서 분연히 일어났다. 사실 나는 개신교의 교리에 대해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물론 이 글 또한 개신교의 교리에 대해 언급한다거나 평가할 생각이 전혀 없다. 오직 '관용'이라는 가치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따라서 칼뱅에게 맞서 일어난 세르베투스가 주장한 교리에 대해서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겠다. 다만 냉혹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목숨 걸고 말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탄성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는 화형장에 끌려가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주장을 번복하지 않았다.

성서 해석의 차이만으로 상대방을 그토록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가. 또한 극심한 고통을 당하며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신념을 꺾지 않을 수 있는가. 물리적 폭력으로 사상을 통제한들 정신마저 억압할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을 힘으로 억압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착각이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같은 의견을 가질 의무만 지우는 것은 정신적 독재다.

그렇게 세르베투스의 육신은 불에 타서 사라졌다. 광신의 시대는 더욱 깊어 갔다. 지식인들은 싸움이 역겨워서, 혹은 자신이 이단으로 몰릴까봐 두려워서, 논쟁을 하지 않는다는 신념에 따라 모두 침묵했다. 그렇게 다른 의견을 가진 자들을 모두 억압해야만 한다는 칼뱅의 무시무시한 요구는 한없이 확장되어만 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 때 갑자기 어떤 이가 목청을 높여 모욕당한 인간성의 이름으로 세르베투스에게 행한 범죄를 공공연히 고발하고 나섰다. 바로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의 또렷한 음성이었다. 제네바를 뒤덮고 있던 폭군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많은 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 카스텔리오의 목소리였다. 자유 영혼의 목소리, 폭력에 맞선 양심의 목소리였다.

"진리를 구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그것을 말하는 것은 절대로 범죄가 아니다.
아무도 어떤 신념을 갖도록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 신념은 자유다."

카스텔리오는 집요하게 그리고 시종일관 논리적으로 칼뱅을 몰아세웠다. 인간적이고 화해적인 정신으로 광신자와 독단론자들을 상대했다. 감정적이고 비인간적인 비난에 대해 온화하고 침착하게 답변했다. 시대가 자신에게 짊어지게 한 외로운 싸움에서 인간적인 태도로써 관용의 이념을 스스로, 그리고 모범적으로 실천했다. 적들이 자신에게 죽음의 도끼를 들이대는데도 그들을 향해 평화의 손길을 내밀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온갖 음해에 시달리던 카스텔리오는 48세의 나이로 운명하고 말았다. 한 친구는 그의 죽음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적들의 발톱에서 빠져나간 것'이라 평했다.

죽음과 더불어 비방도 멈추었다. 바젤 시민들은 너무 뒤늦게 자신들이 가장 훌륭한 시민을 제대로 옹호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그의 유산은 이 순수하고 위대한 학자가 얼마나 사도의 청빈을 지키며 살았던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의 집에는 단 한 닢의 은화도 없었다. 친구들이 돈을 내서 관 값을 지불하고 얼마간의 빚을 갚아주고 장례비용을 치르고 성년이 안 된 아이들을 자기 집에 받아들여주었다. (270쪽)

에라스무스와 볼테르를 잇는 관용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잊혀 있는 카스텔리오. 분명히 둘 사이를 잇는 중간 지점에 카스텔리오는 서 있었다. 하지만 정작 카스텔리오에 관한 기록, 저서, 출판물들은 남겨진 것이 별로 없다. 무서운 사실이다. 기득권층의 구속에 맞서 용감하게 저항의 목소리를 내었던 이의 기록은 필연적으로 감추어지고 왜곡되기 마련이다. 권력자로서는 손쉽게 역사 속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불편한 불씨를 굳이 살려둘 필요가 없었을 터이다.

카스텔리오의 비판이 종교 자체를 향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면밀한 검토와 철학적 해석을 통해 카스텔리오는 개신교가 본래 불관용적인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강조하려고 했다. 그 관용성을 회복하여 정신적 자유를 허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 주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는 이 책이 쓰레기라고까지 폄하하고 있었는데, 참 슬픈 일이다.

다음은 카스텔리오가 오백여 년 전에 했던 말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마치 우리사회의 묵은 병폐를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시대는 바뀌고 관용의 정신은 장대한 발전을 이룩했는데, 어떻게 이리도 미래의 대한민국을 뜨끔하게 만드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이단자라 불리는 모든 사람이 다 이단자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단자라는 호칭은 오늘날 너무나도 치욕적이고 두렵고 경멸할만한 것이고 무시무시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의 개인적인 원수를 없애고 싶다면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즉 그가 이단자로 의심된다고 말하면 된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이단자라는 이름만 듣고도 너무나 무서워서 귀를 막아버리고 눈을 감은 채 오직 그를 박해할 뿐만 아니라, 그의 편을 드는 사람도 역시 박해하기 때문이다. (중략) 이단자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면, 나는 우리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 생각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우리가 이단자라 부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자, 이제 '이단자'라는 단어를 '빨갱이'로만 바꿔 읽어 보시라. 바로 대한민국이 관용의 가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바오출판사 펴냄, 2009.05, 13,000원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바오(2009)


#슈테판 츠바이크#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바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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