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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로 떠납니다. 히말라야와 가슴으로 인연을 맺은 것이 벌써 10년이 넘었고, 이번이 여섯번 째 트레킹입니다. 인생에서 변화가 필요한 40세 즈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히말라야가 소리없이 저를 찾았고, 그 만남이 제 인생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태국행 타이항공 모습
▲ 타이항공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태국행 타이항공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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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겨울 여행을 하지만 식구에게 여행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히말라야를 걷는 것보다 더 힘들고 어렵습니다. 이기적인 가장을 둔 식구들은 가지 않았으면 하면서도 마지못해 보내줍니다. 미안한 마음에 트레킹 준비는 식구들이 잠든 사이에 야반도주하듯 이루어집니다.

배낭 무게와 여행의 즐거움은 반비례

여행의 즐거움은 배낭 무게와 반비례한다고 합니다. 매번 준비할 때는 꼭 필요할 것 같은데 트레킹이 끝난 후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짐만 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번번이 내게 속으면서도 짐의 무게는 줄지 않습니다. 카고백(트레킹을 위한 가방)에 트레킹 장비와 네팔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니 설산 풍경이 펼쳐집니다.

트레킹을 위한 배낭과 카고백에 준비물을 담고
▲ 배낭과 카고백 트레킹을 위한 배낭과 카고백에 준비물을 담고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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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다는 것은 돌아올 곳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한 달간의 짧은 여행이지만 가정, 직장, 동료 모두와 이별하고 여행할 수 있는 것은 돌아올 안식처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여행이란 집을 떠나 집을 그리워하는 것 아닐까요?

히말라야를 찾는 사람들을 클라이머(등반가)와 트레커(트레킹을 하는 사람)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클라이머는 6000미터 이상 봉우리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투자하며, 때로는 목숨을 잃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트레커는 히말라야 2000~5000미터 대의 히말라야 산 기슭을 걸으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을 접하고 살아온 날들에 대한 반성과 살아갈 날에 대한 희망을 갖기 위해 산을 찾습니다. 클라이머가 '보다 높은, 보다 어려운'을 목적으로 한다면 트레커는 '보다 아름다운, 보다 즐거운' 것을 찾습니다. 트레킹은 산에 대한 도전이 아닌 자연과의 동화가 목적입니다. 저는 트레커입니다.

네팔 3대 트레킹 코스

네팔에는 대표적인 3대 트레킹 코스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에베리스트라고 이야기하는 '쿰부 히말라야', 네팔에서 가장 먼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랑탕' 그리고 풍요의 여신으로 트레커들이 가장 좋아하는 '안나푸르나'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대인 푼힐에서 볼 수 있는 안나푸르나
▲ 푼힐에서 본 안나푸르나 모습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대인 푼힐에서 볼 수 있는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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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를 트레커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트레킹 코스가 대체로 고도가 낮아 고도에 따른 부담이 적기 때문입니다. 또한 3~30일까지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있어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입니다. 풍요의 상징인 다랑이논 정경과 황량한 티베트 풍경 그리고 안나푸르나군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타다파니는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마차푸라레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정경을 가지고 있음
▲ 타다파니에서 본 안나푸르나 일출 모습 타다파니는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마차푸라레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정경을 가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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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안나푸르나의 많은 트레킹 코스 중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푼힐 전망대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일명 ABC)를 갈 생각입니다. 이번 트레킹은 다섯 명이 함께합니다. 올 2월 교직에서 정년하는 선배 부부와 대학 동문 두 분이 함께 하기에 안전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였습니다.

트레킹은 일탈

저는 트레킹을 통해 일탈을 꿈꿉니다. 세상을 정형화된 방법으로만 산다면 세상은 무미건조한 곳이 되고 말겠지요. 무엇이 되었든 가끔씩 틀에서 벗어날 때 우리의 삶은 활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달간의 일터와 가족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다. 이번 트레킹의 화두는 "단순하게"입니다. "먹고, 자고, 걷는 것" 외에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젯밤 지인들에게 세밑 및 새해 인사를 전하고 스마트폰 전원을 내렸습니다. 저는 여행자이기에 집을 떠나면 그 어떤 문명의 이기도 이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향한 저의 몸짓입니다. 이제 저는 "자유"입니다. 이제 그 누구도 제가 먼저 손짓하기 전에 저에게 말을 걸 수가 없습니다. 

