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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해 스위스에 한 달 있었다. 제주올레와 스위스가 '우정의 길'을 맺어 갔는데, 처음에 한 달 가겠다고 했더니 그 쪽에서 놀래더라. 스위스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와서 오래 있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용프라우에 가면 평균 체류 시간은 반나절이라고 한다. 거기서 컵라면을 먹으면서 '산에서는 컵라면이 최고'라고 한다는 것이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여행은 느리게 할수록 많이 남는다"면서 일화를 쏟아냈다. 서 이사장은 14일 저녁 창원 남산복지회관에서 경남여성회 초청으로 "느린 삶이 아름답다"는 주제로 강연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14일 저녁 창원 남산복지회관 강당에서 경남여성회 초청으로 '느린 삶이 아름답다'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14일 저녁 창원 남산복지회관 강당에서 경남여성회 초청으로 '느린 삶이 아름답다'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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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유럽 여행을 하고 왔다고 자랑하는데, 기간을 물어보면 대개 열흘 정도라 한다. 유럽을 열흘만에 보는 것은 미친 짓이다. 유럽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게 그거다. 2006년 스페인 산티아고에 가기 전에 파리에서 1주일 머무른 적이 있었다. 개선문에 갔더니 한국말이 들려서 오랜만에 듣는 한국말이라 반갑기도 해서 대화를 해보려고 다가갔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대사를 듣고 만정이 떨어졌다. '빨리 와 찍자,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니까'라고 하더라.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는 여행을 하니까 그런 것이다. 가슴과 눈빛에 남는 여행을 해야 한다."

서 이사장은 "우리는 지나치게 여행을 목표 지향적으로 하고, 과시형으로 하고 있다. 사진에 남는 여행은 정말 남한테 자랑하기 위해 하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 투자할 필요가 있느냐"며 "뒤에 눈을 감고 생각해도 그 여행은 참 좋았다고 할 정도로, 다시 가보고 싶다는 여행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걷기는 중독이라 했다. 심리학자 '윌리암 글라써'가 쓴 <긍정적 중독>의 내용을 소개했다. 서 이사장은 "중독은 짜릿하고, 하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 불행·초조하며, 더 하고 싶은 특성이 있다"며 "요가·달리기·명상과 함께 걷기가 '긍정적 중독'에 들어간다, 걸으면 걸을수록 행복감이 더하고, 몸이 연소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헬스장 기계는 중독성이 없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많이 걷지 못했다. 걸으면 하늘과 꽃이 보였다. 나가기 전에는 집안에서 스트레스가 쌓였는데 걷고 오면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중에는 '걷기 명상'이 되었다. 스님들은 참선할 때 '면벽수도'만 하는 게 아니라 '행선'이라는 게 있다. 탈박도 돌아다니며 밥을 얻어먹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화두를 세워 걸으면서 자연 속에서 명상을 하는 것이다."

서명숙 이사장은 <시사저널>과 <오마이뉴스>에서 일할 때 간혹 휴가를 내서 안면도와 보길도, 울릉도에 가서 걷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주로 섬에 간 것이다.

"섬에 간 이유가 있다. 도시는 아스팔트인데, 걷는 즐거움이 없다. 제주올레 전체 길이가 425km인데, 대부분 평지다. 저는 등산을 잘 하지 않는다. 내가 못 오르면 다른 여자들도 싫어할 것이라 생각했다. 남자들은 산꼭대기까지 가려고 한다. 주로 평지에 길을 낸 것은 올레길을 만든 사람이 그 정도 권리는 있어도 되는 거 아니냐. 나는 오르는 데는 자신이 없는데 오래는 걷는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후 올레 26개 구간 가운데 우도․추자도에 있는 2개 코스를 빼고 24개 코스를 걸었다. 지치거나 하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언론은 '올레길 살인사건'이라고 이름을 붙였던데, 길이 사람을 죽인 것처럼 했다. 지난해 가을과 겨울을 지나면서 '멘붕'으로 살았다. 이번에 걸으니 더 힘이 생기더라. 배터리가 충전된 느낌을 받았다."