공항에서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고자 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고위험군에 속하기에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고 합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위험하지도, 목숨을 잃을 염려도 없는 곳인데도 말입니다. 신의 나라에 대한 보험은 세상 보험으로는 해결할 수 없나 봅니다. 저는 히말라야 신들의 보험에 가입합니다. 이 보험은 보험료 대신 겸손한 마음을 요구하기에 무리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게 산을 걸을 생각입니다. 항공기 모니터에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가 나옵니다.

"인생에 한 번쯤은 용기가 필요하다?"
"딱 일년! 신나게 먹고, 뜨겁게 기도하고, 자유롭게 사랑하라!"

안정적인 직장, 번듯한 남편, 맨해튼의 아파트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지만 언젠가부터 이게 정말 자신이 원했던 삶인지 의문이 생긴 서른 한 살의 저널리스트 '리즈'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일, 가족, 사랑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일년 동안 여행을 떠납니다. 이탈리아에서 신나게 먹고, 인도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발리에서 자유롭게 사랑하는 동안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배낭 여행의 천국 '카오산 로드'

태국 수완나폼 공항에 도착하여 공항철도를 이용하여 카오산으로 향합니다. 타이항공은 당일 카트만두에 도착할 수 없기 때문에 방콕에서 하룻밤을 보내야합니다. 배낭여행자들은 대부분 카오산 로드에서 숙박합니다.

카오산 로드 밤 모습
▲ 카오산 로드 카오산 로드 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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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 로드는 태국의 한 부분이지만, 태국은 아닙니다. 현지인보다 더 많은 배낭여행자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자기 몸보다 큰 배낭을 앞뒤로 메고 활보하며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나 여행사를 찾습니다. 노천카페에서 맥주 한 병만 가지고도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으며 레게 머리를 하고 타투 문신을 하여도 부담되지 않는 곳, 무엇을 하여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늘 넉넉한 곳이 카오산입니다.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풍성한 노상 먹거리 모습
▲ 카오산 노점상 모습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풍성한 노상 먹거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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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이곳은 모든 것이 무척 쌉니다. 몇 년 전 이곳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가 생각납니다.

"이곳이 좋은 이유가 무엇이야?"
"싸기 때문이지!"

뭔가 동양의 매력이나 자연환경에 대한 경이로움 때문이라고 생각한 제 기대와는 달리 "싸다"라는 대답에 실망하였지만, 다시 생각하니 "싸다"라는 단어에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싸다"라는 것은 개발되지 않았음을 의미하고 개발되지 않았다는 것은 순수가 남아 있음을 의미하니까요.

저렴한 숙소와 여행사가 몰려 있는 카오산  골목 모습
▲ 카오산 골목 저렴한 숙소와 여행사가 몰려 있는 카오산 골목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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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정하고 거리로 나와 카오산을 걷습니다. 제가 처음 이곳과 인연을 맺은 것이 10년 전입니다. 그후, 수없이 이 곳을 들락거렸습니다. 네팔이나 동남아 여행의 출발지로 또 종착지로 이곳을 찾았으니 횟수를 헤아리는 것은 무의미하겠지요. 연어의 회귀본능처럼 이곳을 떠났고 또 돌아왔습니다. 왠지 모를 마음 편안함을 주는 곳이 카오산입니다.

잠들지 않는 카오산의 열기는 여행자들을 힘들게 합니다.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은 허름한 게스트하우스 창문을 넘어 들려오는 음악소리와 소음 때문에 뒤척이다 깨어 시계를 보니 아침 8시입니다. 카트만두행 비행기는 10시 30분에 출발합니다. 허겁지겁 옷을 입고 카운터에 가서 체크아웃을 하려하니 종업원이 웃습니다. 그러면서 시계를 가리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30분입니다. 제가 시계를 거꾸로 본 것입니다. 다시 숙소에 올라와 짐을 풀고 침대에 누우니 웃음만 나옵니다. 여행 첫 날부터 좋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무언의 계시겠지요.

덧붙이는 글 | 2012년 12월 31일부터 한 달 동안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였습니다.



태그:#히말라야, #안나푸르나, #ABC, #카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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