"'너네 나라는 미친 나라 같더라'... 벼락 맞은 느낌"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14일 저녁 창원 남산복지회관 강당에서 경남여성회 초청으로 '느린 삶이 아름답다'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14일 저녁 창원 남산복지회관 강당에서 경남여성회 초청으로 '느린 삶이 아름답다'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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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06년 산티아고 가기 전에 연습을 했다고 소개했다. 집에서 한강까지 10km가 넘는 거리를 걷기도 했다는 것.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을 수 있는지를 훈련했던 것이다.

"얼마 전 올레 사무실로 일가족 3명이 찾아왔다. 젊은 청년이 산티아고에 가서 100km 남짓 걷다가 체력이 받아주지 않아 돌아왔다고 했다. 꼭 완주를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 먼 데까지 간 비행기표가 아까웠다. 나는 거기 가기 전에 두 달 동안 연습했다. 그 젊은 청년은 그런 준비가 부족했지 않나 싶었다."

서명숙 이사장은 "제주올레 풍광이 산티아고 보다 더 멋지다, 산티아고는 평범한 사막언덕 고원이다, 제주는 바다와 숲, 마을이 있어 더 다이나믹하고 섬세하다"며 "그러나 사람이 만든 건축물은 스페인이 더 예쁘다, 조물주가 만든 것은 제주가 훨씬 예쁘다"고 강조했다.

그는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스킨스쿠버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제주의 50대 여성 7명이 뮤지컬 <맘마미아>를 익혀 지난해 올레축제 때 선보였는데 인기를 끌었다고도 했다.

"평균 연령이 57세였다. 처음에는 다들 망설였다. 그 정도 나이의 여성이면 시어머니의 잔소리나 남의 시선은 무찌를 수 있는 경력을 쌓았다. 남편이 말린다고 못할 군번은 아닌 것이다.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해보자고 했다. 어렸을 때 꿈꾸어 보았던 것을 해보자고 해서, 뮤지컬을 배워 남들 앞에 섰는데, 최고 인기였다. 사람은 추억이 있어야 한다. 양로원에 있는 사람이 돈이 많으면 자식끼리 싸운다. 마음의 사진첩이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운 노후를 맞게 되는지 모른다. 짜릿한 순간을 얼마나 보냈는지가 중요하다."

서 이사장은 "제주도는 늘 초록이다, 시간과 '스토리텔링'만 마인드로 해서 길을 찾아가면 된다, 그런데 자치단체는 영리병원이며 영어교육도시 등 세금 투자되는 대공사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산티아고를 걸을 때 만났던 영국 여자와 나누었던 대화를 소개했다.

"길에서 만난 영국 여자와 국경을 넘는 수다를 떨었다. 길이 인생의 학교라고, 현대인들은 다 병자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길은 의사와 간호사가 없지만, 종합병원이다. 자기 스스로 치유하는 길이다. 그 여자는 저보고 돌아가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했다. 당신 나라야말로 이런 길이 시급하다고 하더라. 그 여성은 한국에 두 번 와 봤다고 했다. '너네 나라는 미친 나라 같더라'고 하더라. 미친 듯이 일하고, 술도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마시는 게 아니라 '원샷'하며 시합하듯 마시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는 것에 대해 말하더라. 미친 듯이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 같더란다. 고층아파트와 지하철도 이야기 했다. 화장터에서 누가 먼저 왔느냐고 싸우는 게 우리 아니냐. 그 말을 듣고서 갑자기 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서명숙 이사장은 "제주올레를 만들 때, 처음부터 엄숙한 결심을 한 게 아니었다, 산티아고에 못간 여자들만 걸어도 된다고 생각했고, 나처럼 지친 사람들이 있겠지, 걷는 사람이 없으면 나라도 걷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제주올레는 곡선이 많다. 직선보다 곡선이 주는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있다. 길은 폭이 1m를 넘지 않는다. 넓게 만들면 나무를 베어내야 한다. 우리는 풀만 깎고, 나무는 잔가지만 쳐낸다. 자연을 잠깐 빌리는 것이다. 우리가 걷자고 우리보다 더 오래 살고 있었던 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안된다. 정부가 길을 낸다고 하면 토목공사를 동반한다. 길다운 길을 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예산만큼 쓰려고 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돈을 쓴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14일 저녁 창원 남산복지회관 강당에서 경남여성회 초청으로 '느린 삶이 아름답다'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14일 저녁 창원 남산복지회관 강당에서 경남여성회 초청으로 '느린 삶이 아름답다'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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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제주올레, #서명숙, #경남여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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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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